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근칼럼東松餘談] 천왕봉 표지석
[하동근칼럼東松餘談] 천왕봉 표지석
  • 경남미디어
  • 승인 2020.10.1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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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전 imbc 사장

가을 단풍소식이 본격적으로 들리기 시작하고 있다. 지리산에도 천왕봉 부근은 벌써 단풍이 내려앉았고, 설악산에도 이번 주와 다음 주 본격적인 단풍철이 예고됐다. 지리산 일대는 10월말까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순차적으로 단풍이 피크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맨발로 천왕봉을 22번째 오르고 있는 경남미디어의 황인태 회장은 단풍철에다 코로나 거리두기 2단계 완화조치까지 겹쳐서인지 지난 주말 천왕봉을 오른 등산객이 특히나 많았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는 등산객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천왕봉 표지석을 옆에 두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른바 인증샷을 찍는 것이다. 등산객이 많을 때는 장터목과 로터리, 치밭목 대피소 등 세 군데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서로 뒤섞이게 되면, 차례가 올 때까지 30분도 더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그동안 스무 차례 천왕봉을 오르내리면서 느낀 것은 천왕봉 표지석을 세워놓은 자리가 옹색하기 짝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천왕봉 표지석 장소가 지리산에서는 가장 높은 곳이기 때문에 그곳을 정했겠지만, 불과 6,7평 남짓한 표지석 주변은 등산객이 한꺼번에 수십 명이 몰릴 경우, 장소가 협소해서 줄서기조차 어려울 뿐 아니라, 급경사 바위와 뾰족뾰족한 바닥의 암석 등으로 자칫하면 안전사고가 날 수 위험한 곳이다. 자연 훼손이라는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표지석 주변을 정리해 등산객들이 편하게 인증샷을 찍고 천왕봉 정상을 즐길 수 있도록 관련 기관들의 협조와 융통성이 발휘되었으면 하는 것이 천왕봉을 오를 때마다 느끼는 아쉬움이다.

천왕봉 정상에 서 있는 지금의 표지석은 지난 82년에 세워졌다. 당시 함양·산청 국회의원이었던 권익현씨와 이규호 경남도지사가 앞장서서 추진한 사업으로 남강 지류의 강돌을 캐내 헬기동원까지 하면서, 천왕봉으로 석재를 날라 올렸다고 한다. 천왕봉 정상표지는 그동안 많은 변천이 있었다. 60년대 중반에는 흰 페인트칠을 한 목재기둥이었다가, 도중에 T자 형태의 표지판이 서 있었다. 71년에야 비로소 석재로 된 표지석이 세워졌는데 무릎 높이의 검은색 석재로 정사각기둥 형태였다. ‘만고의 천왕봉은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다’는 뜻의 남명 조식 선생의 시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80년대 초에는 허리높이의 회색 화강암 비석이 세워졌는데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곧바로 지금의 표지석으로 대체되었다. 지금의 표지석이 천왕봉에 자리한 지 햇수로 38년째다. 표지석 뒷면에 새겨진 ‘여기서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하다’라는 문구가 처음에는 ‘경남인’이었다가 ‘한국인’으로 바뀌는 소동도 겪었다. 나름 그사이 역사를 새긴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천왕봉 표지석에 대한 더 큰 아쉬움은, 장소보다는 표지석 자체가 천왕봉 주변의 석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립공원 주요 산 정상의 표지석은 대부분 주변 지역에서 나오는 석재로 세워졌다. 한라산 백록담, 설악산 대청봉, 덕유산 향적봉, 태백산 장군봉, 무등산 서석대 등지의 표지석이 모두 그렇다. 그래서 주변 지형과도 잘 어울릴 뿐 아니라, 표지석의 크기 또한 산 높이에 어울리는 위엄까지 갖추었다. 그래서인지 이들 산을 올라가 인증샷을 찍으면, 그 산의 기운이 확실히 건너옴을 느낀다. 그러나 천왕봉 표지석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면 무언가 허전하다. 표지석을 보는 순간, 주변의 암석 석질과는 달라 이질감을 준다. 굴러온 돌이어서 그런지 지리산의 기운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게다가 크기조차 작아서 영호남을 모두 아우르는 지리산의 장대한 호연지기와 혼연일체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도 든다. 제 땅에서 나온 박힌 돌이 천왕봉 정상의 주인이 아니다 보니 지리산의 정기를 제대로 느낄 수가 없는 것이 나만의 생각일까?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표지석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는 천주(天柱: 하늘기둥)라는 암각글씨를 더 선호한다. 2015년부터 논의되고 있는 천왕봉 표지석의 개선작업이 하루라도 빨리 추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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