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 복음화율 2.2%로 전국에서 가장 낮아
진주시 복음화율 2.2%로 전국에서 가장 낮아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2.2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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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철수 진주기독교총연합회 회장 (진주 상문교회 담임목사)

교회 중 미자립 교회 70% 사모들 어렵게 살아
부활절 행사와 참빛문화축제 잘 치르는 게 임무
34살 때 사업실패로 하나님 만나 목사까지 됐다
그동안 잘 살았으니 하나님께 보답할 일 찾겠다

팽철수 진주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은 34살 때 사업실패로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는 별 어려움 없이 잘 살았다고 말하고 2년 남은 은퇴 후 하나님께 보답할 일을 찾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팽철수 진주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은 34살 때 사업실패로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는 별 어려움 없이 잘 살았다고 말하고 2년 남은 은퇴 후 하나님께 보답할 일을 찾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주는 전국에서 복음화 율이 가장 낮은 곳입니다.” 진주기독교총연합회 팽철수 회장(69, 진주 상문교회 담임목사)은 인터뷰가 시작하자 진주가 전국에서 기독교 복음화 율(인구에서 기독교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낮다는 현실을 얘기했다.

진주는 1905년 호주선교사 커렐(Dr. H. Currell)이 와서 진주시 옥봉동에 옥봉리 교회(현 진주교회)를 세운 것이 기독교 선교의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 지금부터 114년 전의 일이다. 진주의 교회는 대부분 이 진주교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진주는 재정적으로 튼튼한 미국 선교사들이 아닌 호주 선교사가 들어와 선교를 하다 보니 선교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여기에다가 진주는 우리나라 불교의 중심지이다. 1시간 거리에 해인사, 쌍계사, 화엄사 등 우리나라 불교에서 대표적인 큰 사찰들이 있다. 그래서 불교세가 강하다.

이런 지역에서 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을 맡았으니 팽 목사의 부담감은 더할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진주의 교회들 사정이 열악하다고 한다. 팽 회장은 진주 기독교의 큰 문제로 낮은 복음화 율과 함께 신도 수 40명 미만의 미 자립교회가 많다는 것을 들었다. 팽 회장은 진주 전체 교회의 70%가 미 자립교회라고 밝혔다. 이들 미 자립 교회에서는 재정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다 보니 목사나 사모들이 온갖 일들을 닥치는 대로 해서 생활비를 보충한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개척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목회자들을 보면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고 한다.

진주기독교계에서는 일 년에 크게 두 개의 행사가 열린다. 그 하나가 봄에 열리는 부활절 연합예배이고 나머지는 겨울에 열리는 크리스마스트리 참빛문화축제이다. 팽 회장은 지금까지 부활절 연합예배에 2천명 남짓한 사람들이 참석했으나 올해에는 3천명을 넘기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교회의 연합을 위해서는 부활절 연합예배만큼 좋은 기회도 없기 때문에 이를 성대히 개최하는 게 회장으로서 자신의 큰 임무라고 했다. 다음으로는 겨울에 열리는 참빛문화축제를 더 성장시키는 것이다. 참빛문화축제는 진주의 구도심인 차 없는 거리에서 열린다. 올해로 4회째인데 상인들의 호응이 크다고 했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데 아주 좋은 기회이다. 이 두 개의 행사를 잘 치르고 나면 연합회 회장으로서 자신의 임무가 끝난다고 했다.

