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차의 역사와 세계 차문화] 제7화 탱그리의 聖水 綠茶
[우리차의 역사와 세계 차문화] 제7화 탱그리의 聖水 綠茶
  • 김민석 박사
  • 승인 2020.11.18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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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차는 기후 등의 영향으로 대부분 녹차가 근본
한국 3대 녹차 (강진야생녹차/보성녹차/하동왕의녹차)
한국 3대 녹차 (강진야생녹차/보성녹차/하동왕의녹차)

한국의 차는 역사적으로 시대에 따라 제조되었던 차의 형태는 달랐으나 기후 등을 고려하면 대부분 녹차를 근본으로 하여 약간의 말차와 발효차 등이 제다된 듯하다. 차를 우리기에 가장 까다로운 것이 녹차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녹차 중에도 우전, 세작, 중작, 대작으로 수확시기와 입의 크기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고 우리는 방법이 다소 다르기 때문이다.

1. 한국차의 역사

한국의 차의 분류나 제다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충실하지 않았다. 차가 언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투후 김일제 후손의 가야와 신라의 왕가를 형성한 시기와 깊은 관계가 있다. 공식기록으로는 삼국사기에 서기 46년 수로왕비인 허황후가 차의 씨앗을 김해 동삼동 일대에 뿌려 차밭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신라와 가야에서 공통으로 출토되며, 국보 91호인 기마인물상 뒤편에 있는 동복이 가야와 신라를 건설한 김씨 왕가의 차 문화 생활을 예상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준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한반도에서는 아무리 늦어도 서기 1세기 이전에 차문화가 왕족들을 중심으로 존재했을 것이다.

또한 보성군사에 의하면 서기 369년 백제 근초고왕 24년에 마한의 비리국이 백제의 복홀군으로 통합될 때 특산품으로 차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은 보성 복홀차에 대한 이야기이며 다음 편에 추가로 잠시 설명하기로 하자. 그리고 삼국사기에 의하면 서기 828년 흥덕왕 3년 대렴공이 당나라에서 가져와 심은 지방기념물 61호 쌍계사 주변 차나무 기록이 있다.

이상의 신라, 가야, 백제의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차는 한반도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재배나 제다가 이루어졌고 일반 대중들이 먹던 음식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적어도 귀족이나 왕족 이상의 선민들이 마시든 귀한 물건인 것이다.

2. 탱그리사상과 실크로드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전설에 의하면 차는 탱그리의 성수(聖水)이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역사에서 널리 나오는 탱그리는 우리말 단군과 같은 의미로 신정일치 시절의 최고지배자 계급을 의미한다. 알타이족의 탱그리들은 황금왕관을 쓰고 황금찻잔에 황금색 차를 마심으로 그들의 권위를 세웠다. 결국 황금색의 차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단수와 같은 의미로 탱그리들이 소중히 다루고 소중히 마시던 성수(聖水)인 셈이다.

이러한 문화가 흉노를 통해 동양과 서양으로 널리 전달되게 된다. 특히 기원전 199년 흉노족 목돌 선우가 한고조 유방을 정벌한 해로부터 약 80여 년간 흉노는 한나라로부터 다양한 조공을 받게 된다. 특히 흉노는 이러한 한나라의 실크를 중심으로 한 조공품 들을 실크로드를 이용하여 서역에 판매하면서 굉장한 금전적 이익을 축적하였다. 이때 인도 파미르 고원의 차들도 실크로드를 따라 동서양을 왕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금전적 이익 때문에 흉노는 내분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엔 한 무제의 반격을 받기 시작한다. 그러다 기원전 121년 흉노와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흉노 휴도왕이 전사하게 되고 그의 태자 일제가 포로가 되어 노예생활을 시작한다.

