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찬의 소설 따라 역사 따라] 제30화 현덕왕후의 폐위와 복위
[정원찬의 소설 따라 역사 따라] 제30화 현덕왕후의 폐위와 복위
  • 경남미디어
  • 승인 2020.07.03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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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왕후의 수난 56년 만에 문종 곁으로 돌아와

현덕왕후 단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다음날 숨져
단종복위운동 직후 죄인(단종)의 어미라 하여 폐서인
왕후의 친정 집안 멸문지화 피해 가지 못해

세조, 형수의 무덤을 파고 관을 바닷가에 버려
버려진 관 스님이 수습하여 임시로 매장
죄를 소급 적용함은 부당하다고 상소 끊이질 않아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전기 제5대 문종의 능(왼쪽)과 현덕왕후의 능. 마주보고 잠들어 있다.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전기 제5대 문종의 능(왼쪽)과 현덕왕후의 능. 마주보고 잠들어 있다.

문종 비 현덕왕후는 단종을 낳은 다음 날 숨을 거두었다. 그때는 세자빈의 신분이었는데 문종이 왕위에 오르자 현덕왕후로 추존되었다. 그러다가 사육신을 중심으로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관련자들은 모두 극형을 받게 되는데 이때 현덕왕후의 친정 집안도 멸문지화를 면치 못했다. 현덕왕후의 친정어머니와 동생인 권자신도 함께 능지처참을 당했고, 이미 단종이 죄인이 되었으니 그 어미 된 자도 그냥 둘 수 없다 하여 현덕왕후를 폐서인하였다. 조카인 단종도 죽였는데 이미 죽은 형수를 폐서인하는 일쯤이야 세조에겐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1. 소릉을 파헤치다

​현덕왕후의 수난은 폐위시킨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죄인의 무덤이니 평민의 무덤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명목으로 세조는 형수의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어 바닷가에 버렸다.

정조 때 이긍익(李肯翊)이 쓴 <연려실기술>의 기록을 살펴보자.

- 밤중에 부인의 울음소리가 바다 가운데서 나더니 차츰 옮겨와 산 아래에서 그쳤다. 스님이 새벽에 그곳에 가 보니 옻칠을 한 관이 물가로 떠내려와 있었다. 중은 너무도 놀랍고 괴이쩍어 곧 풀을 베어 관을 덮고 바닷가 흙을 덮어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그 뒤 조수에 밀려온 모래가 쌓이고 쌓여 육지가 되었는데, 몇 년 안 되어서 풀이 나고 언덕이 되었다. -

< 연려실기술 > 제4권 문종조 고사본말 편 기사 중에서

지금도 안산에 가면 관우물터가 남아 있다. 현덕왕후의 버려진 관이 바닷물에 밀려다니다가 이곳에 이르렀는데 훗날 이곳이 육지가 된 뒤 우물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관이 닿은 우물터라고 하여 관우물이라 이름하였다고 전해진다.

2. 현덕왕후의 복위

​단종복위 사건으로 하여 단종은 임금에서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말았다. 현덕왕후도 죄인의 어미이니 그냥 둘 수 없다 하여 폐위되었다. 이미 현덕왕후가 죽은 지 16년이나 지났는데도 죄를 연좌시켜 폐위시켰다. 소급해서 죄를 연좌함은 부당하다는 상소가 끊임없이 올라오는데도 세조는 현덕왕후의 폐위를 밀어붙였다.

세조의 개인적인 감정이 더 크게 작용했던 폐위는 오래지 않아 설득력을 잃고 복위 문제로 이어졌다. 성종 2년부터 꾸준히 제기되던 복위 문제는 중종 7년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조정 대신들은 하루를 거르지 않고 복위 문제를 중종에게 고하였고 상소 또한 그치지 않았다.

이 무렵에는 조정의 여론뿐만 아니라 민심 또한 현덕왕후의 복위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영의정 유순정의 죽음에 관한 <연려실기술> 기록만 보더라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유순정은 현덕왕후 복위에 가장 반대하던 사람이었다. 그날도 조정에서는 복위 논쟁으로 한창 설전이 벌어지고 있던 중에 갑자기 유순정이 쓰러져 실려 나갔다. 그는 그길로 병이 심해져서 드디어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유순정의 죽음을 두고 말하길 먼저 죽은 정미수(현덕왕후의 외손자, 즉 경혜공주의 아들)가 유순정을 잡아간 것이라고 했다.