팽 목사는 원래는 불교신자였으나 34살 때 사업의 실패를 당해 교회에 나가면서부터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됐다. 교회를 다니다가 목회에 대한 은사를 받아서 신학대학과 대학원을 마친 후 목사가 됐다. 마산에서 교회를 개척 했으나 신학교를 진주에서 열게 되면서 진주로 오게 됐다. 진주에서도 시내에서 조그만 사무실을 얻어 교회와 신학교를 함께 열었으나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교외인 지금의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로 오게 됐다. 지금은 1천여 평이 넘는 비교적 넓은 곳에서 상문교회와 경남신학교 경남신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자신도 교인수가 50명 남짓으로 미 자립 상태를 갓 벗어나 상태이지만 그래도 자신은 복 받은 사람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해병대 조교출신의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성격으로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고 했다. 34살에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는 세상살이나 신앙생활에서 특별한 어려움 없이 잘 살았으니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이제 은퇴를 2년 남겨두고 있다. 시골교회라 목회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어서 교회를 넘겨줄 사람을 보내달라는 게 요즘의 기도제목이라고 했다. 팽 목사는 이미 죽었을 사람을 하나님이 이렇게 행복하게 살게 했으니 은퇴하면 보답할 일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팽 목사는 답을 찾으면 미련 없이 마음을 비우고 그 일에 매진하고 싶다고 했다.

진주시기독교총연합회가 주최하는 크리스마스트리 참빛 문화축제는 12월의 한 달 동안 진주시 차 없는 거리에서 열려 교회와 일반인들의 만남의 장이 되고 있다.
진주시기독교총연합회가 주최하는 크리스마스트리 참빛 문화축제는 12월의 한 달 동안 진주시 차 없는 거리에서 열려 교회와 일반인들의 만남의 장이 되고 있다.

다음은 팽철수 진주기독교총연합회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진주기독교총연합회란 단체는 어떤 곳인가.

-경남 진주시에 소재한 교회들의 연합단체이다. 교파나 교단을 초월해 조직된 단체이다.

▲소속 교회가 몇 곳이나 되나.

-진주시에 소재한 212개 교회가 소속돼 있다. 장로교회가 80% 정도로 가장 많고 다음이 감리교, 성결교 순이다.

▲경남 진주시에 교회가 212개란 말인가.

-소속되지 않은 교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보아 진주시에는 이정도 숫자의 교회가 있다고 보면 된다.

▲진주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언제인가.

-1905년 호주선교사 커렐(Dr. H. Currell)이 와서 진주시 옥봉동에 옥봉리 교회(현 진주교회)를 세운 것이 처음이다. 지금부터 114년 전의 일이다. 진주의 교회는 대부분 이 진주교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면 된다.

▲그럼 현재 진주의 기독교인은 얼마나 되나.

-전체 시민 35만 명의 2.2% 정도이다. 약 8천 명 정도이다.

▲그것 밖에 안 되나. 생각보다 적다.

-진주가 우리나라에서 복음화 율이 가장 낮은 곳이다. 40분 거리에 있는 이웃 순천시만 하더라도 전체 인구의 35% 정도가 기독교 신자이다. 그에 비해 진주는 턱없이 낮다.

▲진주가 이렇게 기독교인이 낮은 이유가 무엇인가.

-진주가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이다. 또 불교 등 타 종교의 영향이 강하다. 진주주변으로 해인사, 쌍계사, 화엄사 등 큰 절이 많다. 이런 영향 등으로 진주가 전국에서 복음화 율이 가장 낮다.

▲그런 남 탓만 있나. 내 탓은 없나.

-오래전에 진주에 소재하는 교회들 간에 분열상이 있었다고 한다. 요즈음에는 그런 분열상이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그런 분열상의 영향이 남아서 아직도 기독교계에서 서로 연합활동을 하는 데는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 교회의 분열된 모습들이 시민들에게 좋지 않은 모습으로 비쳤을 수도 있다.

▲진주의 기독교인이 8천 명 정도면 서울의 중견교회 규모도 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신도수에 212개 교회가 있으면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그렇다. 212개 교회 가운데 70% 정도가 신도 수 40명 미만인 미 자립 교회이다.

▲미 자립 교회란 재정적으로 안정이 안됐다는 뜻인가.

-그렇다. 진주 교회의 70% 정도가 재정적으로 안정이 안 돼 어렵게 운영하고 있다.

