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근칼럼 東松餘談] 환아정 재현을 위한 과제
[하동근칼럼 東松餘談] 환아정 재현을 위한 과제
  •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 승인 2021.02.0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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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그 붉다 못해 검푸른 불길은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마구 용트림 치는데 어찌 인간의 능력으로 이를 잡을 수 있단 말인가? 온 천지는 명암이 교차하고 구름이 모여들어 하늘과 땅이 진동하며 강풍이 일어나 나무가 부러지고 지붕의 기왓장이 날리는 모습이 마치 바다의 해일과 비슷했다. 세찬 바람에 불길은 계속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덩이를 튕기면서 타들어 갔고 끝내 정자의 모습은 보기 사납게 일그러지면서 양쪽의 목조교실로도 옮아갔다. 모든 것이 주저앉고 말았다. 일대는 수라장이요, 아비규환이었다. 지역주민과 교직원 모두 땅을 치며 절규했다.” 지난 1950년 3월 10일 밤 10시경 일어난 환아정 화재를 직접 목격했던 당시 산청초등학교 교사 고 박은조 선생은 2008년 발행 ‘산청초등학교 백년사’에서 당시를 돌아보며 이렇게 통탄했다. 그랬던 환아정이 70년 만에 다시 세워진다는 소식이다. 환영할 일이다.

환아정은 서기 1425년, 현재의 산청초등학교 본관 자리에 처음 세워진 후, 세 차례에 걸쳐 소실과 재건을 거듭해오다, 불의의 화재로 지난 50년 봄 사라지기 전까진, 영남 3대 누각의 하나로 이름을 떨쳤던 누각이다. 현존했다면 수백 년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이 되었을 것이다. 조선 중기 전국 선비들 사이에는 ‘환아정을 다녀가지 않으면 저승을 가지 못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필수 방문지이기도 했다.

산음(山陰)이라는 지역 이름과 환아(換鵝:글씨를 써주고 거위를 바꿈)에 얽힌 중국 왕희지의 고사를 비롯해, 한석봉 글씨의 ‘환아정’ 현판, 덕계 오건의 ‘제환아정(題換鵝亭)’이라는 시와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지역출신 이경석의 ‘환아정시(換鵝亭詩)’, 조선후기 문인 이민구의 ‘산음팔영(山陰八詠)’등 120여개에 이르는 유수한 문인들이 환아정에 남긴 한시와 편액은 산청이 선비의 고장임을 알리는 상징적인 누각이기도 했다.

특히 송시열은 1608년 임진왜란 때 소실된 환아정을 다시 복원하는 기문을 통해 정자의 자세한 역사와 함께 정자는 서쪽은 사경각(寫經閣), 동쪽은 응향각(凝香閣)이 각각 배치되었고 기둥은 모두 13개였다고 외관까지 상세하게 밝힌바 있다.

환아정의 복원, 즉 옛 모습 그대로 다시 짓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위치부터 제자리가 아닌 만큼 분명 복원은 아니지만 재건이든, 재현이든 가능한 옛 모습을 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환아정의 본래 모습은 높낮이가 다른 T자형 지붕에다, 한쪽은 민속 문화재인 거창의 동계종택 사랑채처럼 겹지붕 차림으로 다른 누각과는 달리 지붕이 매우 독특한 외관이다. 정자의 계단 역시, 1770년 김윤겸의 영남기행 화첩과 1930년대 기록 사진과는 위치가 다르다. 정자의 벽체나 창틀의 유무 또한 불확실하다.

산청군이 내놓은 조감도를 들여다보니 본래 외관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재현을 위해 그다지 고민하지 않은 느낌이 강하다. 아무리 새로 짓는다 하더라도, 2014년의 환아정 관련 문헌 연구, 문화재 전문가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옛 모습을 최대한 살리는데 힘쓸 일이다. 실제 설계도면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짓는 일에 우선 매달려 자칫 배가 산으로 올라가지나 않을까 기우가 앞선다.

문화재 재현작업은 외형도 중요하지만, 재현된 실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 또한 중요하다. 수집 가능한 모든 역사 자료와 시, 현판과 편액, 주춧돌과 비석, 기와 등 인문 역사학적 컨텐츠를 모아 가시화하고 스토리를 만드는 작업 또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산청 엑스포 한방타운처럼 류의태라는 인물의 거짓 역사 발신지를 만드는 우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환아정 재현은 상당한 고증과 엄정하고 절제된 상상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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