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시배지 추억으로 목화 꽃 형상화하게 돼
끊임없는 연구와 시도 끝에 입체화 작품 탄생
런던전시회, 서구 사람들 박 작가 그림에 반해
다양한 작품에 도전하기 위해 전업 작가로 활동
해외전시 50여회·단체전 500여회 이상 전시회
박영숙(56) 작가는 늘 목화 꽃을 그린다. 그가 산수화를 그려도 그 속에 목화 꽃을 형상화해서 그려 넣는다. 그래서 화단에서는 물론 그림애호가들도 목화 꽃 형상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 박영숙 작가의 그림임을 알아본다고 한다.
박 작가가 자신의 그림 속에 목화 꽃을 때로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때로는 추상화하여 그려 넣는 것은 그가 태어난 곳이 우리나라 목화의 시배지인 단성면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릴 때 학교를 오가면서 목화 꽃이 필 때면 목화의 애기솜을 따 먹기도 하고 꽃으로 놀이를 하면서 컸다. 그런 그의 추억이 커서 그림을 그리면서 목화 꽃을 언제나 그림 속에 녹아들게 했다. 지금은 그런 목화 꽃이 그의 예술을 상징하게 됐다.
박 작가는 2013년 영국 런던에서의 개인전과 서울 인사동에서의 ‘한국화 힐링을 만나다’의 개인전을 가진 것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심화시키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됐다. 서양화와는 다른 독특한 느낌을 주는 박 작가의 색에 관람객들이 찬사를 보냈다.
박 작가는 작품의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자신의 회화를 입체화하기 시작했다. 그 작업 또한 화단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것이었다. 지금의 박 작가 특유의 화법으로 자리 잡은 한국화를 입체화한 (뒤에서 밀어낸 부조) 화풍은 끊임없는 연구와 시도에서 탄생했다.
박 작가는 자신이 주로 그려오는 목화 그림에 현대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다. 겸제 정선의 작품을 패스티시 pastiche 하여 표현한 작품을 지난 2019년 사천의 한 미술관에서 선보여 대중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경험이 있다. 이외에도 박 작가는 매화, 잉어 등의 소재와 목화를 접목하여 다양성을 추구하는 작품을 하고 있으며, 오는 10월 진주 갤러리아백화점 내 갤러리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오래된 과거 느낌의 상징물과 현대화 느낌의 상징물들을 함께 표현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박 작가는 열심히 작업하는 작가이다. 그림이 너무 좋아 시작했고 지금도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모든 것을 잊을 정도로 몰입한다. 그래서 늘 남편에게도 자신이 죽는 날이 그림을 그리지 않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박 작가는 지금까지 50여 회의 외국에서 전시회를 비롯해 총 500여 회의 전시회를 가졌다. 끊임없는 작품활동으로 화단에서 진정한 작가로 평을 듣는다.
박 작가는 1965년 산청군 단성면에서 태어났다. 단성고등학교와 경남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작가로서 생업이 불가능해 미술학원과 어린이집을 경영하다가 2013년부터 본격적인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다음은 박영숙 작가와의 대담내용이다.
▲한국화를 선택하게 된 동기가 뭔가.
-지금도 큰 변화가 없지만 제가 미술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한국화는 완전히 쇠퇴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정서적으로 한국화가 좋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선택했다. 지금까지 노력했어도 이런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요즘도 여전히 서양화가 압도적이다.
▲한국화가 부흥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것을 낮춰보는 것 때문인가.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화를 표현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서양화가 들어오면서 한국화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교육현장에서도 한국화보다 서양화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올해는 어떤 전시회를 했나.
-경남도초대전, 경남갤러리 인사아트개관 1주년전, 예술중심 현장 갤러리 개관전을 비롯하여 다양한 그룹, 초대전은 매달 몇 곳씩 하고 있으며, 10월에 개인전을 계획하고 있다.
