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국10대구형왕1500년역사속으로] 후기 가야 서부경남 고타국·걸찬국 존재

독창적인 문화를 바탕으로 세력 형성한 듯 방대한 가야시대 고분과 구형왕릉이 소재한 생초면 금서면 일대로 추정하는 설이 유력

2019-05-24     경남미디어

열번째 이야기 ‘산청의 伽倻’ <1>

산청군

산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기록은 기원전 1만~2만 년 전의 후기 구석기 시대인 것으로 나타나는데, 선사 이전(기원전후 3세기말)에 속하는 유적들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산청의 옥산리 유적, 생초의 평촌리 유적, 단성의 소남리 유적 등을 비롯하여 60여 군데 분포되어있는 선사 유적지들로 미루어 보아 산청은 옛적부터 인간들이 삶을 유지하기에 아주 적당한 환경이었던 같다.

산청은 중국사서에 변진 12국 중 고순시국이라는 부족국가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가야시대에는 고타(거래) 걸찬국으로 비정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고대 가야 역사는 그 기록 자체가 아주 희박하고 문헌상 자료에도 산발적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에 가야사 정립은 매우 험난하고 힘든 작업이며, 따라서 산청의 가야시대 역사정립 역시 어려운 난관에 부딪혀 있다.

가야의 강역은 초기에는 김해를 중심으로 낙동강과 가야산, 지리산을 경계로 경상남북도 일대로 나타나지만, 4세기경에는 낙동강 상류인 상주와 선산 일대, 동쪽은 대구, 밀양, 창녕, 양산 부산, 김해 일대를 경계선으로 서쪽은 소백산 줄기와 섬진강을 경계선으로 매우 넓은 지역을 확보하여 강성함을 보여준다.

특히 5세기경 후기 가야 즉, 대가야가 고령으로 옮겨 간 후에는 거창, 함양, 산청, 의령, 진양, 하동, 사천, 고성과 전라북도 남원, 장수, 부안 등으로 그 세력이 확장된다. 이 시기 산청의 가야 부족국가들 역시 각각의 독창적인 문화를 바탕으로 그 세력을 형성하는데, 그 증거들이 생초면과 금서면, 신안면 등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5~6세기에 서부경남 일대 가야국들은 고타국, 걸찬국, 임례국 등의 지명들이 있고 고타국(진주~거창)이 서부경남을 대표하는 나라로 보는 설도 있다.

특히 5424과 544년 안라(함안)가야에서 개최한 가야부흥회의에 참석한 기록이 있는 고타국은 어느 지역의 부족국가였을까 하는 의문을 제시하며 그곳이 방대한 가야시대 고분과 구형왕릉이 소재한 생초면 일대로 추정하는 역사가도 있다.

또한 걸찬국이 산청일 것이라는 비정설도 있는데, 거대한 지리산의 ‘크다’라는 언어에서 ‘클’ 또는 ‘컬’이 발음상 유사한 점으로 미루어 걸찬국으로 비정하는 이도 있으며, 대가야 멸망 시까지 존재했었던 임나 10국 중 안라가야에서의 가야부흥회의에 참석치 않은 임례국과 걸찬국 중 현재 미상으로 남아있는 걸찬국을 일부 학자들은 진주 부근의 부족국가로 비정하고 있는 점을 미루어 가장 강력한 정치제제를 갖춘 산청의 가야 부족국가는 구형왕릉이 소재하고 있는 금서면과 생초면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글쓴이 김태훈 가락국양왕덕양전 참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