또한 기원전 108년경 요동과 만주의 강자 단군조선마저 한나라에게 멸망되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기원전 100년경 김일제가 한 무제의 목숨을 살리므로 투후가 되어 산둥성으로 부터 그 세력을 해양으로 키워 해상왕국의 기틀을 다져가기 시작한다. 또한 단군조선 멸망이후 조선의 후예들이 부여와 옥저와 동예 등에서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 요동과 만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다 기원전 37년 졸본부여의 주몽을 중심으로 고구려를 건국한다. 이때부터 다시 한나라의 힘은 약화되고 투국과 고구려 등의 유목민족들이 강성해가는 시기가 다시 도래한다.

3. 서기 1세기경 한반도 차문화의 정착

또한 기원전 18년 비운의 고구려 왕자 온조가 주몽이 세운 고구려의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자 그의 어머니 소서노와 함께 54개 이상의 소국으로 이루어진 마한을 중심으로 백제를 건국하게 된다. 이러한 시기에 해상왕국을 꿈꾸던 김일제의 후손들은 목포를 거쳐 한반도에 왕래하게 되고 나아가 김해와 경주를 거쳐 일본으로 가는 무역로를 개척하게 된다.

이러한 김일제 후손들의 무역로 중심항구인 목포, 김해, 경주를 중심으로 한국에 차문화가 전달되는 계기가 된다. 아마도 이때쯤 목포를 통해 보성 복홀차(伏忽茶)의 전신인 복호차가 한국에 전해지지 않았나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렇게 해상왕국으로 부와 명예를 가진 김일제 후손은 서기 8년 왕망과 연합하여 중국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개국한다. 그러나 왕조 개창 15년 만에 적미(赤眉)·녹림(綠林) 등의 농민 반란이 각지에서 발생하였고 또 지방의 여러 호족도 이에 호응하여 왕망은 죽임을 당하고 신나라가 멸망하고 후한이 다시 세워지게 된다.

신나라의 멸망이후 20년쯤 지나 서기 42년에 김일제의 후손인 수로가 변한의 12개 소국을 중심으로 가야를 건국하게 된다. 4년 후인 서기 46년 인도로부터 허황후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때 가져온 차 씨앗으로 김해 동삼동 일대에 왕립 차밭을 만들게 된다.

또 20년 후인 서기 65년 진한 12개 소국으로 건국한 신라에 김일제의 후손인 알지가 강력한 왕권세력으로 부상하여, 서기 262년 13대 미추왕을 시작으로 김알지 후손이 왕으로 등극하고 서기 356년 제17대 내물왕 이후에는 신라의 김씨만이 왕위를 이어가는 명실상부 신라김씨왕국을 만들게 된다.

4. 한국인의 차 녹차

한국의 차는 역사적으로 시대에 따라 제조되었던 차의 형태는 달랐으나 기후 등을 고려하면 대부분 녹차를 근본으로 하여 약간의 말차와 발효차 등이 제다 된듯하다. 차를 우리기에 가장 까다로운 것이 녹차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녹차 중에도 우전, 세작, 중작, 대작으로 수확시기와 입의 크기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고 우리는 방법이 다소 다르기 때문이다.

우전의 경우에는 강한 향보다 향이 거의 나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향이 일어나기 때문에 고급 녹차에 속한다. 반면 중작, 대작과 같은 하급 녹차일수록 낮은 물의 온도에서는 우러나지 않거나 우러나도 맛이 쓰고 떫은맛이 난다. 그래서 녹차가 고급 녹차인지 저급 녹차인지를 구별할 때는 먼저 물의 온도를 낮추고 우려 마셔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녹차는 향보다는 맛을 중시하므로 물의 온도를 낮추어야 한다. 고급 녹차일수록 50℃~60℃의 낮은 온도로 우려내어야 부드러운 향과 감미로운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한국 녹차의 중요한 산지는 하동, 보성, 강진, 제주 등이 있으나 기후와 품종을 고려할 때 녹차만큼은 한국의 녹차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여도 가장 맛이 뛰어나다.

