[인터뷰]김성수 한국조형예술원 지리산아트팜 캠퍼스 학장
[인터뷰]김성수 한국조형예술원 지리산아트팜 캠퍼스 학장
  • 경남미디어
  • 승인 2020.06.17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리산 산골짝, 하동 삼화실 마을을 자연주의 예술의 성지로 만들겠다

한국조형예술원 지리산아트팜 캠퍼스 올 가을에 개교
준비한지 10년 만에 대학원 석사과정 신입생 모집해
목조건축, 가구조형 디자인 등 비 학위 과정도 오픈

매년 자연주의 예술 세계적 거장 초청해 전시회 열어
리산 원시문화 현대화해서 세계에 알리는 것이 꿈

김성수 한국조형예술원 지리산아트팜 캠퍼스 학장은 “학교가 위치한 지리산 골짝 삼화실 마을을 자연주의 예술의 세계적인 성지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성수 한국조형예술원 지리산아트팜 캠퍼스 학장은 “학교가 위치한 지리산 골짝 삼화실 마을을 자연주의 예술의 세계적인 성지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학교가 위치한 하동군 적량면 지리산 골짝 삼화실은 세계에서 대표적인 자연지대입니다. 여기에 융합예술학교를 운영하고 자연주의 전시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자연주의 예술의 성지로 만들어 나갈 겁니다.”

김성수(65) 한국조형예술원 지리산아트팜 캠퍼스 학장은 세계적인 자연지대인 지리산에 융합예술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고 정기적으로 세계적인 거장들을 초빙해 전시회를 열러 이곳을 세계 자연주의 융합예술의 성지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김 학장은 10년 전 부터 준비를 해 왔다. 김 학장은 10년 전 우연히 하동군에 특강을 하러 갔다가 이곳을 알게 됐다. 그 이후 하동군과 학교설립을 위한 MOU를 맺고 학교설립인가를 받고 토목공사와 건축공사를 진행해 올해 가을에 처음으로 신입생을 모집할 예정이다. 원래는 올해 3월 개교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이번 가을로 연기됐다.

석사과정 학생 12명 정원의 작은 대학원 대학교이지만 자연주의 융합예술을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학교로 학위 과정 뿐 아니라 건축과 목공 분야의 비학위 과정도 함께 오픈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학교를 준비하면서 2016년 세계적인 대지예술의 거장인 영국의 크리스 드루리(Chris Drury)를 초빙해 전시회를 갖는 등 매년 세계적인 거장들을 초빙해 작품전을 열어 벌써 이곳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자연주의 예술의 터전이 돼가고 있다. 김 학장은 이런 평가를 바탕으로 융합예술 전문 대학원으로서 한국조형예술원 지리산아트팜 캠퍼스가 발전해 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 학장은 1955년 지리산 동쪽 산골짝인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가, 지리산과의 인연은 끊어졌지만 이렇게 다시 지리산에 학교를 설립함으로써 운명처럼 지리산과의 인연이 다시 시작됐다.

지금까지 통영국제음악회의 미술감독을 비롯해 안동의 세계유교문화축제 작품 설치를 비롯해 자연주의 설치예술을 전파해 온 김 학장은 인생의 마무리를 세계적인 자연지대인 지리산에서 할 수 있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지리산권에는 지리산산신제 등 원시 예술이 아직 살아있다는 김 학장은 이런 원시 예술이 사라지기 전에 현대화 해 세계에 알리는 것이 인생에 남은 꿈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2016년에는 지리산 꽃상여를 재현했고 2019년에는 쓰다가 버린 남해의 통발을 채색해서 상여를 만들어 일반 대중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다음은 김성수 학장과의 일문일답.

▲한국조형예술원 지리산아트팜 캠퍼스, 이름이 긴데 무엇을 하는 곳인가.
-자연주의 현대예술을 지향하면서 융합 예술을 가르치는 정규 석사학위과정과 비학위 과정이 있는 대학원 대학교이다.

▲석사학위 과정은 교육부 인가를 받은 것인가.

-그렇다. 24학점을 이수하면 한국조형예술원과 협동대학교 공동명의의 석사학위가 나온다.

▲비학위 과정에는 어떤 과정들이 있나.

-목조건축디자인 과정, 융합아트비즈니스 과정, 생태융합가구조형디자인과정 등이 있다. 또 캠퍼스 인근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목조주택 내손으로 만들기, 아름다운 목가구 만들기 과정 등이 있다.

▲수업은 어떻게 하나.

-캠퍼스가 지리산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매일 학교에 나와서 수업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야간이나 주말에 지리산캠퍼스에 와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입학을 할 것으로 생각하나.

-아무래도 석사과정이니까 기존에 예술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또 지리산 인근 보다는 대도시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교수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

-교수들도 대부분 서울에서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교수와 학생들이 모두 다 외지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숙소가 있어야 하지 않나.

