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을 가꾸는 사람들] 선교사업 위해 18만평의 부지에 그레이스 정원 만들어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 선교사업 위해 18만평의 부지에 그레이스 정원 만들어
  • 경남미디어
  • 승인 2020.08.07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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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행연 고성 그레이스 정원 대표

다양한 수국 수십만 주가 꽃피는 비밀의 정원
수국은 장마철 지난 후 본격적인 개화기 맞아
교회, 공연장, 커피숍, 메타세콰이어 길 등 갖춰
40년간 창원에서 천마온천 운영해 번 돈 투자해
정원 제대로 경영 위해 손녀 영국에 조경 유학
경남 고성군 상리면에 위치한 그레이스 정원의 수국.
2십만 주 이상의 수국이 그레이스 정원을 장식하고 있다.

경남 고성에서 최근 수국 수십만 주가 꽃피는 비밀의 정원이 문을 열었다. 이 정원은 온천을 운영해 큰 재산을 모든 조행연(76) 대표가 선교 사업을 위해 설립한 것이다. 조 대표는 1980년 시댁의 가업인 창원의 마금산 온천부지에 천마온천을 개발해 직접 운영했다. 그런데 조 대표가 개발한 천마온천이 원천인 마금산온천 보다 수질이 좋아 손님들이 미어터졌다. 온천으로 대박을 낸 조 대표는 부의 사회 환원을 위해 그때부터 선교 사업에 눈을 돌렸다. 창원에서 선교 사업을 시작한 조 대표는 규모가 커지자 더 큰 선교센터를 만들기 위해 18만평에 이르는 그레이스 정원 부지를 마련했다.

2005년 지리산 인근에 선교센터를 만들기 위해 50군데 이상을 둘러보았으나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그런데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그레이스 정원 부지를 보는 순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바로 그 자리에서 계약을 했다. 그런데 땅 주인이 마음이 바뀌어 계약의 파기를 요청했다. 조 대표는 워낙 땅이 마음에 들어 5년간 법정투쟁을 통해 소유권을 확보했다. 소유권을 확보한 후 그때부터 쉬지 않고 정원을 만들었다.

어느 날 창원에 있는 칼멜 수도원에서 수국 300주를 사달라는 권유를 받았다. 100만원에 수국 300주를 산 조 대표는 이 수국을 정원에다 심었다. 그런데 다음해 수국에서 핀 꽃이 조대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때부터 수국에 빠진 조 대표는 수십 종의 수국을 정원에다 심기 시작했다. 일 년에 3~4만주를 10년 동안 심었다. 지금 그레이스 정원에는 2십만 주 이상의 수국이 정원을 장식하고 있다.

조 대표는 식물이나 정원과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부자로 살게 해 준데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정원을 만들다 보니 주변에서 많이 도와서 오늘날 그레이스 정원이 나름대로 모양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정원이 모양을 갖추어 감에 따라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그래서 조 대표는 손녀를 설득했다. 가족 중 누군가는 이 정원을 책임져야 하니 조경공부를 하라고. 그래서 손녀가 조경공부를 위해 영국 에딘버러 대학에 유학을 갔다. 손녀가 조경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면 그레이스 정원은 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조 대표는 1944년 창녕 남지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는 남지에서 다녔다. 그 이후 진주로 와서 진주여고를 졸업했다. 진주여고 34회이다. 조 대표의 4남매들은 모두 진주고등학교와 진주여고를 졸업했다.

조행연 고성 그레이스 정원 대표는 선교사업을 위해 고성군 상리면, 18만평의 부지에 수십만 주의 수국이 꽃피는 비밀의 정원을 만들었다.
조행연 고성 그레이스 정원 대표는 선교사업을 위해 고성군 상리면, 18만평의 부지에 수십만 주의 수국이 꽃피는 비밀의 정원을 만들었다.

다음은 조행연 대표와 대담 내용이다.

▲그레이스 정원은 크기가 얼마나 되나

-농장의 총면적은 59만5천m2, 18만 평이다. 그러나 현재 수국이 심어져 정원으로 꾸며져 있는 곳은 약 4만7천m2로 1만5천 평 정도 된다.

▲이 땅은 어떻게 해서 구입하게 됐나.

-원래 창원의 마금산온천 일대에 선교사업을 위한 센터가 있었다. 그런데 센터가 좁아서 좀 더 넓은 선교센터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부지를 구하러 다녔다. 처음에는 지리산 인근에 하려고 했다. 그런데 50번을 넘게 다녀도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지금 이 땅을 소개했다. 처음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 계약을 했다. 2005년의 일이다.

▲그럼 계약 후 바로 선교센터 건립에 들어갔나.

