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의 세상엿보기] 가을 행복
[김용희의 세상엿보기] 가을 행복
  • 김용희 시인·수필가
  • 승인 2020.11.2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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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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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끝이라도 잡아보려 무작정 자전거 길을 나선다. 길을 가고 또 간다 울툴불퉁 허물어진 포장도로에서 바퀴가 구멍났다. 여기가 어딘지 해 지는 거리에서 망연자실 서 있다. 작은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차 가져올 수 있겠냐고. 얼마간 기다리란다 도착시각을 알려준다. 낯선 거리 지는 낙엽 사이로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어느 중년 배우가 구순 부모는 요양원에 맡기고 밤샘 노역을 한다. 삶의 힘과 이유가 되어 줄 가족이 있기에. 어느 모친은 힘겹게 버티다 삶을 마감하는 개그맨 딸을 따라 삶을 마감한다. 삶의 끝자락에서 옅어져 가는 기억들 붙들고 어느 한 할아버지가 운다. 젊은 시절 돈 만들 길이 없어 강원도 산골에서 나무해다 팔던 기억 되새기며 운다. 통장 잔고가 비어버린 무책임한 가장을 둔 주부는 전단지를 들고 길을 나선다. 이 가을도 한가하게 낭만을 읊조릴 여유가 없다. 이 가을이 이리도 슬픔으로 저물어 가는 모습이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돈으로 산다. 복권방 토요일의 긴 줄은 기다림의 줄이다. 이런 고통 지워줄 기약없는 기대와 기다림의 줄이다. 그 복권방 앞에도 가을 낙엽은 지지만 그건 먼나라 아득한 일이 된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지독히 행복한 두 부부를 보여준다. 자연 속에서 그림같이 사는 두 부부. 제주가 좋아서 내려간 젊은 부부, 학원없는 7살 아이도 더없이 행복해한다. 육지 살 때는 하숙생아빠인데 제주에서는 늘 함께하는 가족. 통장 잔고 줄어서 해물집 개원했다. 직접 잡아온 낙지로 4인분 같은 2인분 해물찜을 준다. 바다의 반이 숭어떼, 지는 해 그 삶이 자연속 삶이 충만하다. 어느 중년부부, 강원도로 내려가서 산 중턱에 농가주택을 개조해서 그림같은 풍경을 만들어 간다. 테라스를 만들고 황토방을 만들고, 아내는 꽃 가이딩으로 남편은 황토방 불멍으로, 그리고 과수원에는 아들이 농장을 관리한다. 햇살받은 아내의 웃는 모습이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 학원사업 크게 성공했으나 심신이 지쳐가서 그 피로를 휴일 하루 자연에서 등산 휴식하며 풀던 기억에 아예 정리하고 시골로 와 버렸다. 단풍나무 아래 벤치에 앉은 부부, 행복이 아니라 에덴의 동쪽 같다.

가을 낙엽이 자꾸만 퇴색되어간다. 그래도 단풍나무는 아직은 각양의 짙은 기억들을 화려하게 품고 파란 하늘빛으로 서 있고 샛노란 은행잎들은 못다 쏟은 그리움을 길섶에 가득 쌓아두고 있다. 봄꽃은 속절없이 지지만 낙엽은 떨어져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다.

사철나무를 제외하곤 나무들은 매년 새잎을 돋우고 그리곤 성숙하다 가을에는 낙엽으로 진다. 기대와 설렘으로 고사리손처럼 돋은 새싹들은 여름의 푸름으로 자라 긴 장마와 폭우와 폭염을 견디고 가을에는 낙엽으로 진다. 그리고는 또 빈 마음이 되어 겨울을 난다. 그 구비구비의 궤적을 하나의 나이테로 남기고 나무들은 그렇게 성숙해 간다. 지치도록 내리던 장마, 혹은 타는 목마름으로 긴 갈증의 시간들 품고 그렇게 나무들은 자연의 성숙을 안으로 품는다.

이 깊어가는 가을. 우린 무엇으로 사는가? 아무래도 정으로 사는 게다. 가족이 있어 막일로 밤을 새우는 배우처럼, 학원사업 둘이서 밤새던 기억으로 혹은 서로 세상의 모든 것으로 의지하는 제주의 부부처럼 그렇게 정으로 사는 게다.

지난 여름 한 주의 시든 시간을 친구와 길가던 녀석이 “아빠~!” 라 불러준 날 잎들이 다시 푸르게 보였듯이. 우린 정으로 사는 게다. 줄 정과 받을 정으로, 이 가을 저 낙엽 또한 자연이 베풀어준 사랑이요 감성의 편지로 여겨 그렇게 정으로 사는 게다.

늦은 가을 지는 해를 보며 낯선 거리를 찾아오는 아이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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