▲그럼 이런 교회들은 어떻게 유지되나.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다른 일을 해서 재정적으로 보충을 한다. 특히 사모들이 요양보호사를 하거나 알바 등을 하고 있다. 사모들이 안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생활비를 보태고 있다. 정말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이렇게 재정적으로 안정이 안 되면 여러 교회가 통합하면 안 되나.

-그게 사회의 기업운영이면 그렇게 되는데 교회는 어렵다.

▲왜 그런가.

-각 목회자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소명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교회끼리 통합해서 운영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 해결방안이 없나.

-현재로서는 해결방안이 없다.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그렇게 힘들게 지내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작은 교회들이 여러 개 있는 게 전체 교회차원에서 보면 득이 되는 면도 있다.

▲그건 무슨 말인가.

-작은 풀뿌리 교회들이 새 신자를 개척하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된다. 이 분들의 열정 등으로 새 신자가 개척되는 비율이 훨씬 크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해서 새 신자가 어느 정도 신앙이 자라면 큰 교회로 가버린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런 걸 막을 방법은 없나.

-그건 막아서도 안 되고 막을 수도 없다. 작은 교회는 신자 한명이 정말 소중한데 힘들여 키운 신자가 떠나고 나면 목회자들은 크게 상처를 받는다.

▲연합회장은 언제 됐나.

-작년 말에 됐다.

▲임기는 언제까지인가.

-1년이다.

▲왜 이렇게 짧은가.

-연합회의 일이 너무 많다. 그래서 오래 봉사하지는 못한다. 다들 자신들 교회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연합회 일에 매여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1년씩 돌아가면서 맡자고 돼 있는 거다.

▲진주기독교총연합회에서 하는 중요한 일은 어떤 것들이 있나.

-봄에는 부활절 연합예배가 가장 큰일이다. 여기에 많은 신도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게 연합회 회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지금까지 2천 명 정도가 참여해서 예배를 보았는데 올해는 3천500명을 참석시키는 것이 제 목표다. 겨울에는 진주크리스마스트리 참빛문화축제가 열린다.

▲그건 무슨 축제인가.

-진주의 차 없는 거리에서 매년 1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한 달간 빛 축제를 여는 것이다. 부산에서 하고 있는 것을 벤치마킹해 2016년부터 개최해 지난해 3회를 마쳤다. 거리 전체에서 빛 축제를 하기 때문에 거리의 상인들이 아주 좋아한다. 매년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데 올해에는 좀 더 성대하게 열려고 준비하고 있다.

▲정부에서 지원은 해 주나.

-1억 원 정도를 지원해 주고 있다. 축제 예산이 3억 원 정도 되면 좋겠는데 아직은 그 정도 수준은 안 되고 있다. 축제기간 동안 진주의 교회들이 번갈아 나와서 거리찬양 등을 해주고 있어 교회의 연합과 선교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 외 진주기독교의 현안은 어떤 것들이 있나.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우리나라 전체적인 문제이겠지만 교회도 고령화로 인한 문제가 시한폭탄이다. 앞으로 이 문제가 어떻게 진행될지 걱정이다. 은퇴 목회자들의 안전망 확보도 문제다. 은퇴하는 목회자들이 점점 늘어나는데 이들에 대해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전체교회차원에서 고민하고 해결방안들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어서 참으로 안타깝다. 마음만 바쁠 뿐이다.

▲개인적인 얘기를 해 보자. 처음부터 기독교인이었나.

-아니다. 34살 때 교회에 처음 나갔다.

▲그전엔 뭘 했나.

-그 전엔 절에 다녔다. 해병대 조교로 군대를 제대한 다음, 창원에서 사업을 했다. 그런데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그럼 34살 때 교회에 나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34살 때 창원에서 사업하던 게 망해 야반도주 비슷하게 부산에 왔다. 그때까지 절에 다녔지만 부처님이 크게 도와주지도 않는 것 같으니 이번에는 교회에 나가보자 그런 생각을 했다. 순전히 세속적인 생각으로 교회를 나간 거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부산충무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 세속적인 생각으로 교회를 나갔는데 어떻게 목사가 됐나.

