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두꺼비
[정용우칼럼] 두꺼비
  • 경남미디어
  • 승인 2020.09.1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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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태풍이 몇 차례 지나가고 나니 오랜 장마 끝에 기승을 부리던 폭염도 서서히 한발짝 물러나는 듯하다. 그렇지만 아직도 한낮에는 제법 덥다. 더위가 몰려오면서 한낮에 하던 산책을 해거름께로 바꾸었는데 아직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현관을 나서 막 우리집 출입구에 다다르는 순간 잔디밭 끄트머리에 두꺼비 한 놈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두꺼비가 잔디밭에 놀러 나왔나보다 하고 출입구를 지났더니 얼마 안가서 또 한 마리의 두꺼비와 마주치게 되었다. 새끼가 아니고 아주 늙은 큰 놈이었다. 그냥 길 한가운데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이 길은 드물기는 하지만 그래도 차가 다니는 길인지라 혹시 로드킬 당할까봐 염려되었다. 이를 옮겨주어야 겠다 싶어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서 긴 막대를 가져왔다. 두꺼비는 눈 뒤에 있은 독샘에서 부포테닌이라는 독소를 분비할 수 있어 손으로 집어 옮기는 것은 금물이다. 혹시 나를 적으로 여길 경우 독샘에서 하얀 독을 분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막대기로 두꺼비 꽁무니를 세게 밀어 전봇대 밑으로 옮겨주었다. 살짝 밀어주어서는 잘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늙어서 그런지 움직임이 둔할뿐더러 고집도 센 놈이다. 힘들여 전봇대 밑으로 밀어붙여 놓고는 어느 정도 안심이 되어 그때서야 산책길에 나섰다.

우리 집 근처에는 두꺼비 서식지가 있는지 옛날부터 두꺼비가 자주 출현한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두꺼비에 대해 관심이 많다. 돌아가신 할머니로부터 하도 자주 두꺼비와 관련된 복(福)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긴 <은혜 갚은 두꺼비>라는 전래동화도 있기는 하지. 두꺼비는 마음씨 고운 처녀의 보살핌을 받는다. 그러다가 마을의 무시무시한 괴물인 지네와 맞서 싸워 물리치지만 지네의 독으로 두꺼비도 죽게 된다. 두꺼비는 제물이 될 뻔한 처녀를 구해 은혜를 갚고, 마을에 평안을 가져온다는 이야기다. 두꺼비는 자기도 다른 독충의 독을 이용하여 생존에 필요한 독을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서 서식하는 지네, 그리마, 집게벌레와 같은 독충을 잡아먹는다. 못생겼지만 우직한 두꺼비는 우리 사람에게 고통을 주거나 해를 끼치는 독충들을 잡아 먹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우리 조상님들은 분명 이런 두꺼비에게 고마워했고, 영물이라고 치켜세우지 않았을까 싶다.

약 1시간 정도의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전봇대 밑으로 밀어붙여 놓은 두꺼비가 그대로 잘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런데 전봇대 밑에는 두꺼비가 없었고 조금 떨어진 도로 상에서 로드킬 당한 채 나자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옮겨 놓은 전봇대 밑에서 그 주변만 살펴보고 그만 자기 집으로 돌아갔으면 죽지 않았을 텐데 기어코 다시 산책을 시도하다가 차에 치여 죽은 것이다. 아쉬움을 안고서 다시 집 안 잔디밭에서 놀고 있던 두꺼비를 찾아보았다. 그 놈은 여전히 잔디밭에서 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집 밖에서 그것도 위험천만한 도로 상에서 여유를 즐기던 놈은 자기 명대로 다 살지 못하고 죽어 나자빠졌고, 잔디밭에서 놀던 놈은 죽지 않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선택의 문제가 생사(生死)의 갈림길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집 안으로 들어서면서 생각해보았다. 차에 치여 죽은 두꺼비는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하게 됐을까. 두꺼비는 원래 도로 위에 나가서는 안 되는데 그놈은 왜 도로 상에 출현했을까. 풀숲에서 놀아야 제 생명 유지할 수 있는데 늙은 놈이 무슨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을까. ‘당신의 선택은 당신의 책임’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선택으로 이뤄져 있고, 대부분의 순간에 누구의 간섭이나 강제도 없이 오직 나만의 사고와 판단을 통해 결정을 내리지만 그 결과도 전적으로 그의 책임이라는 이야기.

이쯤에서 나를 되돌아본다. 현역에서 은퇴 후 큰 변화가 없는 삶이기는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를 선택해 가면서 하루하루 시간을 채워나가야 한다. 그 선택의 결과는 바로 나타날 수도 있고 하루 이틀 뒤에 혹은 한 달이나 일 년 뒤에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나에게 닥쳐오는 모든 것들은 나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매 순간마다 하게 되는 선택의 결과라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할 몫이다. 여기에 핑계는 발붙일 자리가 없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 그 무게도 내가 안아야 한다. 길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살아가야할 세월, 나는 과연 어떤 삶의 길을 선택해야 할까. 차에 치여 죽은 어느 한 늙은 두꺼비…. 갑자기 앞으로 살아갈 내 삶이 무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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