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을 가꾸는 사람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우리 부부는 죽어서 정원을 남기겠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우리 부부는 죽어서 정원을 남기겠다
  • 경남미디어
  • 승인 2020.08.2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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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태 곽갑순 통영 해솔찬 정원 대표 부부

50년간 부부가 직접 손으로 해솔찬 정원 만들어
장비를 사용하면 풀들이 죽어 복원하기 힘들어
동백나무 비롯, 300여 종 나무, 꽃들로 이루어져
바위와 느릅나무가 분재처럼 어우러져 있는게 자랑
서울의 부자가 150억 원에 팔라고 해도 팔지 않아
부부가 하나하나 손으로 가꾸고 키워 온 300종 이상의 나무와 꽃, 풀들이 자라는 해솔찬 정원.
부부가 하나하나 손으로 가꾸고 키워 온 300종 이상의 나무와 꽃, 풀들이 자라는 해솔찬 정원.

통영에서 사량도 가는 선착장을 가다 보면 통영시 도산면 바닷가에 해솔찬 정원이 나온다. 김종태(72) 곽갑순(66) 부부가 20대부터 여기 살면서 50년 이상 직접 만들어 온 정원이다. 정원은 5천 평 규모에 동백나무로 울타리가 이루어져 있다. 300종 이상의 나무와 꽃, 풀들이 자라는 정원은 이 부부가 하나하나 손으로 가꾸고 키워 온 것들이다.

“평생 정원을 가꾸면서 장비는 딱 한번 사용했어요. 그 외는 모두 우리 부부가 손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김종태 대표는 50년간 정원을 가꾸면서 장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손으로만 정원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 이유로 김 대표는 장비를 사용하면 풀들이 장비에 밟혀서 죽어버리기 때문에 복원하는데 2~3년이 걸린다고 했다. 그래서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하는 게 최대한 자연을 살리면서 정원을 가꾸는 일이라 힘이 들지만 그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그래서 해솔찬을 만드는 원칙이 최대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가꾸는 것이라고 했다. 해솔찬에 있는 모든 나무와 풀들은 원래부터 있던 것들이거나 아니면 가지를 하나 꺽어 와서 심어서 지금의 모양대로 키운 것들이라고 했다. 해솔찬 정원에는 바위라고 하기는 좀 작은 중간크기의 돌들이 많다. 그런데 그 돌마다 나무들이 자란다. 느릅나무가 가장 많은데 그 돌 틈에 느릅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 김 대표는 그 느릅나무 하나하나를 분재를 만드는 정성으로 가꾸고 있다.

김 대표는 평생 해솔찬에 살면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했다. 주변 수천 평의 농지에서 밀감농사, 고구마 농사 등을 통해 딸 세 명을 다 공부시키면서 해솔찬 정원을 만들었다. 15년 전에 서울의 부자가 와서 150억 원을 줄 테니 팔라고 했지만 돈이 많으면 죽는다는 생각에 팔지 않았다고 했다. 김 대표는 설사 300억 원을 준다고 해도 해솔찬을 팔 생각이 없다고 했다.

김 대표는 해솔찬을 자연과 조화를 이룬 정원으로 만들어 후대에 남겨주는 게 꿈이라고 했다. 마침 통영에 사는 막내딸이 정원에 관심이 있어서 물려줄 생각이라는 김 대표는 젊은 사람들이 하면 조금 낫지 않겠냐고 했다. 자식들 세대는 자기들이 하더라도 지금은 김 대표의 방식대로 정원을 가꾸겠다는 의지였다.

해솔찬 정원 김종태 곽갑순 부부는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50년을 손으로만 정원을 가꾸어왔다.
해솔찬 정원 김종태 곽갑순 부부는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50년을 손으로만 정원을 가꾸어왔다.

다음은 김종태 곽갑순 부부와의 대담내용이다.

▲해솔찬 정원은 언제부터 만들기 시작했나.

-제가 20대 때 나무를 참 좋아했다. 그래서 특별히 정원을 만든다는 생각보다는 평생 농사를 지으면서 나무와 꽃들을 심었다. 지금 여기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도 그때는 작은 소나무였는데 세월이 가다보니 이렇게 커 버렸다. 50년을 가꾼 정원이다.

▲원래 가지고 있던 땅인가.

-일부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고 일부는 사들였다.

▲규모가 얼마나 되나.

-약 5000평 정도 된다.

▲그럼 평생 여기서 살았나.

-그렇다. 직장 다니기도 싫고 하여 평생 이 동네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다.

▲농사는 몇 평이나 지었나.

-여기 정원에서는 농사를 지은 것은 아니고 이 주변에서 수천 평 밭농사를 지었다.

▲주로 어떤 농사를 지었나.

-제가 한창 활동할 70년대에 복합영농이 권장되던 시절이었다. 봄에도 수확할 수 있고 겨울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영농을 하라는 그런 의미였다. 그래서 당시 통영에 밀감 농사가 된다고 해서 많이들 심었는데 저도 600주를 심었다. 밀감 농사가 아주 잘 됐다. 그걸 한 13년 했다.

▲지금은 밀감 나무가 없나.

-13년 농사를 짓고 있는 데 어느 겨울에 심한 한파가 와서 나무들이 다 얼어 죽어버렸다. 그래서 다 파서 없앴다. 지금은 한 나무도 남아 있지 않다. 그 이후 고구마를 심기 시작했다.

