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흩날리는 바람을 통해 계절과 감정을 나타낸다
[인터뷰] 흩날리는 바람을 통해 계절과 감정을 나타낸다
  • 정웅교 기자
  • 승인 2021.01.05 11: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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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선행 서양화가

부모님 만류에도 작가의 꿈 꾸며 달려와
바람이 곳곳에 머무는 느낌의 작품 출품
자신만의 데칼코마니‧뿌리 기법 등 활용
노랑‧파랑 색감을 주로 쓰는 작가로 정평

“나의 감정을 작품으로 솔직하게 표현하고
많은 대중과 작품에 대해 소통하고 싶어”
염선행 작가 작품 ‘바람난 지구(f30/mixed media on canvas)’
염선행 작가 작품 ‘바람난 지구(f30/mixed media on canvas)’

염선행(60) 서양화가는 흩날리는 바람을 통해 계절과 감정을 나타낸다. 염 작가는 바람이 공간이라는 공간을 채우며 어디든 날아갈 수 있듯이 바람이 지구 곳곳에 머무는 순간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염 작가는 여행에 대해 갈망한다. “겁많은 여자이기에 혼자 떠날 수 없는 여행에 대한 갈망을 하얀 캔버스 위에서 풀어놓는다. 바람은 세계의 공간이란 공간을 채우며 어디든 날아갈 수 있다.” 그는 바람이 되어 지구 곳곳을 유유히 다니는 느낌의 작품을 10년째 출품하고 있다. 지금의 작품이 탄생하기 전에도 그가 직접 다니고 경험했던 것을 비구상으로 나타내고 출품했다.

자신만의 기법을 탄생시키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여러 기법에 도전하다 염 작가만의 데칼코마니 기법과 뿌리 기법 등이 지금의 작품과 함께하고 있다. 흔히 대중들이 알고 있는 같은 그림을 찍어내는 데칼코마니와 달리 캔버스 위에 맨 처음 바람을 그린 후 터치된 그림의 형체를 종이에 묻혀 곳곳에 함께 나타낸다. 같은 그림들이 곳곳에 연하고, 진한 것들이 표현되면 자신만의 기법은 물론 작품에 깊이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염 작가의 지론이다.

바람 작품 등을 비롯한 염 작가의 대부분 작품은 주로 파랑과 노랑이 작품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파랑과 노랑이 자신만의 색상이라고 소개했다. 주요색으로 사용하는 파랑은 평화와 온유 그리고 회복을 상징한다. 노랑은 자신감과 풍요로움으로 연결되고 상처 치유로 이어지는 것을 표현한다. 이런 색상들은 화단과 대중들로부터 염 작가만의 색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새로운 작품과 기법을 위해 도전하고 그것들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작가로 거듭나는 길이라고 염 작가는 강조했다. “미술계의 흐름과 자신이 나아가야 할 작품 방향성 등을 설정하고 도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해외 전시회 등을 통해 다양한 작품들을 보고 경험해야 한다. 그런 그림들을 보고 배우면서 새로운 기법과 작품 방향성에 대해 도전해야 한다.” 실제 그는 LA에 소재한 Nortonsimon미술관에서 개최한 그룹전에 참가하면서 당시 미술계의 흐름을 통해 작품 방향성을 설정했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염 작가는 화가라는 꿈을 꾸고 달려왔다. 어린 시절 우수한 성적과 140이라는 높은 IQ 등을 가지고 있던 그는 그림 실력마저도 뛰어나 많은 대회에서 큰 상을 받았다. 이후부터 그는 화가라는 꿈을 가졌지만, 부모님은 그림 그리는 것을 제외한 선택을 원했다. 하지만 그런 시간도 잠시 염 작가의 작품을 본 아버지는 그림에 감동했다. 그 이후부터 아버지는 염 작가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고 옆에서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염 작가는 서울에서 1960년에 태어났지만 지금의 남편 직장으로 인해 진주에 정착했다. 그는 20여 년 전 진주여류작가회 등의 미술단체에 소속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진주에서 작품을 출품하는 등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국내에서 5번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미국, 중국, 일본 등에서 수많은 그룹전 등에 참가했다.

