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찬의 소설 따라 역사 따라] 제32화 세조의 불행
[정원찬의 소설 따라 역사 따라] 제32화 세조의 불행
  • 경남미디어
  • 승인 2020.07.15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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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 세조 두 아들 모두 스무 살에 요절

보위에 오른 세조 18세 장남 도원군을 세자에 책봉
세자 병세 위급하자 대신과 종친 명산대찰에 기도케 해
폐위시킨 현덕왕후가 꿈에 나타나는 악몽에 늘 시달려

세자 두 아들을 남기고 20세에 요절
8세인 해양대군을 서둘러 세자에 책봉
예종이 된 해양대군 재위 1년 만에 20세로 급사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영월 청령포로 격리시키고 현덕왕후를 노산군의 어미라 하여 폐위시킨 세조는 현덕왕후의 악몽에 시달린다. 사진은 JTBC(차이나는 클라스) 현덕왕후의 복수극 중에서.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영월 청령포로 격리시키고 현덕왕후를 노산군의 어미라 하여 폐위시킨 세조는 현덕왕후의 악몽에 시달린다. 사진은 JTBC(차이나는 클라스) 현덕왕후의 복수극 중에서.

세조는 정희왕후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두었다. 장남으로 태어난 도원군(의경세자) 이숭은 13살이 되던 해 청주 한씨(훗날 인수대비)와 혼인하여 월산대군과 자을산군(훗날 성조)을 낳았다. 그러나 20살이 되던 해 요절하게 되니 차남이었던 해양대군이 세자의 지위를 이어받게 되었다. 훗날 세조의 뒤를 이어 조선 8대 임금(예종)에 올랐지만 그도 20살에 요절하고 말았다. 두 아들이 모두 20살에 요절하였으니 많은 악업을 쌓은 세조에겐 예고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1. 도원군 이숭(李崇)

​도원군은 수양대군이 사저에 있을 때 태어나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자 18살에 원자로 책봉되었다가 곧바로 세자에 책봉되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예절이 바르고 학문을 좋아했으며, 해서에 능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나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쫓겨나자 단종보다 3살이 위인 그는 창덕궁을 찾아 상왕을 가끔 문안하곤 했다. 세조를 이어 장차 임금이 될 세자로서는 어쩌면 단종과 얼굴을 맞대고 싶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상왕을 가끔 찾아 문안한 것을 보면 어쩌면 아버지 세조와는 다른 심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가 세자 자리에 있었던 것은 2년여밖에 되지 않는다. 20세가 되던 해 봄에는 사냥을 다닐 정도였으니 지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하여 영월 청령포에 격리시킨 한 달 뒤, 여름의 끝 무렵부터 건강하던 세자가 갑자기 병을 앓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세조가 3정승과 의관을 불러 약 처방에 대해 논하는가 하면 여러 신하나 종친들에게 재를 올리게 하고 각 지방 명산대찰에 보내어 기도를 드리게 하였다.

세자의 병 때문에 중 21명을 경회루 아래에 모아서 공작재를 베풀어 밤이 새도록 불법(佛法)을 행하게 하였다. 의정부 당상관과 육조판서, 승지 등에게 명하여 재소(齋所)에 들어가 기도하게 하였다.

공작재(孔雀齋)란 불교의 한 의식으로써 재앙을 없애고 병마를 떨쳐 일어나 오래 살게 하도록 베푸는 재(齋)를 말한다. 그 공작재에 모든 조정 대신들을 들여 기도케 할 정도라면 병세가 얼마나 급박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급기야 최측근인 한명회, 신숙주와 내의원을 불러 처방을 논의하더니 발병한 지 채 열흘이 지나지 않을 무렵 군사를 풀어 세자가 머무는 동궁을 철통 경비하기에 이른다. 계유정난을 주도적으로 이끈 홍달손, 양정을 시켜 경비를 강화한 것을 보면 세자의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알게 해 준다.

2. 세조의 악몽

​이 무렵 세조는 극심한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영월 청령포로 격리시키고 현덕왕후를 노산군의 어미라 하여 폐위시킨 지 한 달이 지날 무렵이었다.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세조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현덕왕후가 나타나서 “죄 없는 내 자식을 죽였으니 네 자식도 죽이겠다”고 하였는데, 세조가 잠에서 깨자마자 세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이에 화가 난 세조는 현덕왕후의 능인 소릉을 파헤쳐 바닷가에 버리게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세자가 단종보다 두 달 정도 먼저 사망하였으므로 사실이라고 보기에는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다만 형수의 무덤인 소릉을 파헤쳐 서인의 무덤으로 바꾸라고 한 것을 보면 세조의 분노를 간접적으로나마 추증하게 한다.