▲고구마는 원래 통영 인근에서 많이 하는 작물 아닌가.

-그렇다. 식용으로도 하지만 저는 주로 소주 주정을 만드는 용도로 많이 심었다. 한때는 몇십

가마의 고구마 농사를 지어서 소주 회사에 팔곤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것도 안된다.

▲왜 그런가.

-산돼지가 제일 좋아하는 게 고구마다. 잘 키워놓으면 산돼지가 와서 다 먹어버린다. 산돼지와 씨름하는 게 제 나이로는 어렵다. 그래서 그것도 요즘은 우리가 먹을 만큼만 하고 더 하지 않는다.

▲농사를 지으면서 정원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돈으로 정원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돈을 들이지 않고 오로지 저와 아내의 손으로 정원을 만들었다. 장비도 사용하지 않았다. 평생 이 정원에서 장비는 단 한번 사용한 게 전부이다.

▲장비는 왜 사용하지 않았나.

-장비를 사용하면 장비가 지나가는 길에 있는 풀들이 다 죽어버린다. 그럼 그걸 복원하는 데 2~3년 걸린다. 그래서 길을 내거나 집을 지을 때도 장비 없이 오로지 저와 제 아내의 노동으로만 지었다. 정원에 있는 길들도 다 원래 있던 길을 조금씩 넓힌 거다. 그래서 아무리 비가

와도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 폭우가 쏟아져도 비만 그치면 금방 물이 빠진다. 자연이 그만큼 위대하다.

▲조그만 돌집들도 있던데 그 집들도 다 손으로 만들었나.

-그렇다. 주변의 돌들을 주워와 저와 아내의 손으로 만든 집들이다. 주로 차를 마시는 용도로 사용한다.

▲해솔찬이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사용했나.

-한 20년 정도 되었을 거다.

▲무슨 뜻인가.

-해는 따뜻함을 의미하고 솔은 푸르름을 의미한다. 찬은 가득찬이란 뜻이다. 따뜻하고 푸르름이 가득찬 정원이라는 의미이다.

▲해솔찬을 가꾸는 철학은 뭔가.

-철학이라고 말하기는 거창하고 저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과 조화롭게 정원을 가꾸는 게 제 생각이다. 그래서 해솔찬에 있는 모든 나무, 꽃, 풀들은 다 제 손으로 심은 것들이다. 원래 큰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가지 하나를 가져와 삽목을 해서 지금 이렇게 다 키운 것이다.

▲해솔찬에서 자랑하고 싶은 것은 어떤 것들이 있나.

-여기에는 바위라고 하기는 좀 작은 중간크기의 돌들이 많다. 그 돌들에 나무들이 뿌리를 내려서 자라는 게 많다. 그 하나하나를 다 다듬어서 모양을 만들었다. 주로 바위에 느릅나무가 많이 자라는 데 이 지역에 많이 자생하는 나무다.

▲느릅나무는 원래 약초 아닌가.

-그렇다. 그래서 예전에는 느릅나무 껍질을 벗겨 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느릅나무는 분재를 만들어 놓으면 그 모습이 아름답다. 해솔찬에는 바위와 느릅나무가 어우러져 있는 그런 것들이 꽤 된다.

▲또 자랑하고 싶은 것은

-해솔찬은 둘레의 담이 모두 동백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동백나무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정원이라고 할 수 있다. 동백꽃이 피는 계절에 오면 장관이다.

▲앞으로 계획이 있나.

-저는 특별한 계획은 없다. 그냥 이렇게 자연과 동화되는 정원을 후세에 남기겠다는 그런 생각뿐이다. 돈으로 만든 정원은 많아도 해솔찬 정원처럼 50년 이상을 사람의 손만으로 만든 정원은 드물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저는 죽어서 정원을 남길 것이다.

▲해솔찬을 팔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을 텐데.

-가끔 있다. 15년 전에 서울 사람이 150억 원에 팔라고 했다. 그런데 제 철학이 돈이 많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300억 원을 가져와도 팔 생각이 없다.

▲수익은 좀 되나.

-전혀 안 된다. 분재 체험 같은 것을 하기는 하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분재 같은데 관심이 없다. 체험도 사람들이 주로 먹는 것을 좋아한다. 나무를 다듬고 흙을 밟고 하는 것은 싫어한다. 그래서 돈이 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관리를 하나.

-그러니까 아내하고 제가 7~8명이 할 일을 하고 있다. 인부 쓸 돈이 없어서 둘이 힘으로만 관리를 하고 있는 거다.

▲정원은 아니더라도 주변에 땅을 팔면 되지 않나.

-그것도 쉽지 않다. 정원 주변에 땅을 팔면 또 그 사람들이 무엇을 할지 모른다. 공장을 지을지 주택을 지을지. 그래서 그것도 하기 어렵다. 그냥 아끼면서 사는 게 제가 하는 일이다.

▲그럼, 이 정원을 물려받을 사람이 있나.

-딸만 셋이다. 그런데 막내가 통영에 산다. 막내가 조금 관심이 있어 한다. 젊은 사람들이 하면 또 다른 방식으로 정원을 가꾸지 않겠나. 그건 그때의 일이고 지금은 제 방식대로 관리하고 있다. 대담 황인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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