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사랑] 목욕탕 그 여인
[오! 사랑] 목욕탕 그 여인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3.0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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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씻기에도 몸이 불편한
사십대 중후반의 뇌졸중 환자
임산부 등 도움필요한 사람찾아
두리번거리는 모습에
나도 그녀 흉내를 내본다
김지우 교사
김지우 교사

10여 년째 이용하는 목욕탕에서 어느 날부터인가 내 시선을 끄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보통 사람들보다 피부가 검었다. 마치 온몸을 선탠한 여인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음에는 특별히 검은 피부 때문에 그녀를 주목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를 훔쳐(?)보게 되는 이유가 늘어났다.

사십 대 중후반의 나이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과는 달리 그녀는 왼쪽 수족을 제대로 못 쓰는 뇌졸중 환자였다. 그녀는 목욕탕에서 보내는 시간이 유난히 길었다. 언제나 그녀는 내가 들어갈 때도 있었고, 딸아이와 내가 세 시간여를 목욕탕에서 보내고 나올 때까지 목욕하고 있었다. 그녀가 왜 그렇게 목욕을 오래 하는지 이유를 아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도 나처럼 목욕탕 안을 자주 두리번거리는 편이었다.

가진 자도 못 가진 자도 잘 구분되지 않는 몸뚱어리뿐인 목욕탕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취미이자 사치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일주일의 피로를 온탕과 냉탕, 사우나를 오가며 풀고, 지친 몸을 때밀이 아줌마에게 맡기고 마사지를 받는 사치를 누리는 곳, 밀폐된 사우나에서 전업주부들의 세상사는 이야기를 듣는 게 취미인 내게 목욕탕은 더할 수 없는 행복한 공간이다. 그래서 목욕탕에서 보내는 시간이 남들보다 좀 더 길고 사람들의 몸에서 느껴지는 삶의 이야기를 읽느라 눈치 못 채게 두리번거린다.

그녀가 두리번거리는 이유는 나와는 좀 달랐다. 그녀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녀가 찾는 사람은 주로 노인이나 임신부, 장애인. 혼자 온 어린아이였다. 혼자서 씻기에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으면 그 사람을 오랜 시간 지켜본다. 그러다가 자신이 도와야 될 적절한 시간이 오면 슬그머니 다가가서 마치 잘 아는 사람인 듯 편안한 말을 건네면서 자연스럽게 등을 밀어주거나 머리를 감겨 주고는 또다시 사람 찾는 일을 계속한다.

지난 일요일에는 나도 그녀 흉내를 내 보려고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보았다. 마침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딸애 셋을 거느리고 불룩한 배로 목욕탕에 들어서는 임신부를 눈여겨보게 됐다. 그녀처럼 적절한 시간에 다가가서 자연스럽게 등을 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절한 시간'을 찾기 위해서 내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하여 임신부를 살폈다. 그런데 아뿔싸! 그녀와 내가 동시에 그 임신부에게 시선을 주고 있는 게 아닌가!

그녀가 임신부에게 시선을 주고 있다는 걸 안 다음부터 내 감각기관은 그녀와 임신부, 두 사람을 살펴야 됐다. 한사람에게 집중되던 감각기관이 두 사람에게로 넓혀지니 힘이 들었다. 딸애 씻기랴 두 사람 살피랴, 누가 보면 꼭 정서 불안증 환자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역시 나보다 고단수였다. '적절한 시간'을 귀신같이 알아챈 그녀가 임신부에게 먼저 다가가는 순간, 부끄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해서 한마디 중얼거렸다. “내가 도와주려고 했는데….”

목욕탕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도움을 주는 몸이 불편한 그녀. 전생의 업장을 소멸하기 위해 선업을 닦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녀의 일을 얘기하고 싶어졌다. 이번 주 일요일에도 목욕탕에서 그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얘기를 허락도 없이 여러 사람에게 공개한 걸 알릴까? 아직 말 한마디 나눠본 적 없는 그녀에게 나도 자연스럽게 다가가서 등을 밀어주며 친해진 다음에 알릴지 말지를 결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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