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차의 역사와 세계 차문화] 제9화 세계 제일의 차산지와 한국 3대 차산지
[우리차의 역사와 세계 차문화] 제9화 세계 제일의 차산지와 한국 3대 차산지
  • 김민석 박사
  • 승인 2020.12.01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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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경 조성된 강진·보성·하동 차밭 3대 생산지로 발전
한국 녹차 비교 (강진야생녹차/보성녹차/하동왕의녹차)
한국 녹차 비교 (강진야생녹차/보성녹차/하동왕의녹차)

우리의 차문화는 공식적으로 서기 1세기 가야 김수로왕과 허황후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기원전 2세기에 중국 산둥반도를 중심으로 한 투후 김일제의 출현과 그 후손이 세운 해상왕국 신나라를 이해하여야 그 매듭이 자연스럽게 풀린다. 특히 기원전 2세기의 한나라 무제와 투후 김일제의 쫓고 쫓기는 악연은 서기 1세기경에 더욱 증폭된다. 결국 한나라는 서기 8년 김일제의 후손이 세운 신나라에 의해 멸망되고, 15년 후인 서기 23년 신나라는 후한에 의해 다시 패망한다.

이때 해상왕국 신나라 지배층인 김일제의 후손들이 목숨을 건지고자 자연스레 한반도에 도래를 하게 되고, 그때 신나라의 무역로였던 목포, 김해, 경주가 아직도 우리나라 차산지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특히 목포는 우리나라 차의 메카인 강진과 보성의 차 재배에 영향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하동도 비슷한 시기에 차재배가 시작되었으며, 통일신라 이후에는 우리나라에서 야생차가 가장 잘 자라는 차산지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서기 1세기경부터 만들어진 강진, 보성, 하동의 차밭은 명실상부 한국 3대 차생산지로 발전해 왔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곳이 제주이다. 제주는 1979년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주인 서상환 회장에 의해 차나무가 심어진 이후 끊임없는 차밭을 개간하여 지금은 세계 제일의 차생산지가 되었다.

1) 한국 차문화의 메카 전남 강진

전라도 강진은 차도 유명하지만 우리 한국 차문화를 빛내신 분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우선 강진차를 빛내준 차인 중 다산 정약용, 초의선사, 이한영 선생을 꼽을 수 있는데 다산의 정신이 깃든 사의재에서는 해마다 헌다례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의 강진유배 18년 중 10여년을 생활한 곳인데 강진 유배 중에 백련암의 혜장선사와 같이 사색과 주역을 이야기한 곳이다.

또한 추사와 초의선사를 제자로 삼고 조선 후기의 차문화를 굳건히 세우던 장소이며 현대에 와서는 한국 차문화의 메카이다. 또한 다산초당은 그의 제자들이 다산을 위해 맺은 다산계로 유명한데, 지금도 찻상으로 쓴 돌인 다조, 다산초당에 있는 샘 약천(藥泉), 다산의 필체를 새긴 돌 정석(丁石)등이 다산초당에 가면 볼 수 있다. 특히 정약용은 손수 정차라는 약차를 만들어 드셨는데 이 정차는 나중에 청태전과 더불어 강진을 대표하는 약차가 되었다.

다음으로 초의선사는 한국의 다성으로 추앙받는 분으로 1828년 지리산 칠불암에 머물면서 차서(茶書)인 다신전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다신전은 20여 가지 목차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용은 찻잎 따기, 차 만들기, 차의 식별법, 차의 보관, 물을 끓이는 법, 차를 끓이는 법, 차를 마시는 법, 차의 향기, 차의 색 등을 상세하게 다룬 책이다. 또한 초의선사는 1833년 일지암에서 동다송을 저술하는데 주요 내용은 우리나라의 차의 품질이 우수함을 칭송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과 초의선사의 맥을 이어온 또 한 명의 차인이 이한영 선생이다. 이한영 선생은 다산의 마지막 제자인 이시헌의 후손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다산의 제다법이 이한영에게 전해져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전통 차의 맥을 백운옥판차로 이었다. 백운옥판차는 강진의 명차 중 하나로 백운동 옥판봉에서 딴 찻잎으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시판차이다.

2) 최초 공납차 복홀차의 전남 보성

보성군사에 따르면 보성차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 근초고왕 24년인 서기 369년 3월에 마한의 비리국이 백제의 복홀군으로 통합될 때 특산품으로 차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가 우리나라 최초의 공납차인 복홀차(伏忽茶)의 탄생이며, 차의 명칭 또한 복호차(伏虎茶)에서 복홀차(伏忽茶)로 넘어가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보성군청은 복홀차의 시배지로 유력한 곳이 보성군 미력면 장동 장골마을 주변이라고 한다. 이 마을은 마한시대 복호촌으로 불리었다가 백제시대부터 복홀군으로 불리었다. 그러다가 서기 757년 통일신라 경덕왕 시절에 비로서 복홀군을 중심으로 성을 만들고 ‘보물이 있는 성’이라는 뜻으로 보성(寶城)이라는 이름으로 붙이게 된다. 과연 신라 경덕왕에게 보성의 보물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경덕왕은 그의 선조들이 사랑한 차를 후대까지 잘 지켜준 복홀군의 차 사랑을 소중한 보물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가면 보성의 옛 이름 복호를 차지하고 싶은 이가 또 한 명 더 있다. 그는 원나라를 세운 쿠빌라이로 그는 천하의 명당 복호를 가지고자 자신의 부하들로 하여금 복호를 지키도록 했다. 그 결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쿠빌라이는 피비린내 나는 형제들 간의 전쟁에서 결국 황제가 되고 원나라를 개국하는 영광을 누렸다. 아무래도 복호는 이래저래 명당이며 보물이 확실한 모양이다.

