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의 세상엿보기] 테스형의 가을 –고향기행-
[김용희의 세상엿보기] 테스형의 가을 –고향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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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0.2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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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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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난히 가을 빛이 깊다. 긴 장마가 남기고 간 배달선물인가? 남강의 상류인 경호강 위천수 강변 뚝방 길에는 휴대폰 카메라 렌즈에 갈색 유리를 덧씌운 것처럼 어디든 가을 빛이다. 석양의 강변길을 걷노라면 비스듬히 누워 비치는 햇빛에 억새가 하얗게 부서진다. 가을 저녁 부는 강바람에 몸을 맡긴 채 석양빛을 흩어내는 억새밭, 정지용의 ‘해설피 울음’ ‘사시사철 헐벗은 이쁠 것도 없는 아내가 이삭줍던 풍경’은 사라졌지만 고향의 가을은 저무는 노을빛을 어쩌지 못해 물빛으로 바람으로 한껏 갈색 그리움을 품어내고 있었다.

봄의 설레임이 왜 가을에는 이런 짙은 그리움으로 흩어질까? 산책길 따라나선 정다운 친구 콜리(개)는 늘 보는 고향의 풍광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풍광을 카메라에 담느라 걸음느린 손 주인만 독촉하듯 뒤돌아본다. 지난 여름 들풀들이 가득한 강변을 거닐 때는 제가 먼저 감상하더니. 아주 가끔씩 오는 손을 가장 먼저 버선발로 뛰어와서 반기는 게 콜리다. 차소리를 듣곤 동구 밖까지 달려 나와 어서 창문을 내리고 인사하자 보챈다. 일부러 못 본 척하면 차를 몇 바퀴씩 돈다. 무릇 정이란 게 이런 건가 싶다. 무뿌리 하나라도 더 뽑아주려는 형님, 평소 좋아한다고 추어탕 고사리 씨레기 모란대 듬뿍 넣고 끓어놓은 형수, 고향의 가을은 그렇게 풍요롭고 깊게 석양빛 노을만큼이나 숙성되고 있었다.

우린 알 수가 없다. 왜 가을이면 물빛이 저리도 깊은지, 왜 가을이면 마음 한구석에 그리도 휑하게 바람이 부는지, 먹어도 배고픈 갈증처럼 꽃게 무덤의 본질적 공허가 하늘가에 늘 배어있는지, 춘분이 순양지절이면 추분은 순음지절이란다. 음양은 모르스부호 아니 요즘 식이라면 알고리즘처럼 2진법이다. 음양의 효로 64괘를 만들고 그 중 추분과 춘분은 음과 양의 기운이 가장 가득한 때다. 해서 춘분은 여성들의 계절이고 추분은 남성의 계절이라곤 하지만 가을이 어디 남성들만의 서정이고 감상이든가?

아름다운 것들은 잠시다. 봄꽃이 만발하면 그것도 잠시, 목련과 벚꽃은 꼭 2~3일이다. 만개한 시간은 그처럼 짧다. 가을 단풍도 비슷하다. 화려하게 물들고 미련 없이 진다. 벚꽃잎이 바람에 눈처럼 날리던 기억이 채 식기도 전에 또 가을 낙엽이 우수수 진다. 이 가을 하루가 아쉬운 것은 쉬 사라지기 때문이겠다. 아니 쉬 사라지기에 아름답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따지고 보면 아름답지 않은 게 뭔가. 매일 중천에 뜨는 달은 그 모양과 크기를 달리해가며 뜬다. 조석으로 깨어나는 여명과 석양, 겨울 깊은 밤 부엉이 소리, 가을 창틀의 귀뚜라미 소리, 파란 하늘 온갖 모양의 구름, 그리고 가족들의 사랑…. 아름다워서 아름다운 것들도 지나치며 사는 게 우리 바쁜 일상의 생활일지 모르겠다.

지금은 노을에 비친 은행잎이 노랗다 못해 샛노랗다 못해 그 빛깔을 향기로 흩어내는 시절이다. 곧 저 나무들도 나목이 되어 추운 겨울바람 앞에 긴 시간을 언 가지로 움츠리고 있을 게다. 내년 봄이 올 때까지, 땅이 풀려 봄 물이 다시 오를 때까지, 그렇게 나무들도 성숙해 가는 게다. 고통과 기쁨으로 감격과 인내로 그런 시절이 하나의 결로 남아서 나무도 성장하는 게 아니던가, 나이테 그것은 연륜이고 하나의 아프고 기쁜 기억인 게다.

우린 미처 수용할 수도 다 감상할 수도 없는 이 벅찬 가을을 어떻게 해야 할까. 부등켜 안고 잃어버린 30년 아니 70년처럼 밤새 눈물지어야 할까? 아니면 거룩한 슬픔 아니 축복으로 감사해야 할까. 앙평 길 물안개도 새벽 빛에 깨어나든 강의 숨결도 곧 차가운 바람으로 숨긴 사랑을 품을 날도 멀지 않다. 수락산이 거추장스런 옷 벗어 버리고 빈 산이 되어 산에 드는 이들을 맞을 게다. 모든 가식 걷어낸 빈 산이 가슴과 가슴으로 다가오는 계절이 겨울이다. 상강 지나서 입동 동지….

사람은 무엇으로 살까? 그래도 정으로 살 일이다. 사랑으로 감사로 살 일이다. 모 가수의 노랫가락이 생각난다. “그저 와 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사랑 인생 고향, 그분 이번 공연의 3가지 주제가 곧 이 가을을 대비한 행사 같았던 것처럼. “사랑은 또 왜 이래, 인생 참 아프다 테스형~” 아니겠다. 아픔보다는 안으로 익어야 하는 계절 그게 가을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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