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사랑] 요양병원 간호사의 이야기
[오! 사랑] 요양병원 간호사의 이야기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3.13 14:5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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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두세 번
어르신들의 마지막을 지킨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지만
여전히 힘이 든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일이 남아있음에
늘 감사하다
임귀연경난과기대·진주보건대외래교수
임귀연 경남과기대·진주보건대 외래교수

요양병원 출근 첫날 낯선 설레임으로 출근한 나는 조심스레 할머니들이 계신 병실로 들어섰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식사를 보조하는 일이 요양병원 간호사의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새벽에 또 누가 별이 되셨나보다. 하얀 시트가 머리끝까지 덮여있고, 나머지 다섯 분의 할머니가 그 모습을 지켜보며 꾸역꾸역 밥 한 그릇을 다 드시고 있었다.

밥을 드시는 할머니들의 표정은 슬픔이나 놀람의 기색도 없이 무덤덤해 보였다. 밥을 떠먹이며 나는 자꾸 눈물이 났다. 희미해진 눈에 숟가락으로 퍼올려진 건 쌀밥만큼 하얀 슬픔이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 힘들었던 출근 첫 날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존엄한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첫 날 이었다.

만성질환이나 치매 등을 앓고 있으며 더 이상 가족들이 돌보기 힘이 들 때 찾는 곳이 요양병원이다. 생존을 위한 모든 치료를 다 마치고도 더 이상 치유될 가망이 없을 때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종합병원보다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많고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상황이 여러 날 계속되기도 한다.

비가 내리는 날 요양병원의 밤은 알 수 없는 술렁임으로 가득 차 있다. 치매를 앓는 할머니 한 분이 이불을 안고 집에 가겠다고 한 시간 째 울고 계신다. 하지만 그들은 돌아갈 집이 없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헝클어진 기억으로 살아간다는 건 참으로 슬픈 일이다. 달래고 토닥여서 방으로 모시고 나면 다른 병실에서 고함소리가 들린다. 잠이 든 옆 할머니를 깨워 자신의 신발을 어디다 숨겼냐고 머리채를 휘어잡는다. 때론 음료수 빈 통 하나 때문에 욕설이 오가기도 하고 밖으로 나가겠다고 떼를 쓰며 의료진들을 마구 때리기도 한다.

달래거나 다독여도 소용이 없고 진정이 안 될 때는 의사의 처방을 받아 약물을 투약하기도 한다. 옆에선 기저귀에 손을 넣어 대변을 꺼내 몸과 시트에 그림 그리듯 바르고 있다. 씻기고 깨끗한 옷과 침구로 갈아 다시 재우고 나면 얼추 새벽이 가까워진다. 치매는 여러 가지 원인 질환으로 인해 뇌가 손상을 입어 이차적으로 생기는 증상들의 묶음이다.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이 없다면 돌봄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3년 전 엄마는 내가 근무하는 요양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아니 어쩌면 맞닥뜨리게 될 죽음의 순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게 맞겠다. 그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 우리 4형제는 번갈아가며 엄마 곁을 지켰다. 엄마의 마음 깊은 곳의 슬픔, 회상, 유년의 기억들을 떠올려내며 응어리져 있던 눈물을 닦아드렸고 두려움을 조금씩 덜어냈다. 수없이 많은 죽음을 보았어도 담담한 척 했을 뿐 자꾸 겁이 났다. 엄마의 유언을 받들어 홀로 잠들어 계시던 아버지와 나란히 양지바른 곳에 합장해 드렸다. 봄이면 공원묘지 가는 길에 살아계실 때도 좋아하시던 벚꽃이며, 진달래며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고 햇빛과 바람이 오래도록 머물다 간다.

한 달에 두세 번,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킨다. 환자들은 의식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론 흐릿해진 의식으로 누군가를 간절히 부르기도 한다. 아마도 놓을 수 없는, 차마 맘에 걸려 두고 떠나기 힘든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리라. 마지막 임종의 순간을 가족보다 더 많이 지키는 게 내 일이다. 죽음의 문턱에 선 환자들의 눈빛은 이미 영혼이 떠나가고 있다. 아무 말이 없어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펜 라이트(진료용 조명등)로 눈을 들여다보면 남은 시간이 얼마 쯤 인지 알게 된다. 죽음 앞에서는 겸손해지게 된다. 숨소리조차 조심스럽고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진다. 임종의 순간,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마음을 경건하게 하고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안히 쉬시기를 기도드린다. 이별하는 건 언제나 힘이 든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서도 여전히 어렵다.

누군가에게 기쁨으로 태어났을 사람들이었지만 마지막 길에 따뜻한 인사 한번 제대로 못 받고 외롭게 떠나는 인생들을 위해 내가 할 일이 남아있으니 참 감사하다. 죽음은 그렇게 삶의 길 위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에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국가법령센터, 2018), 환자 스스로 사전에 치료방법이나 의사결정을 해 놓음으로써 닥쳐올 죽음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로 인해 맞닥뜨리는 죽음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권리가 당연히 요구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쉬는 날 난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를 보낼 때가 더러 있다. 나를 들여다보며 평온해지는 시간이다. 해가 지는 쪽으로 걸어가고 있어서일까 나이가 들수록 조바심을 내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 삶의 마지막 날까지 누군가를 위해 몸과 마음을 기울이고 정성을 다하는 일이 남아있는 많은 날의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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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limit 2019-03-14 11:53:48
해가 지는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우리..
문득문득 그 시간의 퇴적을 실감하면 먹먹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늘 해는 뜨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lonten 2019-03-14 11:08:46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떠올라서 먹먹하네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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