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광장] 농부의 스트레스
[도민광장] 농부의 스트레스
  • 경남미디어
  • 승인 2020.09.23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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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규 농관원 진주사무소장
박성규 농관원 진주사무소장

아침, 저녁으로 제법 시원한 산들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가끔씩 갠 하늘은 높아만 가니 가을이 온 게 틀림없나 보다. 농부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결실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음을 의미한다. 추운 겨울날부터 과수원을 살피고 봄이면 씨앗과 퇴비를 넣고 잡초·병해충과 매일 전쟁을 치르고 비바람을 온몸으로 막으며 오로지 농부의 성실한 땀방울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수확의 기쁨을 듬뿍 누려야 하건만 야속하게 지금 농촌 상황은 그럴 수 없는 처지이다.

올해는 날씨가 유난히 농부의 속을 태웠다. 봄철 기온이 영하로 곤두박질쳐 많은 피해를 안겼으며, 과수 화상병 감염 확산으로 마음을 졸였다. 이마저도 우리 농부의 강인함이 피해를 최소화 했다. 이어서 모내기가 끝나고 밭작물이 한참 자랄 때인 7월부터 시작된 비 소식은 8월까지 2달 동안 농부의 마음을 내내 근심거리로 몰아넣었다.

농작물이 성했을 리가 없다. 벼는 도열병과 멸구류 등 병해충이 들녘에 퍼지고 배추·무 등 여름 채소류도 작황 부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고추와 같은 양념채소류는 탄저병이 자리 잡아 농작물 병해충 방제와 기나긴 싸움을 벌였다. 무심하게도 하늘은 농부의 걱정을 한시도 놓아 주지 않았다. 마지막은 센 놈이었다. 9월 가을 태풍치고는 드물게 마이삭과 하이선의 연이은 상륙으로 벼는 수침과 도복의 피해를 입었고 사과·배 과실류는 수확을 앞두고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고랭지 배추·무 사정도 나을 리 없다. 정말 올해의 기상은 농부의 마음을 알아주기는커녕 가히 악마 수준이다.

누군가는 농촌에 살면 아무 걱정도 없고 자연에 순응하며 순박한 전원생활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다. 그런 유유자적한 삶은 모 종편 프로그램에서 방영되는‘나는 ㅇㅇㅇ이다’라는 주인공에게는 어울릴지 모르나, 농부의 마음은 장맛비가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가뭄이 와도 늘 근심을 지고 산다. 어디 그뿐이랴 풍년이 되어도 가격 하락에 걱정, 흉년이면 농사비라도 건져야 할 텐데, 그런데 어쩌랴, 태풍 속에 할 일이 있고 폭우 속에서도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또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헤쳐나가는 정신이 우리 민족의 꺾이지 않는 근성으로 농촌을 형성하고 우리 겨레의 밑바탕 민족성으로 이어져 왔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연일 배추 한 포기에 7천원, 무 한 개 5천원 전년보다 두 배 이상 올라 장바구니 물가가 걱정이라고 호들갑을 떨며 정부를 겁박한다. 365일 떠나지 않는 농부의 걱정과 땀을 알고 하는 소리일까?

매스컴에서 말하는 것처럼 가격이 올랐다 해서 과연 농가 소득도 그럴까? 그 건 농촌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생산량이 감소하면 그만큼 시장에 내놓을 물량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생산에 투입된 자재는 늘어나고 인건비 부담도 그만큼 증가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농산물을 사고파는 유통 종사자 또한 팔 물량이 없어 연달아 수입도 감소한다. 가격이 상승하면 농부는 엄청난 이익을 남기는 것처럼 보도하는 행태와 상상은 사라져야 한다.

며칠 있으면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이동과 방문을 자제하자는 범국민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농촌도 예전처럼 풍성한 추석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어쩌겠는가? 서운하지만 바이러스 대확산을 막으려면 모두가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고 따라야 한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 농촌에서는 차례상을 준비하고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는 최소한의 공동체 문화는 이어나갈 것이다. 부디 우리 국민에 부탁드리건대 비록 농산물 가격이 비싸졌다고 하나 농부의 정성과 땀으로 만들어낸 햇과일과 햅쌀로 지친 농심을 위로하고 이웃 간의 정을 나눠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근심과 스트레스로 지친 우리 농부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도록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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