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보석같은약초이야기]어느 골짜기에 어떤 약초 있는지 머리 속에…
[지리산의보석같은약초이야기]어느 골짜기에 어떤 약초 있는지 머리 속에…
  • 황인태 본지 회장
  • 승인 2018.12.28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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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도시생활에서 폐병얻어 오봉마을로 귀향
오소리 기름에 열댓가지 약재 넣고 다린 물로 회복
약초 캐며 지리산 자락 하루 40㎞ 누비는 ‘다람쥐’

등산객·약초 채집꾼들 ‘약초싹쓸이’에 안타까움 크다
약초군락지 보호와 민간요법 전수가 나의 남의 역할

지리산 약초 내비게이터 민대호 선생

민대호 선생
민대호 선생

 

오봉마을은 금서면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오봉마을 뒷 재를 넘어가면 대원사 계곡이 나온다. 예전에는 초등학생들이 오봉마을 뒷산인 새재를 넘어 대원사까지 소풍도 가고 했다고 한다. 지금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이다. 지금 아이들 보고 새재를 넘어가라면 아마 가기도 전에 병원부터 가야할 거다.

오봉마을과 가현마을 등은 원래 약초로 유명한 곳이다. 바로 뒷산들이 약초가 풍부한 고동재, 왕등습지 등이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 약초 내비게이터라 불리는 민대호 선생은 여기서 나서 자랐다. 젊었을 때 잠시 도회지에 나간 적이 있었으나 금방 병을 얻어 다시 오봉마을로 돌아오고 말았다. 잠시 부산에서 전자제품에 페인트 칠을 하는 일을 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폐병이 생겼다. 병이 생기자 그는 만사를 그만두고 마음속에 그리던 오봉마을 산속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봉마을에서 병이 낫자 도시로 나가지 않고 그만 눌러앉아 지리산 약초꾼이 되고 말았다.

“오소리 기름을 내고 도라지, 작약, 잔대 등 열 댓가지 약재와 꿀을 넣고 푹 다려서 두 솥 먹으니까 낫더라구요. 그게 양으로 따지면 한말은 될 겁니다. 여기서 폐병이 걸린 사람들은 그렇게 먹고 많이 나았어요.”

산에 돌아와 병이 낫고 나니 지리산 생활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민대호 선생은 산을 타면 하루에 보통 40km는 움직인다고 했다. 평지를 걸어도 하루에 40km를 걷기가 쉽지 않은데 지리산을 약초를 캐면서 40km를 다닌다는 것은 다람쥐 수준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민 선생은 지리산을 내 앞마당처럼 누비고 다니고 있다.

 

자신의 집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약초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민대호 선생(왼쪽 얼룩무늬 옷).
자신의 집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약초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민대호 선생(왼쪽 얼룩무늬 옷).

민 선생의 오두막에 가면 산작약, 세신, 지취, 봉삼, 오미자, 산도라지, 돌배, 세발당귀, 능이버섯, 표고버섯 등 지리산에 캔 야생약초들이 즐비하다. 세발당귀는 지리산에서만 자라는 것인데 피를 맑게 하는데 약효가 뛰어나다. 주로 지리산 1500m 이상에서 자라 일반인들이 채취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약초는 캐는 시간이 다 다릅니다. 뿌리를 쓰는 것은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서 봄까지 캐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잎을 약으로 쓰는 것은 잎에 영양이 가장 많은 여름에 채집한 것이 좋구요. 물론 열매를 약으로 쓰는 것은 가을이 좋습니다. 이처럼 약초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채취하는 것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일년 내내 쉴 날이 없어요.”

민 선생은 주로 봄에는 더덕, 초오, 잔대를 캐고 가을에는 백작약과 강활, 독활을 캐고 오미자를 딴다고 한다. 표고는 봄과 가을 모두 딴다. 그런데 민 선생이 지리산 약초 중에서 제일로 치는 것은 백작약이다.

“백작약은 식중독 걸렸을 때 다려서 먹으면 좋아요. 백작약은 일반 작약과 달라서 꽃이 희고 약효도 더 좋습니다. 백작약은 해발 700m 이상 고지에서 자라는 데, 칠년 이상 자라면 뿌리 한줄기가 보약 한 첩과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약효가 좋다고 해요.”

민대호 선생은 지리산 약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래서 자꾸만 지리산 야생 약초가 사라지는 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많다고 했다. 등산객들이 “어디에 좋다”는 소리를 들으면 떼로 몰려와서 약초를 남획해 가기 때문에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리산 야생약초의 씨가 마르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고 있다고 했다.

“약초꾼들은 나름대로 원칙이 있어요. 약초를 캐도 절대로 다 캐지 않아요. 어린 것이 자라서 계속 군락지를 이룰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이지요. 또 씨를 심어두어서 다음에 캘 수 있도록 해요. 이렇게 해야 지리산 약초가 제대로 유지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일반인들은 약초 군락지를 발견하면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고 뿌리까지 씨를 말려버리기 일쑤라고 했다. 그래서 민 선생은 자신이 알고 있는 약초 군락지를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 혼자만 알고 있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한번 가르쳐 줘 놓으면 친구들까지 데려와 약초군락지를 다 망쳐버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약초를 캐면서 그도 실수한 적이 있다고 한다. 자신이 캔 약초를 아버지가 잘못 먹고 죽을 고비를 넘긴 것.

“강작약이란 게 있는데 이게 잘 못 먹으면 독약이라요. 뿌리는 작약처럼 생겼는데 잎은 관절염에 쓰는 자리공하고 비슷해요. 산에서 멋도 모르고 캐서 아버지께 드렸는데 아버지가 생으로 씹어 드시다가 아주 큰일을 낼 뻔 했지요. 그때 마침 군대에서 의사하던 분이 방곡에 있어서 그 분 덕에 살았지요.”

민대호 선생은 자신같이 평생을 약초를 캔 사람도 이처럼 실수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반인들은 절대 산에서 캔 약초를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리산에 많이 나는 지리강활을 당귀인줄 잘못 알고 먹고 중독되는 사고가 지리산에서 종종 일어난다고 했다. 그만큼 약초는 신중히 다루어야 한다는 게 민 선생의 지론이다.

“우리 세대는 사는 게 어려워서 약초라도 캐어서 먹고 살았어요. 그 덕분에 지리산 어느 골짝에 어떤 약초가 있는지 훤히 알게 되었고 그것이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도 많이 됐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즈음은 전문적으로 약초를 캐려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 같은 약초꾼들이 알고 있는 내용들이 전수되기 어려운 여건이예요. 우리가 머리에 담고 있는 지리산 약초 군락지들이 자격을 갖춘 후배들에게 전수되었으면 좋겠어요.”

민대호 선생은 자신들이 평생 익힌 약초 채집 관련 지식과 지리산 민간요법이 사라져 가는데 대해 아쉬움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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