그리고 보성녹차를 이해하기 위해서 보성에 있는 한국차박물관 방문을 추천하고 싶다. 한국차박물관은 한국 최초, 최대 박물관으로 차의 주산지인 보성군 보성읍 봉산리에 위치해 있다. 1층은 차문화관, 2층은 역사관, 3층은 차생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차를 이해하고 배우는데 가장체계적인 교육장소라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특히 이곳에는 보성을 상징하는 득량 다전마을의 430년 된 이순신장군 고차수차, 350년된 대원사 대길상 천봉떡차, 보성읍 몽중산다원 내에 있는 250년된 고차수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녹차종인 야부기다와 인도산 홍차종인 베니오마레 등이 다수 심겨졌으나 해방이후 보성 농업기술연구소 등에서 녹차 자생종 25종을 만들어 보성 일대에 널리 보급하여 지금은 대부분의 품종이 녹차종으로 개량이 되었다고 한다.

3) 왕의 녹차 경남 하동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서기 828년 신라 흥덕왕 3년 당나라에서 돌아온 사신 대렴공이 차 종자를 가지고 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지리산 쌍계사 입구에 있는 대렴공추원비에는 지리산 쌍계사가 우리나라 차의 시배지라 적혀있다.

다선 초의선사의 동다송에는 지리산 화개동에는 차나무가 사, 오십리에 뻗어 자라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보다 넓은 차밭은 없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다경에 이르기를 차나무는 바위틈에서 자란 것이 으뜸인데 화개동 차밭은 모두 골짜기와 바위틈이다라며 하동 야생차를 극찬하였다.

지금도 하동 화개면은 흥덕왕이 지리산에 심을 것을 명한 1000년 고차수의 후손들이 남아 있다. 하동의 왕의녹차는 이 1000년 야생 고차수로 만든 하동차를 상징하여 붙여진 하동차의 브랜드이다.

아직도 하동에선 매년 2000여 농가가 1000㏊정도의 차밭에서 녹차 2000t 정도를 생산한다. 전국 생산량의 25% 정도이다. 기업형 6개 등 127개 가공업체가 주로 하동수제녹차를 생산한다. 전통 차농업은 2016년 3월 국가중요농업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하동야생차는 찻잎 채취시기와 품질에 따라 우전, 세작, 중작, 대작으로 구분을 한다. 우전은 아주 여린 찻잎으로 곡우(약 4월 20일) 이전에 채취한 잎으로 만들어진다. 다음 세작은 입하(약 5월 6일)경 채취한 여린 찻잎으로 만들어진다. 중작은 세작보다 잎이 더 자란 후에 딴 잎으로 제다를 하며, 대작은 중작보다 더 큰 잎을 분류하는데 요즘에는 발효차의 재료로 많이 사용되어 진다.

뿐만 아니라 하동녹차연구소를 중심으로 녹차 신품종 32가지를 육묘에 성공하여 하동 차 농가를 중심으로 하동 등지에 심고 있으며, 질 좋은 하동말차를 만들고자 연구와 기술이전에 박차를 기하고 있다고 한다.

4) 세계 제일의 차생산지 제주

제주의 차를 이야기하면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와의 우정 그리고 세한도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1840년 추사는 제주도 대정읍으로 귀양을 오게 되고 9년간의 유배생활을 한다. 이때 그의 유일한 즐거움이 차였다. 특히 초의선사가 만든 초의차를 몹시 그리워하여 50여 통의 편지로 초의에게 차를 보내 달리고 부탁하였고 초의선사는 인편으로 차를 보내거나 본인이 직접 제주를 찾아 추사와의 우정을 이어나갔다. 다음으로 국보 제180호 세한도는 1844년 차심부름과 책 심부름을 마다하지 않은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그림으로, 추운 겨울에도 푸르름을 유지하는 소나무처럼 시련 속에서도 자신을 지지해준 제자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그린 작품이다.

이러한 김정희로부터 시작된 차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수확량을 나타내는 차의 생산지가 되었다. 특히 제주가 세계 제일의 차생산지가 되는 데는 연평균 기온 14도 이상, 연간 강우량 1600mm의 약산성토양으로 차나무 재배의 최적지인 지리적 요건도 있지만 아모래퍼시픽 창업주인 서상환 회장의 노력을 인증하지 않을 수 없다. 아모래퍼시픽은 1979년 제주 안덕면 돌송이차밭 부지에 처음으로 차나무를 심고 1983년 제주 녹차 첫 수확물로 만든 설록차를 시작으로 서광차밭, 한남차밭을 차래로 개간하여 오늘날의 오설록의 신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가 동굴카페로 유명한 다희연이다. 다희연은 박영순 회장 부부가 2005년부터 조천읍 선흘리 일대 밀림 20여만 평방미터를 개간하여 녹차 묘목을 심어 2010년에 정식으로 문을 연 녹차종합테마파크이다.

김민석 박사

▶경영학 박사

▶오성다도명가연 대표

▶경남협동조합협의회 회장

▶사단법인 한국문화창업진흥원 원장

▶2020 강진야생차축제 찻자리 부문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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