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산소를 다녀오면서

2022-07-06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오늘은 할아버지 할머니 기일(忌日)이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딱 3년 후 할머니께서 같은 날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기일이 같다. 이날이 되면 어머니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 “조부모님들이 너희 편하게 해주려고 같은 날에 돌아가셨다.” 말하자면 기일제사 두 번 안 모셔도 된다는 말씀. 제사상 차리는 수고와 또 제사 모시기 위해 후손들이 모여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게 해주셨다는 말씀이다. 이 어머니 말씀도 이젠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코로나로 인하여 우리네 제사 풍습도 변했을뿐더러 이제 동생들도 나이가 들어 마음대로 오고 갈 수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 제사를 모시기 위해 내 집에 모이는 것도 어렵다. 하여 어머니 기일에 아버지, 조부모님 모두 같이 모신다. 그러다 보니 간편해지기는 했지만 장남인 나로서는 아쉬운 바가 없지는 않다. 이때를 기회로 삼아 조상 한 번 기리고 형제, 조카들 만나 덕담 나누고 하는데 이제 그것도 뜻대로 안 된다. 하여 나 혼자 산소에 다녀오는 것으로 만족한다. 거기서 조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고...

오늘도 기일을 맞아 간단한 음식 싸들고 낫 한 자루 챙겨 산소에 다녀왔다. 음식을 싸들고 가는 것은 내 혼자서라도 간단하게나마 제사를 모시기 위해서다. 조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셈이다. 그런데 음식뿐만 아니라 낫 한 자루를 반드시 들고 가야 한다. 벌초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길에서 묘소까지의 길을 뚫어야 하기 때문이다. 길 뚫고 음식 차리고 절 두 번 하고 나서는 또 할 일이 남아 있다. 올해 자라난 대(竹)를 베어내는 일이다. 아직은 죽순 상태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낫으로 간단하게 베어낼 수 있다. 그냥 대충 낫으로 툭 치기만 해도 대가 넘어간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대가 단단해져 버려 대가 서 있는 곳까지 다시 길을 뚫고 접근해서 톰으로 잘라내야 한다. 이럴 경우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만약에 게으름을 피우다 제때에 대를 쳐내지 않고 그대로 두어버리면 내년에는 바로 대밭이 되어 버린다. 이런 상황이 되면 불도저 등 기계 없이는 파낼 수가 없다. 그런데 이 대 제거작업은 우리 밭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밭 위로 붙어 있는 타인의 밭에 솟아난 대도 잘라내야 한다. 이 밭 주인인 제 씨 아주머니가 돌아가시고는 자식들이 관리를 하지 않아 폐전(廢田)으로 방치되어 있는데 그곳에서도 대가 자라나기 때문이다. 이 대 역시 잘라내지 않으면 우리 밭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조부모 묘소까지 뻗어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렇게 우리 밭과 이웃 밭의 대들을 베어내고 나면 땀으로 몸이 흠뻑 젖는다. 땀을 식히기 위해 묘소 주변에 서 있는 뽕나무 그늘에 앉는다. 앞이 탁 틔어 전망이 좋다. 나는 풍수지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입지가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묘소 뒤편은 동네 야산이 감싸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남강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방어산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가운데는 비닐하우스로 뒤덮힌 넓은 들판이 자리 잡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훤히 트인 들판을 내려다보며 즐기다가도 묘소를 둘러싸고 있는 밭을 둘러보면 짜증이 난다. 농사를 짓지 않아 완전 엉망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풀은 내 키만큼 자라버렸고 찔레, 칡넝쿨, 산딸기나무 등이 서로 뒤엉켜 있어 이제는 경작지로서의 본래모습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하신 한 말씀이 생각난다. 어느 해, 아마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해인 것 같다. 할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내가 이 밭에서 농작물을 거두어들이고 있을 때였다.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어머니께 말씀하셨다. “내가 죽으면 우리가 지금 앉아 쉬고 있는 이 자리에 묻혔으면 좋겠는데 그게 어렵겠재? 아비도 없이 너 혼자서 자식들 키워내려면 이 밭 한 평이라도 아껴서 농사지어야 할 테니 말이다.” 당신이 그곳에 묻힐 경우 땅 한 평이라도 농사를 못 짓게 되는 것을 염려하신 것이다. 그만큼 당신의 바람보다는 자식들의 장래를 걱정하신 것이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걱정하시던 상황이 엉뚱한 방향으로 현실화되어 버렸다.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저세상으로 가신 후 많은 세월이 흘렀고... 우리 자식들은 고향을 떠나 떠돌면서 이 밭 관리를 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이젠 완전히 폐전(廢田)으로 변해버렸다. 아껴 가꾸었더라면 훌륭한 농지로서 그 역할을 다했을 텐데도 말이다. 산소를 떠나오면서 떠오르는 한 생각.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일 터... 하루하루 자신을 갈고닦지 않으면 우리도 언젠가는 저 폐전처럼 되어 버릴 터...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