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의세상엿보기] 미성숙 사회 - 인지부조화와 확증편향 -
[김용희의세상엿보기] 미성숙 사회 - 인지부조화와 확증편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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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16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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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수필가
시인·수필가

이전 세상도 이랬던가? 요즘 어찌 ‘세상이 뒤집어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다.

인권변호사, 최초의 성희롱사건 변호사였던 분이 동일한 유형의 가해자로 지목받고, 그것도 하루만에 세상지우기로 카톡방 탈퇴하듯 해버리는 사건도 그렇고, 이런 유형의 난해 기이한 일들이 계속 일반 국민들을 깊은 혼동에 빠지게 한다. 사회 소외자들의 상징이자 대변인 역할을 하던 분이 어찌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비행(?)으로 이 세상방 탈퇴라니. 호접몽들을 꾸고 있는 것인가?

인지부조화 확증편향 이런 단어가 지금 시대의 상징어가 되어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이해되는 세상이 될 것 같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늑대가 어머니 해치고 아이들 기다리는 집으로 와서 어머니 목소리로 방문 열어달라던, 그러니까 가식과 위선이 극심해 인지부조화가 일어나고 그래도 확증편향을 가진 분들은 어떻게든 이 사건을 따로 해석해보려 하고.

균형잡힌 정상의 상식의 기준의 보편적 시각이 존재하지 않으면 사회는 집단 정실질환에 걸린 게 될 것 같다. 그것도 광역지자체장들, 그 올곧고 머리좋고 일반적으로 사회지도층이라고 해도 무방한 분들, 한결같이 진보성향에 그것도 여비서들과의 문제라니, 안희정 오거돈… 자살로 답해버리는, 아니 탈퇴해버리는 사례는 또 왜? 이리 자주? 노, 노에이어.

이런 사건도 사건이려니와 그 이후의 전개는 더욱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한다. 미투운동 주도한 분들 입장밝히라거나 추측오보 버무린 현장중개로 유튜브란 돈주머니를 노리는 수많은 사이버군단이라든가, 사이버세상 사이코들의 난무가 참으로 혼란스럽다.

이럴 때 일수록 차분히 정리가 필요할 것도 같다. 유교 오백년의 가치체계가 무너지고 사이보그 인간이 나타날 시점에 정신 가치 신념 정체성 등 건전하고 건강한 보편적 사유체계가 무너지면 그건 거대한 쓰나미가 되고 미성숙한 사회가 혼돈으로 가버릴 위험이 있겠다. 제발 차분히 앉아서 확증편향 스스로 돌아보고 인지부조화의 실마리를 풀어가야 한다.

왜 소위 진보진영에서만 이런 위선과 가식같은 일들이 일어날까? 공적 지위를 이용한 위계에 의한 성감수성의 문제 운운… 그리고 왜 그리 쉽게 목숨을 포기할까. 절대로 그건 문제 해결방식이 아닌데.

한번 차분히 생각해보자. 두 가지다 우선 소위 이런 진보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과 그 다음 이런 사건에 대해 본질은 내팽개치고 서로 물고 뜯는 문자와 비판의 난투극. 그러다 보면 사건 자체는 어디로 가고 양 진영간의 처절한 관념적 전투만 남는다.

두 가지 모두 ‘미성숙 사회’의 표현 아닐까? 경제적 물질적으로 성장했으나 정신이 미성숙한 사회, 자라면서 가치관 교육을 받지 못한 아니 토론하지 못한 종잇장같이 형성된 보편사회의식, 보수 전직 대통령은 몇천억을 해먹어도 눈도 꿈적안한다. “나 돈 없다. 돈 있으면 네가 대신 내줘라” “나 시민들 헬기로 진압 안했다” 몇천만원 몇십억 때문에 인간방을 탈퇴하는 분들과는 DNA가 다르다. 철면피요 인두껍이요 강골이요 철옹성이다. 소위 아주 뻔뻔하다. 인지 부조화 같은 것은 뭔 소린지 모른다. 나의 적은 나쁜시키들일 뿐.

어찌보면 정직하다. 자기 자신에 떳떳하고 자기속임이 없다. 자아를 분리시키지 않는다. 그게 보수들의 실상이다. 왜 그런가? 보수는 원래 인간은 욕망덩어리라고 인정하고 인식하기에, 스스로 이기적 존재라고 확정하였기에 인지부조화 없다. 진보는? 그런 야만적 욕망인간을 거부하고 비난한다. 그래서 이상사회를 꿈꾼다. 힘이 지배하지 않는 뱀과 아이가 같이 뛰어노는 사회, 그 뿌리는 깊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간다. 한 분은 이상사회 한 분은 현실사회.

그런데 이건 수천년 역사가 이미 결론낸 사건이다. 인간은 선하지 않다. 욕망하는 이기적 존재다. 그러니 진보는 자기속임이 나타나는 것 당연하다. 누구든 절대로 완벽하게 선하지 않다. 선의 밑바탕에 비선이 숨어 웅크리고 있는 게다. 그렇다고 온통 악은 아니다. 선악이 잡탕된 인간, 그러나 악의 향수가 언제나 쬐금이라도 남아 있는, “저 사람 왜 저래? 전혀 그럴 분이 아닌데” 이러면 안된다. 아무리 착하고 선하고 올곧은 분이라도 그 내면 깊숙이 그 반의적 그늘이 있는 게다. 이게 기독교식이라면 원죄겠다.