염 작가는 새로운 작품과 기법을 위해 도전하고 그것들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작가로 거듭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염 작가는 새로운 작품과 기법을 위해 도전하고 그것들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작가로 거듭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염 작가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최근 어떤 개인전시회를 개최했나.

-남해군에 소재한 바람흔적미술관에서 지난해 7월 25일부터 8월 28일까지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 미술관은 2~3년 전에 예약해야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다.

▲왜 예약이 필요한가.

-독일마을 인근에 소재한 미술관이라 관광객들이 코스처럼 둘러본다. 많은 대중이 모여들기 때문에 작가들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 개최하려는 듯하다. 특히 여기 미술관은 나에게 특화된 곳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주로 바람과 관련된 작품들을 출품하고 있다. 미술관 근처에 바람개비 조형물 등이 있어 꼭 바람흔적미술관에 작품을 전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50여 점을 선보였다.

▲바람과 관련된 작품은 어떤 것인가.

-흩날리는 바람을 통해 계절과 감정을 주로 나타낸다.

▲어떤 의미인가.

-겁많은 여자이기에 혼자 떠날 수 없는 여행에 대한 갈망을 하얀 캔버스 위에서 풀어놓은 것이다. 바람은 우리들 세계의 공간이란 공간을 채우며 어디든 날 수 있다. 이렇듯 자신이 바람이 되어 지구 곳곳을 유유히 돌아다니는 느낌을 나타내고 있다.

▲작품에 나타나는 색상이 많이 없는 편 아닌가.

-그렇다. 나는 주로 파랑색과 노랑색을 활용한다. 주요색으로 활용하는 파랑은 평화와 온유 그리고 회복을 상징하고, 노랑색은 자신감과 풍요로움으로 연결되고 상처 치유로 이어진다. 이러한 색상들을 나의 색상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화단이나 대중들도 그렇게 알고 있나.

-그렇다. 파랑색과 노랑색 등을 활용해 바람을 표현하면 나의 작품이 떠오른다고 화단이나 대중들이 평가한다.

▲그림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어떤가.

-대중들의 반응이 괜찮다고 생각한다. 미술관에 방문하는 대중들이 방명록을 통해 감동 등의 긍정적인 표현들이 많았다. 실제 방명록에서 한 학생이 “선생님 그림을 보고 화가가 돼야겠다는 꿈이 생겼다”고 했다. 이외에도 “미술에 아무것도 모르는 저인데도 그림에서 화려함과 강렬함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반응들로 그림에 탄력도 생기고 보람을 느꼈다.

▲특별한 기법이 요구되나.

-데칼코마니와 뿌리 기법 등을 활용한다. 대중들이 흔히 아는 데칼코마니가 아니다. 캔버스 위에 맨 처음 바람을 그리기 위해 터치하면 터치한 것들을 종이에 묻혀서 곳곳에 나타낸다. 어느 부분은 진하고, 연하게 나타난다. 그렇다 보면 그림의 깊이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기법이 특별하다고 생각해 10년째 활용하고 있다.

▲다작이 가능한가.

-6년전부터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다작이 가능하다. 컨셉만 잡히면 금방 그릴 자신도 있다.

▲이전에는 어떤 기법과 작품을 출품했나.

-기법이라는 것은 딱히 없이 붓으로 그림을 그려왔다. 작품은 바람 소재 전에는 기억 소재로 작품을 출품했다. 내가 다니고 경험했던 것들을 비구상 형태로 표현했다. 이때도 그림 반응이 괜찮았다.

▲다른 작품에는 도전을 하지 않나.

-지금 다른 작품들도 출품하고 있다.