▲박 작가의 화풍은 무엇인가.
-한국화의 전통을 살려 유지하면서 현대적으로 표현하는 게 제가 추구하는 화풍이다.
▲박 작가의 그림에는 모두 꽃이 형상화되어 표현된다. 이유가 무엇인가.
-제 그림에 등장하는 추상화 된 꽃은 목화 꽃이다. 제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 문익점 선생이 우리나라에 목화를 들여와 처음 심어 퍼뜨린 경남 산청군 단성면이다. 어릴 때 학교를 오가면서 늘 목화 꽃이 필 때면 꽃을 따 먹으면서 놀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면서 늘 목화 꽃을 상징으로 표현하게 됐다.
▲그림마다 목화 꽃이 조금씩 다르다.
-목화꽃을 똑같이 표현할 필요는 없다. 이미지 전달만 가능하면 된다고 본다. 해가 갈수록 그 모양이 조금씩 변한다. 그런데 사실 목화 꽃은 자세히 보면 그 꽃이 조금씩 변한다. 처음 목화 꽃이 피면 흰색이다. 그것이 노란색으로 바뀌었다가 질 때면 핑크빛으로 변한다. 그런 목화 꽃의 속성도 있을 것이다.
▲그림에 꽃을 표현하는 것은 박 작가 고유의 방식인가.
-그렇다. 지금은 화단에서도 그렇고 일반인들도 제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중섭 작가가 소를 주요 소재로 표현했듯이 저는 꽃을 제 나름의 표현기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에 입체를 더하고 있던데.
-그렇다. 한지의 특성을 살려 부조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국화의 특성상 평면적이라 다양성, 새로움을 추구하고 싶어서 1여년을 연구하여 개발하고 정립시켰다.
▲한국화에 입체를 시도하는 것은 화단에서 처음 있는 일인가.
-그렇진 않다. 화선지를 위에서 붙히는 방법은 있었다. 그런데 저는 좀 더 독특한 나만의 기법으로 입체를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군더더기없이 깨끗하게 표현된다. 제가 하는 방식은 제가 유일하다. 그림에 꽃을 표현하고 이를 입체화하는 것으로 제 고유의 방식이 진화했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전시회는.
-전시회는 모두 기억에 남는다. 그중에서 2013년 영국 런던에서의 전시회와 2013년 ‘한국화 힐링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서울 인사동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했는데 지금의 진주 아름다운동향전 창립을 하게 된 계기가 되신 강정완 선생님께서 친구분과 오셔서 사랑을 듬뿍 담은 축사를 해주셨다. 갤러리 측에서도 놀라하셨고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다.
▲어떤 점이 그런가.
-한지에 배채법을 사용하여 색을 한층 고급스럽게 표현하였다. 관람객들이 와서 제 그림의 색을 신비하게 생각했다. 어떻게 그런 색이 나오는지 계속 물어보더라. 내국인과 외국인들의 눈에는 한지에 스며든 한국화의 색이 처음 보는 것이다 보니 매우 신비하게 본 것 같다.
▲한국화의 색과 서양화의 색이 다른가.
-그렇다. 서양화도 수채화의 색과 유화의 색이 다르듯이 한국화의 색은 서양화의 색과 다르다. 한국화는 한지와 물감이 서로 융합해 색이 나타난다. 그래서 물감 고유의 색이 나타나는 서양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화가 나오기 전 템페라 기법과 한국화는 조금 비슷한 듯하다.
▲어떻게 다른가.
-한국화의 물감 분채는 자연의 색으로 아교와 잘 배합되어 자연스럽게 한지 속으로 스며든다.
