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국10대구형왕1500년역사속으로]가락국 마지막 왕의 릉 국내 유일 석총대릉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왕산 자락에 위치 총 7단 높이 7.15m 정상 타원형 피라미드 200여년 전 '왕산사기'를 통해 왕릉 확인 종친회 지극정성 관리 불구 공식복원 절실 한국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적 가치

2018-11-16     경남미디어

첫 번째 이야기 ‘구형왕릉’

산청군

 

지리산 산맥 동부능선이 백두대간을 따라 오르다 끝을 맺는 지점에 경상남도 산청군 왕산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 왕산은 아득한 고대 가락국(금관가야) 구형왕과 군사들의 비장함이 서린 역사의 산이다. 서기 560년경 가야의 역사가 사라질 무렵 연맹체를 형성해 가야 부활을 꿈꾸었던 가락국 구형왕의 고적지와 왕의 혼이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왕산 기슭 석총대릉에 잠들어있다. 영토분쟁이 치열했던 고대 사국 격변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위치에서 찬란했던 선진 문화를 일구었던 가락국의 ‘구형왕’ 그 마지막 역사를 더듬어 본다. -편집자 주-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는 국내 유일의 석총대릉인 구형왕릉(국가사적 제 214호)이 있다. 이 능은 가락국 제 10대 임금인 구형왕의 능으로, 왕의 존호는 양(讓)이며, 왕비 계화왕후와 세 아들 세종(世宗), 무력(武力), 무득(武得)을 두었으며, 흥무대왕 김유신(興武大王 金庾信)장군의 증조부이다. 구형왕은 서기 521년 가락국의 왕이 되어 532년 신라 법흥왕 19년에 나라를 양위하기까지 11년 동안 왕으로 재위하였다.

신라의 침입에 “국토로 말미암아 백성을 상하게 함은 차마 볼 수 없다”하며 양민지도의 이념으로 나라를 양위하고 지품천 방장산 시조대왕의 태왕궁지인 수정궁에 은거하여 수년 후에 승하하니 석릉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양왕(구형왕)의 석릉은 일반무덤과는 달리 경사진 언덕의 중간에 총 7단의 높이 7.15m로 이뤄져 있으며, 비탈진 경사를 그대로 이용하여 돌을 쌓아 올려 정상부분은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새들도 왕릉 위로 날지 않고, 짐승들도 드나들지 않으며, 칡넝쿨과 낙엽도 떨어지지 않는 영험함이 전해지는 왕릉은 천수백년 동안 가락국 구형왕의 혼을 담고 있다.

김태훈 가락국양왕덕양전 참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