▲어떤 작품을 출품하고 있나.

-도시 풍경을 출품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침체된 도시를 활기찬 도시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을 표현한다.

▲개인전시회는 몇 번 개최했나.

-최근 개최한 전시회를 포함해 5번의 전시회를 가졌다.

▲적은 횟수 같은데.

-그렇다. 자녀 교육 등에 시간을 전념하다 보니 그렇게 된 듯하다. 하지만 틈틈이 그림을 그려 그룹전과 단체전 등에 꾸준히 참가했다. 또, 10여 년 전 큰맘을 먹고 개최한 이후부터 반응이 좋아 2년에 한 번씩은 개최하려고 한다.

▲외국 전시회에 참가한 전시회는 있나.

-미국, 중국, 마카오, LA 등에서 많이 개최했다.

▲기억에 남는 전시회가 있나.

-LA 현대미술관과 nortonsimon 등에 참가한 것들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미술계의 흐름을 통해 기법과 방향성 설정을 느끼게 해줬다. 많은 작가가 해외 전시회 등을 통해 다양한 작품을 접하고 미술계 흐름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야 자신만의 작품이 여러 가지로 탄생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

▲전업작가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2016년부터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전업작가를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초등학교 때부터 화가가 되어야 한다는 꿈이 있었다. 또, 대학 졸업부터 전업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자녀를 키우고 시간이 흐르다 보니 지금이 됐다. 전업작가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은 쉬지 않고 꿈을 향해 달리다 보니 꿈을 이룬 듯하다.

▲전업작가 이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자녀 교육에 대부분 시간을 투자했다. 그림은 도중에 쉬지 않고 그룹전, 단체전 등을 통해 꾸준히 작품을 출품했다.

▲언제부터 그림을 접했나.

-초등학교 때 처음 접했다. 당시 그림에 대해 배우지 않았는데 각종 대회에서 큰 상을 받았다.

▲그림 재능이 있었던 것이네.

-그렇다고들 당시에 평가했다. 그때부터 그림이라는 것이 내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만류했다.

▲왜 만류했나.

-당시 IQ가 140으로 또래 학생에 비해 높았다. 또, 성적이 높다 보니 다른 직업 선택을 권했다. 하지만 틈틈이 그림을 그렸고 기어코 이화여대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이화여대에서 배운 것들이 현재 도움이 많이 되는 듯하다.

▲어떤 것들을 주로 배웠나.

-그림의 구도 등 학문적인 것들을 배웠다. 그보다 더 중요한 졸업한 후 작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인도했다. 당시 교수님이 졸업한 이후 모든 것을 버리고 끊임없이 작품에 도전하고 그것들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었다. 그 배움을 토대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도 있는 듯하다.

▲그 이후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

-아버지가 특히 당시에 실망하셨다. 그러나 저의 그림을 본 후부터는 믿고 전적으로 지원해줬다. 당시 ‘일신각’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아동도서 일러스트로 활동하게 도와줬다.

▲그럼 고향이 진주인가.

-그렇지 않다 1960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학교도 그럼 서울에서 졸업했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을 모두 서울에서 졸업했다.

▲그럼 진주는 어떻게 오게 됐나.

-지금의 남편이 경상대학교 교수로 발령나면서 진주로 오게 됐다. 그 이후 계속 진주에 정착했다.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진주에 계속 있을 계획이다.

▲언제부터 진주에서 작가로 활동했나.

-20여 년 전 진주여류작가회에 소속된 후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앞으로 작가로서 최종 목표가 있나.

-물론이다. 내가 시골 무명작가로 남을지언정 나의 감정을 작품으로 솔직하게 표현하고 그런 작품들을 대중에게 선보이고 싶다. 정웅교 기자

염선행 작가 작품 '고요한 밤(f20/oil on canvas)'
염선행 작가 작품 '고요한 밤(f20/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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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2021-01-06 07: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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