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경박사의거지10계명] 콩알 반쪼가리도도 같이 나눠 먹어야

앓는 놈에게 약을 써주고 앞 못보는 사람에겐 지팡이가 되라

2019-04-05     경남미디어

<4> 욕심 내지 말라

1975년

여섯 번째.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자.

사고무친의 우리는 모두가 가족이며 형제다. 콩알 반쪼가리가 있어도 같이 나눠 먹어야 하며 생사고락을 같이해야 한다. 앓는 놈에게 약을 써주고 앞 못보는 사람에겐 지팡이가 되어 주어야 한다. 목숨이 단명하여 먼저 황천을 가는 놈이 있거나, 지방 방방곡곡을 해매다가 낯 모르는 거지가 객사한 놈이 있으면 발목에 새끼줄을 걸어서 끌더라도 거지 손으로 묻어 주어라. 우리는 가진 것은 없어도 내 것과 네 것이 따로 없는 형제들이다. 거지 동지 여러분! 알것나? 앙!?

일곱 번째. 장날을 철저히 외어 두어라.

일 일은 어느 면의 장이 서고, 이 일은 어느 면의 장인 것을 훤히 알아야 된다. 그리고 군내 학교의 대운동회를 비롯하여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에 정보가 빨라야 한다. 단오, 백중은 물론, 어느 부잣집의 대감굿 날도 빼놓아서는 안된다.

여덟 번째. 눈치가 빨라야 한다.

우리 직업은 눈치가 삶의 수단이다. 아침 밥 빌기가 끝나면 낮 한가한 시간에 부업으로 동냥을 나가야 되는 데 눈치가 빠르고 관상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어떤 고약한 인간은 동냥은 커녕 쪽박을 깨는 수도 있으니 그럴 때는 사업 방향을 돌려서 행인의 거동을 살펴라. 나들이옷을 입고 가는 부인들이 국수 뭉치를 들고 가면 뒤를 따르라. 그것은 잔치집이나 환갑집이 있다는 징조다. 남자들이 의관을 갖추고 길을 가면 필시 그것은 인근에 장사집이 있다는 징조다. 그날은 볼 것 없이 춘향의 용꿈 꾼 날이다. 그날이 이른바 우리 거지들의 생일날이다. 거기는 음식과 술이 지천이니 젖은 음식은 먹고 마른 음식은 싸가지고 와서 우리들과 나눠 먹는 것이 관례이다. 술은 깡통에 찰찰 넘치도록 담아 와서 오랜만에 신선놀음 육자배기를 뽑는 날이다.

아참 중요한 것을 까먹을 뻔했다. 장삿날은 보통 3일장, 우리의 운수가 대통하면 5일장을 치르는 대갓집도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땡중의 땡인 시월단풍 장땡이다. 이때는 동료 거지에게 급히 파발을 놓아 알려서 같이 즐겨야 한다. 그때의 생일 주인공은 처음 발견한 동지다. 그리고 생일 주인공은 꼭 장삿날을 기억했다가 다음 해 소상과 대상에도 알려서 생일잔치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각 지방마다 장날을 알아둘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고. 거지 동지 여러분! 알갔나? 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