중국 녹차도 우리 녹차처럼 소엽종의 여린 잎으로 녹차를 만들지만, 체취와 제다 방법이 다르다. 그래서 용정차, 벽라춘 등과 같은 중국녹차의 경우에는 80℃~90℃ 정도로 한국 녹차보다는 물의 온도를 약간 높여 우린다.

5. 녹차 제다법

녹차의 특징은 찻잎의 색깔, 차탕의 색, 우린 잎의 색깔이 모두 녹색이다. 그리고 녹차는 제다의 구분상 불발효차로서 찻잎에 들어있는 효소(polyphenol oxidase)를 뜨거운 솥이나 수증기에 의해 불활성화시켜 산화를 억제한 차이다. 녹차의 제다법은 지역에 따라 그리고 만드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며, 어느 것 하나가 표준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녹차의 제다과정에는 살청-유념-건조를 거쳐 6대 다류 중 유일하게 불 발효차의 성질을 가진다. 그리고 살청과 건조 방법도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는데 뜨거운 솥에서 덖어내는 초청과 뜨거운 수증기에 찌는 증청으로 햇볕을 사용하는 쇄청, 따뜻한 방이나 훈재를 사용하는 홍청 등이 있다.

1) 채다(採茶)

찻잎의 조건은 여린 정도, 신선도, 균일도, 청결도로 구분된다. 찻잎의 특징은 품종과 토양, 기후에 따라 잎의 크기 모양, 두께, 줄기, 중량에 따라 차이가 있다. 찻잎 크기는 1창, 1창1기, 1창2기, 1창3기 등으로 분류된다. 찻잎의 색상은 연한 녹색과 짙은 녹색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제다시기에 따라 첫물 차, 두물 차, 세물 차, 끝물 차로 분류한다. 채다 방법에 따라 손 따기, 가위 따기, 기계 따기로 구분된다.

2) 위조(萎凋)

그늘진 곳에 가만히 놓아 수분을 날리는 공정이다. 채다한 찻잎의 수분이 많을 경우에 완성된 찻잎의 색깔이 짙어지고 맛과 향기가 약하다. 수분이 많으면 살청 할 때 뜨거운 수분이 많이 올라와 맨손으로 덖기 어렵다. 위조 후 적당한 함수량은 70%이며 중량은 15~25% 감소한다.

3) 살청(殺靑)

뜨거운 수증기나 솥의 열에 의해 생잎 속에 들어있는 효소의 활성을 억제시켜 찻잎의 화학 변화를 막는 공정이다. 주로 찻잎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폴리페놀의 산화를 막기 때문에 녹색 의 차 색깔을 유지하고 풋내를 없앤다. 350℃의 가마솥에서 3분 이내로 살청하여 부드러워진 찻잎은 유연성을 가지며 다음 공정인 유념이 잘 되게 도와준다.

4) 유념(揉捻)

수분이 날아가 부드러워진 찻잎을 비벼 주어 모양을 만들고 부피를 줄여 준다. 유념의 방법은 살청한 찻잎이 뜨거울 때 하는 열후와 식은 후에 하는 냉유가 있다. 열후와 냉유사이에 탄방을 실시하여 차를 열에 뜨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유념할 때 힘의 세기는 약-강-약으로 마무리한다.

5) 건조(乾燥)

수분을 3~6%로 유지시켜 변질되는 것을 막아 저장성을 높인다. 유념에서 만들어진 외형을 고정시킨다.

6) 가향(加香)

건조를 마친 1차 가공차는 숙성기간을 두었다가 제품을 출하하기 전에 마무리 건조를 통하여 차의 잡냄새나 수분을 제거하여 차의 맛과 풍미를 돋우는 작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향작업, 끝덖음, 홍배 등의 표현을 쓴다. 고급차의 경우 저온에서 오랜시간 가향을 하여 차의 은은한 맛과 향을 더한다.

김민석 박사

▶경영학 박사

▶오성다도명가연 대표

▶경남협동조합협의회 회장

▶사단법인 한국문화창업진흥원 원장

▶2020 강진야생차축제 찻자리 부문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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