-아니다. 땅 주인이 마음이 바뀌어 계약을 파기하자고 했다. 그래서 5년 동안 법정투쟁을 거쳐 소유권을 확보했다. 땅의 소유권을 확보한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정원을 꾸미는 데 자금은 얼마나 들어갔나.

-부지 구입비를 제외하고도 약 50억 원 정도 들어갔다. 정원 내 교회 짓는데 10억 원 정도 들어갔고 또 이 본관 건물 짓는데도 10억 원이 들어갔다. 그 외 야외공연장과 정원 가꾸는데 약 30억 원이 들어갔을 것이다.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 것인데 자금은 어떻게 마련했나.

-저희 집안이 창원의 마금산 온천 주인이다. 제가 시집올 때부터 시아버님이 마금산온천 일대를 소유하고 계셨던 부자였다. 그래서 제가 시집와서 시아버님이 하시는 온천 옆에 천마온천을 새로이 개발해서 직접 운영을 했다. 그 온천이 대박이 나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 자금으로 여기에 투자한 것이다.

▲그럼 조 대표가 젊어서부터 사업을 했던 것인가.

-그렇다. 남편이 대학교수였는데 월급을 집에 가져오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직접 온천을 개발해서 운영을 한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자금은 다 제가 책임진다.

▲사업수완이 있는 편인가.

-사업수완이 있다기보다는 운이 좋았다. 천마온천을 개발하는 데 물이 아주 좋았다. 원래 있던 마금산온천의 물보다 천마온천의 물이 온도도 더 높고 좋았다. 그렇다 보니 손님이 미어터졌다. 제가 기독교를 믿는데 그게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저는 생각한다. 그래서 온천 운영으로 나오는 수익으로 창원에서 선교센터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게 적어서 다시 더 큰 센터를 만들기 위해 이 정원을 만든 것이다.

▲정원의 꽃을 수국으로 한 이유가 있나.

-저는 사실 원예나 조경에 문외한이다. 식물도 조경도 잘 모른다. 그래서 수국이라는 꽃도 몰랐다. 그런데 창원에 있는 갈멜 수도원에서 정원을 정비하면서 수국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100만원에 300주의 수국을 사게 됐다. 그걸 여기에다 심었다. 그랬더니 다음해 꽃이 잘 피는 게 그때부터 수국에 빠지게 됐다. 그 이후 매년 3만~4만주의 수국을 매년 심었다. 지금은 수십만 주의 수국이 있는 정원이 된 것이다.

▲수국은 관리가 쉽나.

-그렇지 않다. 관리가 어렵다. 애 돌보듯이 가꾸어야 제대로 자란다. 꽃도 따 주어야 하고 잎도 따주어야 잘 자란다. 수국 키우는 게 중노동이다.

▲메타세콰이어가 많이 보이는데 이 나무는 어떻게 해서 여기 있나.

-원래 창원의 선교센터에 있던 것들을 옮겨 심은 것들이다. 이 나무는 30년 이상 된 것들이다.

▲다른 꽃들은 안 심을 것인가.

-수국이 주종을 이루다 보니 사실 단점도 있다. 수국 꽃이 지고 나면 볼거리가 많지 않다. 그래서 일 년 사시사철 꽃을 볼 수 있도록 정원을 꾸며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남은 부지에 다양한 꽃들을 심을 생각이다.

▲조 대표가 직접 이 모든 것을 관리하나.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여기서 숙식을 하기도 하고 창원에서 출퇴근을 하면서 인부들을 실어와 일을 했다. 그런데 제 나이가 80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제가 이 정원을 관리하기에는 무리다. 그래서 손녀를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작업을 하고 있다.

▲어떤 작업인가.

-막내딸의 딸인데 제가 설득해서 조경공부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 영국의 에딘버러 대학에 조경공부를 위해 유학 가 있다.

▲그레이스 정원은 언제 문을 열었나.

-6월 25일 오픈했다.

▲관람객이 어느 정도인가.

-주말에는 하루에 1500명 정도 되고 주중에는 200~300명 정도 된다.

▲경영수지는 괜찮은가.

-한 달이 지났는데 정산을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아마도 적자일거다. 아직은 더 투자가 돼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온천에서 나오는 수익을 더 투자할 생각이다. 본래 비영리법인이니까 수익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까지 많은 재물의 복을 주셨는데 그걸 선교 사업을 위해 환원할 생각이다.

▲조 대표는 고향이 어디인가.

-1944년 창녕 남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은행가이셨는데 근무지를 자주 옮겨 다니셨다. 그래서 남지에서 중학교까지 다니고 고등학교는 진주에 와서 진주여고를 나왔다. 진주여고 34회이다. 형제들이 모두 진주여고와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진주에서는 어디에 살았나.

-상봉서동에서 살았다.

▲여고 동창생들은 어떤 사람들이 있나.

-대륙공업사를 한 박성지가 여고 동창이다. 대담 황인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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