-그런데 교회에 나가자 사업이 잘되기 시작했다. 번창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하는 일마다 잘되는 거다. 그렇게 되다 보니 신앙심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신학교를 가야된다는 은사를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만한 생각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언젠가는 부른다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됐다.

▲그래서 신학교를 갔나.

-부산에서 신학대학을 마치고 서울에서 대학원을 마친 다음 마산 중앙동에서 교회를 시작했다.

▲교회이름이 무엇이었나.

-제일극동교회란 이름으로 시작했다. 극동에서 제일가는 교회가 될 거라는 뜻에서 그런 이름을 지었다.

▲이름이 참 세속적이고 오만하다.

-그때까지도 제가 좀 그랬다.

▲그런데 진주는 어떻게 해서 오게 됐나.

-당시 마산시청에 다니던 공무원 형님이 계셨는데 이분이 늘 신학교를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도와주자는 의미에서 함께 시작을 했다. 다 만들어 놓고 학생들도 모집을 해 두었다. 그런데 개학 직전에 이분이 못하겠다고 하면서 저보고 하라고 했다. 어떻게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그래서 진주에 있는 목사님께 도움을 청했더니 진주 호탄동에 있는 복지관 2층을 빌려주었다. 그래서 제가 진주에서 신학교를 시작하게 됐다. 도와주자고 한 일이 내일이 돼 버렸다.

▲그래서 진주로 오게 된 건가.

-그렇다. 한 학기는 신학교는 진주에서 교회는 마산에서 했다. 그런데 도저히 힘들어서 못하겠더라. 그래서 교회를 진주로 옮겼다. 진주시 상평동에서 40평을 빌려서 교회와 신학교를 시작했다.

▲그게 지금의 상문교회와 경남신학, 신학원이 된 것인가.

-그렇다. 조금씩 신도가 늘어나고 학생 수도 늘어나 장소를 옮길 필요성이 생겼다. 그래서 여기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로 오게 됐다.

▲이게 적은 평수가 아닌데.

-1000평 남짓 된다. 그 당시로도 땅값이 평당 10만원이 넘어서 땅값과 건물 등을 합쳐 꽤 많은 돈이 들어갔다.

▲상문교회라고 교회이름을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래도 지역민들과 거리를 좁히려면 지역명이 들어가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 지역명인 상문교회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교회신도는 얼마나 되나.

-시골이어서 약 50명 정도 된다.

▲신학교 졸업생은 얼마나 되나.

-지금까지 약 200명 정도 된다.

▲이제 나이가 69세인데 은퇴할 것인가.

-71세가 은퇴나이이다. 저도 은퇴할 것이다.

▲그럼 이곳은 누가 맡아서 하나.

-아들이 목사이다. 찬양목사인데 여기 일에는 관심이 없다. 도시타입이다. 시골에 와서 봉사할 목사님들도 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 지금 기도중이다. 좋은 사람이 와서 이곳을 이끌어 가 달라는 게 요즈음 제 주요기도 제목이다.

▲은퇴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다. 제가 해병대 조교출신이다. 제 나이또래에 해병대 조교출신이라면 그 태도가 어떨지 짐작이 가지 않나. 세상 무서울 것 없고 술고래에다가 담배골초였다. 그렇게 세상 무서운 게 없으니 사업을 해도 늘 실패만 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거다. 하나님 만나서 목사가 됐고 신학교 운영도 했다. 신앙 부분 뿐 아니라 세속적으로도 그동안 건강하게 큰 실패 없이 잘 살았다. 그래서 하나님께 보답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늘 고민하고 기도하고 있다. 아직은 뚜렷이 잡히는 것은 없지만 결심이 서면 아무런 미련 없이 다 버리고 그 길을 갈까 생각하고 있다.

황인태 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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