그런데 그게 옳다. 우주는 세상은 음양의 상대적 요소가 어우러져 창조되었으니, 그러니 “저 사람 왜 저래?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분이” 이렇게 말하지 말자. “누구나 그럴 수 있어”로 이해해야 한다. 조선의 삼강오륜은 사람을 속이는 철학이었고 사람이 오히려 악하다는 반증의 의사 표현이었다. 공자가 지천명 이순 종심소욕 이라고? 유학의 뿌리신데, 아니다 그분도 말로만 그랬다. 관념으로만, 사람은 지천명 이순 종심 못한다. 그 분도 아들과 제자 죽자 상심하다가 죽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이성보다 감정이 인간본질이다. 해서 간디도 평생 연애편지 쓴 젊은 애인이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이렇게 정리해야 요즘 진보들의 민낯이 이해된다. “아 그렇구나” 진보의 실체를 이해하겠구나. 아니 인간의 실체를 이해하겠다. 그렇다고 진보가 모두 양의 탈 쓴 늑대란 건 아니겠다. 양 되려고 무던히 애쓰는 사람들. 대놓고 해처먹고 양심의 가책도 없는 사람 아니고자 하는 이들이 진보겠다. 세상이 이 두 개의 바퀴가 역사를 굴려왔다. 조선에도 있다. 훈구파와 사림파.

이제 두 번째, 사건의 본질은 버려두고 서로 물고 뜯는 진영간의 논리는? 그건 자기만족이다. “저 나쁜 시키들. 착한 척 혼자 다 하더니 하는 짓거리들 봐라. 그게 너네들 민낯 아니냐?” 틀리지 않다. 트럼프가 공화당 보수인 것은 욕망하는 존재라는 것이고 그 조카가 “우리 집안의 수치”라는 거는 또 이상론이다. 민주 진보 오바마처럼 사람답게 금수가 아니라 사람답게. 그 조카도 잘못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욕망을 이기심을 노골화하지 않으려는 의지는 분명 있단 얘기다.

그럼 성숙한 사회는? 먼저 인간이해가 먼저겠다. 잘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래야 인지부조화 없어진다. 그래도 선하려고 노력한다는 건 그야말로 선이다. 그건 분명 선이다. 돌아가신 분들 자기 잘못 인정하고 산사에서 몇년씩 있었으면 성숙한 사회 됐을 텐데, 오히려 다른 쪽 분이 산사에서 수년 있었으니, 그리고 개인 인권 제발 보호해야지 왜 공격을 하면 다른 문제로 화두를 삼는지. “너 이거 잘못했다”가 아니라 “넌 근본이 틀려먹었어, 너네 아버지 조상때부터 그래” 이게 미성숙 표시다. 이 사회 배웠다는 분들이 더 어쩌면 확증편향한다. 잘못 배운 것 아니 편협성을 배운 것, 절름발이 지식.

누구를 두둔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내재된 이중성, 내면에 웅크린 욕망을 보자는 것. 따지고 보면 흠도 티도 없는 사람이 있냐는 거지, 무지막지하게 비난해 대는 이 자신들도 혹 그런 속성이 있지 않을까란 한번쯤의 돌아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릴 적 남의 집 가지 하나 안따먹은 이, 하다 못해 길가다 이쁜 사람 눈길 한번 더 준 적은? 그건 괜찮다고? 최소한의 시각적 본능이라, 어떤 욕망을 품지도 행동하지도 않았기에 괜찮다고. 글쎄! 그럼 권위와 권력에 굴복하고 익명성 뒤에 숨어서 자기만족적 비난을 하는 이들은, 사회적 불의에도 자신의 현실적 불이익이 예견되면 눈감고 회피하고 그렇게 자기보신적으로 살아내는 소시민들은? 아니 쓰레기 탄소 배출량 증가시키는 행위는? 맘으로 짓는 시기 질투심은? 타인에 대한 저주와 분노 그건 죄가 아닐까?

“아니다 난 지금껏 부끄러운 짓거리 한 적 없다. 양심에 따라 살아 왔다” 혹 부끄러운 짓 인식도 못한 것은 아닐지. 사유하지 않는 것, 인지하지 못한 것, 행동하지 않은 것. 알지못하고 짓는 죄가 더 클 수도 있는 것.

친일한 이들, 지금도 연해주 북간도로 떠도는 우리 민족. 기회주의자들 많다. 조국이 해방될 것 같지 않으면 일본어 붙었다가, 갑자기 타의에 의해 해방된 후 수립정권에 붙었다가, 정보취득해 권력형 갑부되었다가…

권력과 권위에 끝없이 도전하고, 사람살만한 세상만들기 위해 쉼없이 노력하고, 작은 촛불들이 모여 금력과 권력에 과감히 도전하고, 순수 선을 실천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인지부조화를 극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어쩌면 추악한 이중성이 지탄의 공감을 사회적으로 보편화시키고 있지만. 대놓고 부정하는 것보다 스스로 정죄하는 것은.

“죄없는 이는 돌로 치라, 너를 정죄하던 이들은 모두 어디 있느냐?” 그렇게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이해하면서 근신하면서 조금씩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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