한동안 조정을 뜨겁게 달구던 복위 문제가 결론을 내지 못하고 해를 넘기더니 중종 8년 2월 18일에 종묘에 있는 큰 소나무에 벼락이 떨어지는 일이 일어났다. 이런 불길한 재앙이 일어나는 원인은 문종이 왕후가 없이 홀로 제사를 받는 것 때문이라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복위를 염원하는 민심이 하늘에 닿아 이런 재앙을 일으키게 한 것이라고 믿었다.

직제학 이항(李沆)이 임금께 아뢰기를, “소릉이 죄 없이 폐위당한 것을 누구든 모르리까마는, 주상께서 들어주지 않으시므로 인심이 모두 울부짖고 있습니다. 이번 재앙이 종묘에서 일어난 것에 어찌 까닭이 없겠나이까. 인심이 이와 같으니 천심도 따라 움직인 것입니다. 오늘로 결정하소서.”

​마침내 중종은 대간들의 주청을 받아들여 현덕왕후를 복위하고 바닷가에 외로이 있던 왕후의 묘를 문종이 묻힌 현릉 왼쪽 능선으로 옮기게 했다.

​3. 바닷가에 버려졌던 56년 세월

​마침내 천장(이장)이 결정되었다. 문종이 묻힌 현릉 곁으로 소릉을 옮기기 위해 천장도감이 설치되었다. 총감독에는 송일(宋軼)이 임명되었다.

그런데 송일이 임금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듣건대 소릉은 천장할 때 외곽 없이 내관만으로 장례하고 회와 모래와 황토를 섞어 다지지도 않았다 하니, 필시 관도 없고 해골만 있을 것입니다. 무릇 천장하는 사람들이 해골이 있으면 해골만 거두어 장례하였으니, 이 예에 의하여 행함이 어떠하리까? 그러나 해골도 없다면 어떻게 처리하리까? 만약 해골이 없으면 혼을 모셔 염장함은 어떠하리까?”

하니, 임금이 하교하기를, “추측만 하지 말고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처리하라.”고 하였다.

중종의 하교대로 송일은 의녀 4명을 데리고 갔다. 다행스럽게도 유골이 남아 있어 의녀들과 함께 유골을 수습하여 문종 곁으로 천장을 하게 되었다.

​4. 문종 곁에 영원히 묻히다

​실로 오랜 세월이었다. 소릉에 묻힌 지 72년, 폐위된 날로부터 56년 만에 현덕왕후는 마침내 남편 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작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자리 잡은 문종과 현덕왕후. 가만히 불러도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건만 두 능 사이에 우거진 소나무 몇 그루가 시야를 막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소나무 중 한 그루가 천장한 지 며칠이 되지 않아 말라 죽었다. 두 사람의 간절한 사랑과 그리움을 소나무가 죽음으로써 감응했으리라.

다음 날 천장 감독관이 일꾼에 명해 나머지 소나무를 잘라내게 하니 두 능 사이에 막힌 것이 뚫려 서로 잘 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보고 있어도 더 보고 싶은 두 사랑은 오늘도 동구릉에 지척인 거리에서 서로 마주 보며 잠들어 있다.

5. 유순(柳洵)이 바친 애도의 노래

영의정을 지낸 유순이 현덕왕후가 문종 곁에 묻히던 날 애도의 시를 바쳤다.

덕성스런 요조숙녀 성군을 짝했나니
왕후의 그 예의범절 지금까지 전해오네
옛날 동궁에선 빈의 모범으로 불리었고
먼 훗날 사관의 붓은 덕망을 전파하리
승하하심을 애도한 지 그 몇 해나 되었는가
같은 땅에 묻히심은 만백성의 소원일세
팔십 난 늙은 백성 아직까지 남아 있어
어찌 또 다시 상여에 곡할 줄 알았으랴
< 중종실록 > 중종 8년 4월 21일 기사 중에서

*** 다음 이야기는 < 정인지의 두 얼굴 > 편이 이어집니다.

정원찬 작가

▶장편소설 「먹빛」 상·하권 출간
▶장편소설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출간
▶뮤지컬 「명예」 극본 및 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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