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국10대구형왕1500년역사속으로] 구형왕 흔적 필봉산 깃대봉 광고산에 산재

깃대봉은 구형왕의 군사들이 깃을 꽂아 봉수대 역할을 하였던 곳 산을 넘어가면서 옥새를 잃어버렸다 하여 필봉산 자락에 ‘옥새갱변’ 지명 유래

2019-03-29     경남미디어

여덟번째 이야기 ‘구형왕의 전설’ <3>

산청군

굽이굽이 흐르는 지리산 산맥의 수려한 능선을 타고 이어지는 구형왕의 전설들은 산청군 삼장면에서 금서면, 생초면, 산청읍으로 흐른다. 4개 지역의 12여 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이들 모두는 현재까지 구형왕의 전설이 깃든 마을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전설들은 그 마을의 역사로서 주민들에 의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1000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도 왕의 전설들은 잊혀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마을지명을 만들고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으나, 필자가 찾았을 때는 대부분 70-80대 노령의 연령층에서 전해들을 수 있어 안타까움이 전해졌다.

구형왕의 흔적은 왕등재로부터 고동재로 연결이 되고, 그 능선을 따라 필봉산과 깃대봉, 광고산으로 이어진다.

깃대봉은 구형왕의 군사들이 깃을 꽂아 봉수대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봉수제도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가락국의 김수로왕이 허왕후를 맞이하기 위하여 신하 유천간(留天干)으로 하여금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배를 횃불로서 안내를 하였다는 기록에서 봉수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깃대봉은 구형왕 군사들의 전략지로 필봉산과 왕산 사이에 위치하고 해발 940m로 봉우리 부분에 바위가 우뚝 솟아있다. 현재에도 정상에서 서면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는 이곳에 가락국의 기를 꽂았다면 산 아래 어느 곳에서도 그 신호를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시야가 확 트인 곳이다.

깃대봉 아래로 광고산과 옥쇄갱변. 허기재 등의 유적지들은 왕산을 중심으로 빙 둘러 형성되어 있는데, 구형왕은 이곳 일대에서 많은 흔적을 남긴다. 산의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구형왕의 피난길은 험난하고도 고통스러웠음을 짐작할 수 있는 많은 일화를 남기며 왕의 경로를 따라 전해져오고 있는데, 그중 특이한 유적지로 옥쇄갱변과 광고산, 허기재 등을 들 수 있다.

필봉산 자락에 소재하고 있는 금서면 평촌리 하양마을 서북쪽 뒷산 일대를 지칭하는 지명으로 가락국 구형왕이 이 산을 넘어가면서 옥새를 잃어버렸다 하여 ‘옥새갱변’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능선을 따라 계속 이어지는 왕의 전설은 구형왕이 지나다가 ‘허기가 난 곳’이라 하여 허기재라 불리어지고, 구형왕이 피난을 가면서 쉬어갔다고 하여 왕의 골짜기, 왕디골이 또는 왕디기, 왕덕골이라 불리어 지는 유적지들이 평촌마을 산등성이에 분포되어 있다.

또한 왕산 아래 금서면 특리 동서쪽으로 형성되어 있는 광고산 또한 전해져 내려오는 지명과 가락국 전설에서 구형왕과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글쓴이 김태훈 가락국양왕덕양전 참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