서양화 물감처럼 캔버스에 올려지는 것이 아니라 한지 속으로 스며들어 한 몸이 되는 것이다.빨간색 꽃을 표현하면 50번 이상 연한 빨간색으로 계속 칠한다. 이렇게 50번 이상 물감이 한지에 스며들면서 진한 빨간색이 되는 것이다. 한 번에 빨간색을 진하게 칠하는 유화와는 근본적으로 작업과정이 다르다. 그렇다 보니 한국화는 진한 색이라도 빛이 반사되지 않는다. 색이 진해도 부담스럽지 않고 부드럽다. 그런 특징을 한국화는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화에 매료되는 사람들이 많다.
▲런던전시 당시 그림도 많이 팔렸나.
-10점 정도 팔았다. 많이 판 것이다.
▲그럼, 유럽에서 정착하는 게 더 낫지 않았나.
-한국화 작가로서는 유럽에 정착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다. 저도 용기가 있었더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용기는 없었다.
▲지금까지 외국에서 전시회는 몇 번이나 했나.
-영국, 프랑스, 미국, 홍콩, 중국 등에서 약 50회 정도 했다.
▲외국 전시가 국내 전시보다 관람객 반응이 더 좋은가.
-아무래도 그렇다. 국내는 한국화를 잘 안다는 선입견이 있다. 외국은 처음 보는 화풍이다 보니 아무래도 반응들이 더 좋다. 한지의 우수성에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지금까지 총 전시회는 몇 번 정도 되나.
-국내외를 합쳐서 500여 회 이상 정도 되는 것 같다.
▲요즘은 어떤 느낌을 주는 작품을 표현했나.
-지난 2019년에 사천 ‘리 미술관’에서 겸제 정선의 작품을 패스티시 pastiche 한 작품을 출품한 경험이 있었다.
▲반응은 어땠나.
-대중의 반응은 괜찮았다. 실제 진주교대 미술교육학과 한 교수님이 논평을 내고 나의 작품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공감했다.
▲어떤 의도로 이런 작품을 출품했나.
-과거의 것이 과거가 아니라 현재로 이어지며 그 시간은 미래로 또한 이어지는 현재이다. 머물기보다 나아가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 시작했다. 오래된 과거 느낌의 상징물과 현대적인 상징물을 함께 그려 현대와 과거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외에 시도하고 있는 작품이 있나.
-매화, 잉어 등의 이미지와 목화를 접목하여 표현하고 있다. 오는 10월 중에 진주 갤러리아 백화점 내 갤러리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이외에도 앞으로 다양한 느낌을 전달하는 작품을 할 계획이다.
▲본인은 다작을 하는 편인가.
-재료의 특성상 다작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1000점 이상 그림을 그렸을 것 같은데 많이 그리는 편에 속하지만 다작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왜 전업작가를 시작했나.
-대학 졸업 후 생업에 종사하면서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전업작가가 아니고서는 작품을 하고 싶은 갈증 해소가 되지 않아 10년 전에 생업을 다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매일 작업에만 열중하고 싶었다
▲그럼 생활은 어떻게 하나.
-남편이 벌고 또 제가 그동안 모아둔 돈을 써 가면서 하고 있다.
▲작가를 해서 버는 돈으로는 어렵나.
-우리 화단의 불편한 진실인데 그림을 팔아서 버는 돈으로는 재료값을 충당하기에 빠듯하다.
▲그렇게 어려운 길을 왜 가나.
-그래도 저는 그림을 그릴 때가 제일 행복하다. 제가 행복하기 때문에 힘들지만 이 길을 가는 것이고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에게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로 인해 감동받고 느낌을 교감해 삶에 좋은 영향력을 받길 바란다.
▲고향이 어디인가.
-1965년 경남 산청군 단성면 관정리에서 태어났다.
▲학교는 어떻게 되나.
-소남초등학교, 단성중학교, 단성고등학교, 경남대학미술교육과, 진주교육대학원을 나왔다.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
-일상이 예술이 되다. 저는 정말 그림을 좋아한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는 게 제 소원이다. 많은 사람이 나의 작품을 감상할 때 좋은 에너지로 재생산하길 바란다. 대담 황인태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