3. 의경세자의 죽음

세조 3년 9월 경복궁 자선당에서 세자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나이 20세. 뚜렷한 병명을 알지 못했으니 약 처방도 제대로 써 보지 못했다. 네 살 된 월산대군과 생후 50일 된 자을산군을 두고 죽었으니 눈도 제대로 감지 못했을 것이다. 장남을 잃은 세조와 정희왕후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세자빈 한씨도 남편이 세자의 지위를 잃었으니 세자빈 자리를 유지할 수 없었다. 수빈(粹嬪)으로 신분이 격하되어 출궁하였고 그래서 사가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4. 인과응보

​20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은 의경세자의 자리는 차남인 해양대군에게 돌아갔다. 당시 권력의 중심에 섰던 한명회는 욕심을 부려 셋째 딸을 해양대군에게 시집보냈다. 그러나 그녀는 인성대군을 낳고 산후병으로 17살에 사망하고 그 아들 인성대군 역시 세 살에 죽고 말았다. 해양대군이 12살에 얻은 아들이었는데 한명회의 외손자는 단명하고 말았다. 세조의 뒤를 이은 해양대군은 조선 8대 임금 예종이 되었으나 1년 남짓 용상에 있었을 뿐 그 역시 20살에 요절하고 말았다. 형인 의경세자와 같은 나이에 죽었으니 악업을 많이 저지른 세조의 인과응보라고나 할까? 그는 둘째 아들마저 20살에 요절하는 참상을 보지 않고 먼저 죽었으니 그나마 세조가 누린 행복이 아닐까? 세조에게 하나밖에 없는 딸 의석공주도 정인지의 둘째아들에게 시집갔으나 자식 없이 37살에 죽었으니 결코 온전한 삶은 아니었다.

세조의 손자들을 보면 장손인 월산대군이 35살, 성종이 39살, 인성대군이 3살에 죽었으니 거의 단명했고 왕권에서 멀어진 제안대군만이 60살까지 살았다. (지금까지 기술된 나이는 우리나라 나이로 계산된 것임)

5. 이상한 기록

​의경세자가 죽은 지 20일이 지날 무렵, 황해도 관찰사로부터 보고가 올라왔다. 노비 석산(石山)이란 자가 있는데 그 자가 해양대군의 노비인 망내(亡乃)로부터 들었다는 괴이한 이야기를 보고한 것이다. 그 내용은 의경세자의 죽음도 예견된 것이었고 해양대군도 누군가로부터 해를 당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세자의 죽음과 관련한 말은 내용의 진위 여부를 떠나 누구도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금기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경스런 말이 노비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실록 기록을 보자.


- 황해도 관찰사 이예손이 사람을 보내어 노비 석산의 난언(亂言)을 계달하였다. 임금이 경회루 동편방(東偏房)에 나아가서 좌우를 물리치고 그 자를 친히 불러 물으니,

“도원군을 세자에 잘못 봉(封)하였으니, 세자가 죽지 않고 어찌하겠느냐? 또 반드시 해양대군을 해할 자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정말 난언(亂言)이다.”

하고, 즉시 승정원에 명하하기를

“석산은 형틀을 씌워서 군사 10여 인으로 하여금 압송하게 하고, 그 원고(元告) 중경(仲敬)과 함께 들은 증인 석곤(石昆), 망내(亡乃) 등도 역마를 주어 올려 보내라.”

하였다. - < 세조실록> 세조 3년 9월 23일 기사 중에서


이 실록의 기사는 의경세자나 해양대군의 죽음이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세조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관련자들을 잡아들여 조용히 조사를 진행한 듯하다. 피바람을 몰고 올 만한 엄청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자들의 처벌에 대한 실록의 기록에는 한 마디도 언급된 것이 없다. 유언비어를 퍼뜨린 죄를 물어 관련자들에게 엄한 벌을 내렸더라면 차라리 세조다운 모양새였는데 세조는 없었던 일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런 세조의 행위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더욱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젊디젊은 두 아들의 죽음. 누가 그들의 죽음을 쉽게 받아드릴 수 있겠는가? 권력 뒤에 숨겨진 검은 실체가 두 아들을 20살에 죽게 만든 것은 아닐까?

다음 이야기는 < 금성대군의 충절 > 편이 이어집니다.

정원찬 작가

▶장편소설 「먹빛」 상·하권 출간
▶장편소설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출간
▶뮤지컬 「명예」 극본 및 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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