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근칼럼 東松餘談] 도전리 마애석불
[하동근칼럼 東松餘談] 도전리 마애석불
  •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 승인 2021.03.0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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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마애석불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리산 천왕봉 오르기가 조금 지겨워지면서 주변 골짜기를 드나들면서부터다. 맨 처음 만난 마애불상은 정령치의 개령암지 마애불상이다. 천 년 역사의 암벽에 새겨진 열두 좌의 마애불상을 마주 대했을 때 받은 첫인상은 강렬했다. 자연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에서 오랜 세월 풍상으로 수백 년을 닳고 깎여서인지, 아니면 처음 새길 때 파이고 튀어나온 음양각의 투박함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질박한 선의 흐름에 돌이끼라는 자연미가 더해져서 그런지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게 가벼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흔히 말하는 ‘바위 절벽에 핀 천년의 미소’라는 표현까지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전율과 함께 세월이 주는 무게감에 또 다른 경외감을 느낀 바 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지리산 일대의 마애불상 둘러보기는 지리산 북쪽 자락으로는 함양 덕전리 고담사 마애여래입상과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로 이어졌다. 둘 다 고려시대 불상이다. 남원 일대에는 제법 많았다. 이백면 여원치와 대강면 사석리 마애석불은 통일신라시대였고, 산내면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사매면 서도리 노적봉 마애불상군, 대산면 신계리 마애불좌상 등은 고려시대, 그리고 이백면 서곡리의 마애불좌상은 조선시대 마애불상이었다. 남쪽 자락으로는 하동 쌍계사 마애불, 산청 도전리 마애석불군, 고성 거류산 마애불 등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 중 해마다 요즘 같은 봄철 해빙기나 여름 장마철이 되면 혹시나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 안부가 걱정되는 석불이 있다. 도전리 마애석불군이 그것이다. 산청군 신등면 도전리 어은마을 입구, 합천과 의령으로 가는 국도 왼쪽 옆 언덕배기에 자리하고 있는 고려시대 석불이다. 도전리 마애석불은 지금까지 돌아본 지리산 주변 마애석불 가운데서는 보존상태가 가장 열악하고 불상의 부식과 훼손 정도가 가장 심하다. 다른 석불들은 대부분 깊은 산속의 단단한 화강암 암벽이나 큰 바위에 깊게 새겨졌거나, 사찰 경내에 있어 관리를 직접 받고 있어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그러나 이곳 마애불은 촌락 주변 농경지 한가운데 낮은 야산의 석질이 약한 사암층 벼랑 바위에 새겨져 있어 부식 방지를 위한 별도의 보호 장치가 필요함에도 진입로 공사만 그럴듯하게 해 놓았을 뿐, 거의 방치된 수준의 환경에 놓여 있다. 이곳 불상은 비가 오면 석벽 위의 표피지층에서 흙탕물이 흘려내려 평소에도 늘 황토를 뒤집어쓰고 있다. 맨 아래쪽 불단도 흘러내린 토사로 가려있거나 파묻혀 있다. 하단부의 불상을 제대로 보려면 접근로 난간 사이로 허리를 굽혀 고개를 들이밀고 흙을 긁어내어야 겨우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도 상층부 흙은 계속 흘러내리고 있고 일부 바위조차 깨져서 주변에 흩어져 있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이는 상태다.

도전리 마애불상군은 정령치 개령암지 마애불상군이나 경주 단석산 마애불상처럼 복수로 새겨진 불상군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와 희소성이 매우 큰 석불이다. 새겨진 불상의 수가 가장 많고 크기는 가장 작은 불상군이다. 확인된 숫자는 29개다. 20센티부터 시작해 큰 것이 60센티 정도의 음각 좌상으로 네 개의 층을 이루며 새겨져 있는 점도 특이하다. 이 불상에 대한 문화재적 가치 재평가도 평가지만, 우선 당장 보존을 위한 토목 보강공사나마 서둘렀으면 한다. 토사와 빗물을 막아주는 방, 배수 장치와 토사를 걷어내어 석불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주변 환경 정비 작업과 접근로의 높이를 낮추는 추가 작업 등이 현장 조사를 통해 시행되었으면 한다. 도전리 마애석불의 미소를 만나러 갈 때마다 느끼는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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