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26년간 보훈병원에서 근무한 우리나라 보훈의료의 산 증인
[명의] 26년간 보훈병원에서 근무한 우리나라 보훈의료의 산 증인
  • 경남미디어
  • 승인 2020.07.08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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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방 하얀메디컬 비뇨기과 원장

우리나라에서 음경보형물 수술 가장 많이 한 의사 중 한 명
의사로 50년, 의학뿐 아니라 환자에 대한 철학적 소견 생겨
서울대 출신으로 서울대학병원, 아산병원 등 의료계 마당발

문재인 대통령처럼 함경남도 출신. 1.4후퇴 때 거제도 피난
진주로 아예 주소 옮기고 진주의 남성 질환 치료에 전념해
진주 경상대병원, 서울대병원·세브란병원 등과 교류 넓혀야

심홍방(70) 하얀메디컬 비뇨기과 원장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석·박사과정을 마친 후, 지난 1987년 서울보훈병원에서 의사로서 첫 생활을 시작했다. 보훈병원에 근무하면서 비뇨기과 과장, 교육연구부장, 제2진료부장, 서울보훈병원장과 중앙보훈병원장을 역임한 우리나라 보훈의료계의 산 증인이다. 심 원장은 지난 26년간 각별한 애정으로 보훈의료 발전에 기여해왔으며 서울보훈병원이 2011년 중앙보훈병원으로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보훈병원장을 마친 후 충주의료원장에 임명돼 흑자로 만드는 등 전문 병원경영인으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심 원장은 충주의료원장을 마친 후 올해 1월 하얀메디컬 이병송 대표원장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생애 처음으로 진주 땅을 밟았다. 진주에 와서 지방 의료계의 현실을 실감하고 있는 심 원장은 그러나 전립선암 진단 등, 남성과학 분야에서 차근차근 그 실력을 발휘해 가고 있다. 진료에 집중하기 위해 아예 주소를 진주로 옮긴 심 원장은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이지만 그동안 진주에서 5명의 전립선암 환자를 발견해 서울의 후배들에게 보내 치료를 담당토록 했다. 심 원장은 진주에서는 수술경험이 많은 의사들이 없어 치료가 어렵다고 판단해 서울의 후배들에게 보냈다고 했다.

심 원장은 일반의 인식과는 달리 보훈병원은 주로 총상 등으로 장애를 입은 환자들이 많아 의외로 비뇨기과 분야의 치료수요가 많다고 했다. 특히 척추를 손상당할 경우 오줌을 누지 못해 염증이 생겨 사망에 이르는 사례가 많다는 것. 심 원장은 평생 이러한 환자들을 치료해 왔다. 심 원장은 보훈병원 생활이 비뇨기과 의사로서 임상경험을 많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강조했다.

“의사로서 50년 정도 되니 이제 의학적 소견보다는 환자에 대한 철학적 견해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심 원장은 이제 자신의 나이 70으로 대학부터 계산하면 의사생활이 50년 되니 환자를 보면 어떤 방향으로 치료를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철학적 견해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80살 된 전립선암 환자는 수술, 방사선 치료 보다 그대로 두면서 마음 편하게 지내도록 해도 90까지는 살 수 있다는 것. 꼭 수술이나 치료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게 심 원장의 토로이다.

의사로서 언제나 환자 옆에 있어야 된다는 게 소신이라는 심 원장은 새벽 1시가 되어도 환자가 전화가 오면 받는다고 했다. 환자와 멀리 있는 의사는 의사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게 심 원장의 지론이다.

“진주는 예전에는 윤양병원이 있어서 의료수준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경상대학 병원에 대한 서울대학병원 등의 뒷받침이 낮아서 걱정이 됩니다.” 경상대학 병원이 초기에는 서울대학병원과 소통이 잘돼 좋았는데 최근에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의료수준의 저하가 우려된다는 게 심 원장의 진단. 심 원장은 경상대학병원은 아무래도 서울대, 세브란스 등의 지원을 잘 받는 게 진주의 의료수준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홍방 하얀메디컬 비뇨기과 원장은 의사로서 언제나 환자 옆에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심홍방 하얀메디컬 비뇨기과 원장은 의사로서 언제나 환자 옆에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심홍방 원장과의 상세한 대담내용이다.

