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상사화
[정용우칼럼] 상사화
  • 경남미디어
  • 승인 2020.08.1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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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영화 ‘국제시장’, 이 영화의 도입 부분에 1950년 실제 있었던 흥남 철수의 장면이 나온다. 1950년 중공군의 침입으로 흥남에서 부산으로 피난을 가려 배에 오르기 시작하는 데, 이 영화의 주인공 덕수 역시 여동생 막순이를 들쳐업고 밧줄을 잡아서 올라오고 있던 도중, 누군가 팔을 뻗어 막순이의 어깨를 잡고 끌어당겨 버렸고 배에 오른 뒤 뒤가 허전한 걸 깨달은 덕수는 곧바로 동생을 찾아 밑을 내려다 봤지만 동생은 흔적을 감춘 뒤였다. 딸아이가 없어진 걸 알게 된 덕수의 아버지는 딸을 찾기 위해 다시 밑으로 내려간다. 그 순간, 멈춰있던 배는 출발해버렸고 그렇게 덕수는 여동생과 아버지와 생이별을 하게 된다. 그 후 세월은 흐르고… TV에서 6.25전쟁 때 헤어진 가족을 찾아주는 이산가족찾기 방송을 통해 여동생 막순이를 찾아 감동적인 재회를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찾지 못한다. 덕수 생애 내내 그토록 그리운 아버지를 영영 만나지 못한다.

우리 동네에도 이 영화 주인공의 이름과 같은 덕수라는 분이 계셨다. 이 분은 우리 동네 이발사인데, 6.25전쟁 때 월남하신 분이다. 말은 강한 이북 사투리를 써서 어색했지만 심성이 참 좋은 분이셨다. 우리 동네에 정착하여 몇 년 전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을 이발사로서 지내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어느 해인가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리고 있을 때이다. 정자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앉아 단둘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아저씨는 이북에 살고 있는 가족이 보고 싶지 않냐고, 상봉 신청 안 해 보시냐고 내가 물었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 “보고 싶지. 보고 싶고말고. 그러나 그게 다 돈이 있어야 가능한거여”하시면서 눈시울을 붉히셨다. 그 당시는 동네 인구수도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외지로 나가 이발을 하다 보니 시골동네 이발사는 한물간 시절. 동네 이발사로서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온 아저씨. 이 아저씨도 위 영화 주인공 덕수처럼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채 그리움만 안고 한스런 인생을 살다가 돌아가셨다.

이 아저씨가 죽고 난 후 가족들은 어딘가로 이사 갔고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지금도 큰 창고 옆에 아저씨가 이발관으로 쓰시던 건물만 옛 추억을 간직한 채 서 있다. 건물이라고 했지만 초라하기 그지없는 건물이다. 그 면적이 3평 정도나 될까. 시멘트 벽에 슬라브 지붕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낡은 건물이다. 그래도 열쇠는 채워져 있다. 그 옛날 우리의 어린 시절 이발과 관련된 여러 추억들을 고이 간직하겠다는 듯이. 내가 동네를 벗어나 외지를 다녀올 것 같으면 항상 이 건물을 지나치게 되어 있다. 그때마다 이 아저씨의 한 많은 일생을 되뇌어 본다. 북에 남겨두고 온 가족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그럼에도 가난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 참가신청도 해 볼 수 없는 자신. 그 비통한 심정을 어떻게 달래며 살아갔을까. 남의 일이지만 그 애달프고 안타까운 사연이 내 가슴마저 여미게 한다.

이렇게 애달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이발관을 뒤로 하고 약 300미터 정도 동네 안으로 걸어 들어오면 우리 집인데, 요즘 같은 여름철엔 집에 들어서자마자 환하게 피어 나를 반기는 꽃이 있다. 상사화(相思花)다. 우리 집에는 출입구 청단풍나무 밑에 한 무더기 상사화 단지가 있고 텃밭 각진 곳에도 한 무더기 상사화 단지가 있다. 각 단지마다 약 50여 개의 상사화가 피어난다. 이 상사화는 민간에서는 개난초라 불리는데 그 잎이 난초처럼 생겨서 그러리라. 이처럼 난초같이 피어난 잎은 꽃을 피우지 않은 채 말라버린다. 잎이 마르고 나면 보기가 흉해 그 마른 잎들을 걷어낸다. 그리고서 시간이 흘러 지금처럼 여름철이 되면 앞서 잎을 잘라낸 자리에서 말쑥한 꽃대가 갑작스레 솟아오르고 꽃대 끝에 약간 보랏빛 기운이 감도는 연한 분홍색 꽃이 우산 형태로 뭉쳐 피어난다. 지름 7cm 안팎의 꽃은 6장의 피침 모양의 꽃잎으로 이루어져 있다. 뭉쳐 피어난 꽃들이 참 예쁘다.

그런데 그 꽃 이름이 생뚱맞다. 왜 상사화일까.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으므로 잎은 꽃을 생각하고 꽃은 잎을 생각한다고 하여 상사화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서로 그리워만 하고 만나지는 못하는 잎과 꽃이다. 지금 같은 여름철, 활짝 피어난 상사화를 보고 있노라면 영화 속의 주인공 덕수, 그리고 우리 동네 이발사 덕수 아저씨가 연상되어 보기만 해도 애잔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며칠 있으면 꽃은 지고 내년에 또 그 자리에 새 잎이 돋아나 새 꽃을 피울 것이다. 죽도록 그립지만 영영 만나지 못하는 아픔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그들이 한 해를 살고 또 한 해를 살아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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