-학생들과 교수들이 묵을 수 있는 기숙사가 준비돼 있다.

▲모집인원은 얼마나 되나.

-석사학위 과정이 12명이다. 그리고 비학위 과정이 목조건축 등 4개 과정이 있다. 정원은 과정마다 20명등 모두 80명이다.

▲신입생은 언제 모집할 생각인가.

-원래는 올해 3월 모집하여 개교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알다시피 코로나19로 인해 학사 일정이 전면 조정이 됐다. 지금 계획으로는 9월 학기에 시작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가능할지 그건 코로나19상황을 봐야 될 것 같다.

▲대학이 모두 서울을 중심으로 운영이 되는데 이 산골짝 지리산에 캠퍼스를 낸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지향하는 바가 자연주의 예술이다. 그런데 학교가 위치한 이곳, 하동군 적량면 동리 삼화실 마을이 세계에서 찾기 어려운 대표 자연지대이다. 그래서 지리적 불리함이 있지만 여기에 학교를 만들었다.

▲이곳 삼화실 마을이 대표 자연지대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서 대표 자연지대는 백두산, 지리산, 한라산이다. 그런데 백두산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한라산은 섬이다. 그래서 지리산을 택했다. 그런데 여기 삼화실 마을은 국립공원에 취락지구가 형성된 곳이며 남해바다와 산, 그리고 국보급생태하천인 섬진강이 있다. 세상에 이런 요소를 모두 갖춘 곳이 없다.

▲원래 하동을 잘 알고 있었나.

-아니다. 10년 전 하동군에 특강을 하러 온 적이 있다. 그때 하동을 처음 접했다. 그 이후 하동에 가끔 왔는데 하동에 와서 제가 생각하던 자연지대에 꼭 맞는 이곳 삼화실 마을을 발견한 거다.

▲삼화실은 무슨 뜻이라고 하던가.

-한자로 삼화(三花), 세 가지 꽃이 피는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곳에 복숭아꽃 배꽃 자두 꽃이 많아서 마을 이름이 삼화실이 됐다고 한다. 예로부터 과수원이 잘 돼서 그런지 마을도 부촌이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이 인심도 좋다. 학교를 운영하기로는 좋은 환경이다.

▲언제부터 학교설립을 시작했나.

-2011년에 하동군과 학교설립에 대한 MOU를 맺었으니 벌써 10년이 됐다. 참 세월이 빠르다. 강산이 한번 바뀌는 세월인 10년 공부를 했으니 이제 결과가 나올 때가 됐다.

▲10년 동안 어떤 일들을 했나.

-하동군이 부지, 도로 정비 등 기반시설을 해줬다. 학교 측에서는 건물 등을 건립했다. 그리고 이곳을 자연주의 예술의 성지로 만들기 위해 2016년부터 세계적인 자연주의 거장들을 초빙해 전시회를 열었다.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

-2016년에 세계적인 대지예술의 거장인 영국의 크리스 드루리(Chris Drury)가 와서 전시를 했고 2017년에는 자연주의 현대미술의 거장인 프랑스 에릭 사마크(Erik Samakh)가 왔다. 또 2018년에는 미국의 자연주의 현대미술의 거장인 제임스 설리번(James W.Sullivan)이 와서 설치를 했고 2019년에는 호주의 업사이클링 설치미술가인 케비나조 스미스(Kevina-jo Smith)가 레지던시 작가로 초대되어 작품을 남겼다. 지금까지 이 같은 세계적인 자연주의 거장들이 남긴 작품들로 인해 이곳은 현대자연주의 예술의 성지가 돼 가고 있다.

▲학교부지와 건물은 어떤 것들이 있나.

-약 2만여 평의 학교 부지에 지금까지 대학원 본관 건물을 포함해 갤러리 등 건물 2동과 야외극장 등을 완성했다. 그래서 학교를 개교할 기본은 갖추었다.

▲상당한 자금이 투자됐을 텐데.

-하동군에서 토목, 도로 등 인프라를 해 줬다. 그리고 나머지 건물 등은 학교에서 부담했는데 지금까지 약 60억 원이 투자됐다. 제가 가지고 있던 사재를 몽땅 털어 넣었다. 앞으로도 계속 투자돼야 한다.

▲이 지리산 산골짝에서 예술분야 대학원을 만든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 지금까지 온 것도 기적이지만 사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지금까지야 땅 사고 건물

짓고 학교 인가 받는 일이었으니까 사실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학생들을 모집하고 가르치는 등 학교를 본격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학생들이 이곳까지 올지, 수업은 제대로 진행이 될지, 또 학교가 잘 운영될지 사실 걱정이 많다. 잘 살다가 인생 말년에 이 무슨 고생인가 하고 고민할 때가 많다. 그래도 자연주의 예술의 성지를 만든다는 포부로 극복해 가고 있다.