▲진주는 처음인가.

-그렇다. 태어나서 진주에 와보기는 하얀메디컬에서 초빙해서 올 1월에 온 게 처음이다.

▲자택은 어디인가.

-진주시 금산면에 있는 아파트를 얻어서 산다. 주소도 옮겼고 투표도 여기서 한다. 완전히 진주 사람이 됐다.

▲굳이 주소를 옮길 필요가 있었나.

-아무래도 진료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병원이 있는 곳에 자택이 있는 게 좋다. 저는 새벽 1시에 환자가 전화를 와도 받는다. 충주의료원장 할 때도 충주에 집이 있었다. 이제 아이들도 다 출가해서 굳이 서울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 서울에 집이 없다.

▲고향이 어디인가.

-이북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동향이다. 함경남도 단천이다. 1.4후퇴 때 거제도로 피난 와서 6살 때까지 마산에서 살았다. 그 이후 아버님의 연고가 있는 서울에 가서 자랐다.

▲1950년생인데 피난 올 때는 아기였을 것 아닌가.

-그렇다. 제가 1950년 3월생이니까 피난올 때 생후 10개월 된 아이였다. 강보에 쌓여서 피난을 왔다고 한다.

▲의사가 된 지는 얼마나 됐나.

-1987년도에 레지던트 마치고 서울보훈병원 비뇨기과 과장으로 시작했으니 33년째이다.

▲주로 어디서 근무했나.

-저는 평생을 보훈의료에 종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보훈병원 비뇨기과 과장으로 시작해 2008년 서울보훈병원장이 됐고 2011년에 중앙보훈병원 원장을 했다. 26년간 보훈의료에 종사했다.

▲그렇게 오래 동안 보훈의료에 종사하게 된 계기가 있나.

-보훈병원은 국가유공자들을 치료하는 기관이다. 국가유공자들을 대하다 보면 소명 같은 게 생긴다. 국가유공자들을 잘 대우해야겠다, 는 생각에 일하다 보니 평생을 보훈의료에 종사하게 됐다.

▲국가유공자들은 주로 외상을 입는 사람들이 많아서 외과를 떠올리게 되는데.

-물론 그렇다. 그러나 장애가 되면 의외로 음경이나 고환, 방광 등에 문제가 많이 생긴다. 이런 질병은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그래서 비뇨기과 의료가 꼭 필요하다. 외상으로 장애가 되어도 정상적인 성생활에 대한 욕구는 강하다. 그런 문제도 제가 해결하는 분야이다.

▲요즈음 비뇨기과 질환의 추세는 어떤가.

-요즈음 비뇨기과 질환에서는 전립선암이 화두다. 벌써 우리나라 5번째 암이 됐다.

▲이렇게 전립선암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가 뭔가.

-아마도 우리 식생활이 육식위주로 된 게 주된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오래 사는 것도 큰 요인이다. 예전에는 전립선암이 걸리기 전에 다른 질병으로 죽었다. 그런데 이제는 전립선암에 걸릴 정도로 오래 살게 됐다는 의미이다.

▲진주에도 전립선암이 많던가.

-제가 온지 6개월 정도 된다. 그런데 벌써 5명의 전립선암 환자를 발견했다. 진주에도 많다는 의미이다.

▲그 환자들은 어떻게 치료했나.

-진주에서는 현실적으로 치료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전립선암 수술을 제일 많이 하는 서울의 후배에게 보내 치료하게 했다. 평생 보훈의료계에서 있다 보니 우리나라 의료계에 인맥이 많은 편이다.

▲진료에 어떤 원칙이 있나.

-제가 의대부터 계산하면 의사생활한지 50년 된다. 그렇게 오랜 세월 의사생활을 하다 보니 이제는 의학적견해보다 질병에 대한 철학적 요소가 보이기 시작하더라.

▲어떤 의미인가.

-환자들이 병이 났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지 그 방법을 알게 되더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80세에 전립선암이 생겼다고 하면 가만 놔두라고 한다. 가만 놔둬도 90까지는 산다. 굳이 수술하고 방사선치료하면서 고통을 당하면서 치료하는 것보다는 가만 놔두는 방식이 더 낫다는 말이다.