▲코로나 19로 비대면 교육이 활성화 되고 있는데 그러면 지리적 조건은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그렇다. 코로나19로 우리도 3월 개학 일정이 연기돼 타격이 많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역으로 코로나로 원격교육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높아져 우리에게는 기회가 된 측면도 많다. 지리산캠퍼스에서 진행하는 대면 수업을 최소화 하고 원격으로 비대면 수업을 높일 경우 캠퍼스의 지리적 위치가 주는 장애를 극복하고 이점은 극대화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코로나 19가 우리에게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준 셈이다.

▲김 학장은 원래 지리산과 인연이 있나.

-그렇다. 제가 태어난 곳이 지리산이다. 1955년 6.25직후, 지리산 동쪽 골짝인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신라에 쫒겨 도망 와 살다가 죽은 곳이다. 그래서 고향에는 구형왕릉, 왕산, 왕등습지 등 구형왕과 관련된 전설이 많이 있는 곳이다. 어릴 때 구형왕릉, 왕산 등에 소풍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제가 구형왕의 자손이다.

▲그럼 어린 시절을 지리산에서 보낸 셈인가.

-그렇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고향에서 금서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서울로 전학을 갔다. 그 이후에는 지리산에 대해 까맞게 잊고 지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인생 2막에 다시 지리산에 정착을 하게 됐다. 지리산 동쪽 골짝에서 태어나 서울과 미국 등 타지를 돌다가 지리산 남쪽 골짝에서 인생의 마지막 프로젝트에 매진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도 운명인지 모르겠다.

▲자연주의 예술을 하게 된 경위도 지리산에서 유년기를 보낸 것과 관련이 있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런 인연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직접적인 계기는 그건 아니다. 언제인지 모르겠는데 그림을 그리는데 물감을 손바닥에 묻혀서 그린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나중에 물감이 마르고 나서 손바닥이 쩍 갈라지더라. 그래서 물감에 사람에게 해로운 물질들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을 유익하게 하자는 예술이 사람을 해친다는 데 생각이 이어졌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자연에서 나오는 소재로 예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게 아마도 자연주의 예술을 하게 된 계기가 아닌가 싶다.

▲공부는 어디서 했나.

-미국의 파슨스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는 국내에 들어와 국민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이제는 재직하던 국민대학에서는 정년퇴직을 하고 한국조형예술원 지리산캠퍼스에서 제2의 인생을 출발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가 제가 뼈를 묻을 곳이다. 자연주의 예술을 했으니 대표적인 자연지대에서 인생을 마무리 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주로 어떤 작품 활동들을 했나.

-주로 설치예술가로 활동을 했다. 설치예술가는 현장에 예술품을 설치한 다음 전시가 끝나면 그것을 다시 해체하는 것을 말한다. 2002년 통영음악제 시작할 때부터 2007년까지 통영음악제 미술감독을 했다.

▲그 외 또 활동한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

-광릉에 있는 국립수목원이 유네스코 생물보전지역으로 등재기념 조형물을 만들어 설치를 했다. 또 경북 안동이 세계유교문화 축제를 하고 있다. 여기에도 작품을 설치했다.

▲작품에는 주로 어떤 소재들을 활용하나.

-제가 자연주의 예술가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자연재료를 활용하려고 한다. 저는 그것을 퇴역된 자료라고 한다. 예를 들면 사용하고 버린 통발 등 일종의 쓰레기를 활용하는 거다.

▲쓰레기라고 표현하지 않고 퇴역된 자료라고 하는 이유가 있나.

-제가 여기에서도 통발 등으로 작품을 만들었더니 마을 사람들이 왜 쓰레기를 잔뜩 가지고 왔냐고 하더라. 그래서 아직은 쓰레기란 말을 쓰기가 조심스럽다. 그래서 순화된 언어인 퇴역된 재료라는 말을 쓴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싶나.

-지리산에는 원시예술인 원형문화재가 다수 존재한다. 이런 것들을 현대화해서 세계에 알리는 작업을 하고 싶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가.

-2016년에 지리산권의 꽃상여작업을 했다. 처음에는 다들 의아해 했다. 그런데 2019년에 남해에서 쓰고 버린 통발을 채색을 해서 통발상여를 만들어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를 했다. 그랬더니 그곳이 포토 존이 됐다. 그 기간 동안 대중의 인식이 바뀐 거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리산산신제를 복원해서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 대담 황인태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988, 4층 (칠암동)
  • 대표전화 : 055-743-8000
  • 팩스 : 055-748-14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선효
  • 법인명 : 주식회사 경남미디어
  • 제호 : 경남미디어
  • 등록번호 : 경남 아 02393
  • 등록일 : 2018-09-19
  • 발행일 : 2018-11-11
  • 발행인 : 황인태
  • 편집인 : 황인태
  • 경남미디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7481400@daum.net
ND소프트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이선효 055-743-8000 74380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