▲의사로서 본인은 어떤 타입인가.

-저는 환자 보는 시간이 긴 편이다. 환자의 말을 다 들어주고 그리고는 설명을 끝까지 다 해준다. 보훈병원에서 진료를 할 때에도 제가 환자를 제일 많이 보는 의사였다. 보통 하루에 200~250명 봤다. 그래서 인센티브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의사는 항상 환자 옆에 있어야 한다. 환자와 멀리 있는 의사는 자격이 없다는 게 제 소신이다.

▲그동안 의사로서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

-1978년도에 제가 서울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할 때이다. 그때 서울 영등포에서 여자거지가 술먹고 싸우다 방광이 터져서 긴급하게 이송돼 왔다. 그래서 치료를 했는데 이 환자가 거지이다 보니 치료비가 없었다. 그래서 치료가 끝난 후 새벽 4시에 수간호사 몰래 도망을 시켰다. 후배 레지던트들에게서 돈을 모아서 5000원을 차비로 주면서 도망가라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

-나중에 병원에서 알고 난리가 났다. 그래도 제 생각은 저 여자를 그냥 둬도 병원비를 부담할 형편이 안 되는 것은 뻔 하고 차라리 내보내고 다른 환자를 받는 게 병원에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제 의사 인생에 굉장히 큰 방향이 됐다.

▲어떤 방향인가.

-어째든 의사로서 좋은 일 하고 살아야겠다, 하는 그런 계기가 됐다. 그 이후 의사생활하면서 병원비가 없는 환자에게 진료비를 내준 경우도 많다. 오죽하면 병원비도 없겠나 싶어서 자동적으로 진료비를 내주게 된다.

▲의사로서 제일 잘하는 분야는 무엇인가.

-남성 과학이라고 하는데 주로 하반신 마비 환자들을 치료하는 게 제가 잘하는 분야이다.

▲그들에게도 비뇨기과가 필요한가.

-그렇다. 하반신이 마비되면 오줌을 잘 못 누게 된다. 그런데 이걸 방치하면 콩팥에 염증이 생겨서 죽게 된다. 그래서 하반신 마미가 되면 오줌을 잘 누게 도와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억나는 환자가 있나.

-12.12때 우경윤 장군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 분이 정승화 체포하러 가서 총을 맞았다. 그래서 하반신이 마비가 됐다. 보훈병원에 왔는데 제가 주치의를 해줬다.

▲주로 어떤 치료인가.

-이분도 하반신이 마비가 되다 보니 오줌을 잘 못 누는 그런 불편함이 있었다. 그런데 제가 관리하는 방법을 잘 가르쳐 줘서 지금까지 염증으로 병원한번 안 갔다. 그래서 우 장군은 제가 평생 고마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장기가 있나.

-음경보형물 수술이 제가 잘하는 분야이다.

▲그게 뭔가.

-비아그라도 안 듣는 사람들은 음경보형물 수술을 통해 발기를 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 그 수술을 하나.

-여러 이유로 음경에 신경이 마비되면 비아그라도 효과가 없게 된다. 그럴 경우 마지막 단계로 음경보형물 수술을 할 수밖에 없다. 제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한 의사 중 한 사람이다.

▲진주에 와 보니 진주의료수준이 어떻든가.

-진주는 예전에는 윤양병원이 있어서 의료수준이 높았다. 그 이후 경상대학병원이 생겼다. 그런데 초기에는 서울대병원에서 뒷받침을 해줬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왜 뒷받침이 잘 안되는가.

-아무래도 졸업생이 생기다 보면 우리출신이 해야 된다는 그런 움직임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렇다 보니 서울대병원이나 아산병원 등에 있던 의사가 오지 않는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직도 경상대학병원은 서울대, 세브란스 출신들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성모병원은 카톨릭대학이 운영하는 병원이다. 이 병원도 카대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럼에도 서울대와 세브란스 출신들의 지원을 많이 받는다. 경상대학병원이 이런 사례를 참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대담 황인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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