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웅 교수의 향토인문학 이야기] 1643년에 제작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보물로 지정

■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청헌(淸憲) 법현(法玄) 원택(元澤) 등 조각승들이 참여 세 불상의 기본적인 상호와 신체 비례 등 조형성 우수 조각승 청헌 불상 양식 흐름 알 수 있는 중요한 불상 ■ 무환자(無患子)나무 응석사 뒤쪽에 위치 경상남도기념물 제96호로 지정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 식재설…귀신 퇴치·득남 전설

2019-10-04     경남미디어

<45> 진주지역 사찰(寺刹) <2> 응석사(凝石寺) ②

응석사

진주 응석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晉州 凝石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은 보물 제1687호로, 대웅전(경남도 유형문화재 141호) 석가여래를 주불로 좌우에 약사여래(藥師如來)와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가 봉안되어 있다. 삼세불상의 머리 부분은 몸에 비해 큰 편이며, 방형의 얼굴에 육계(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상투처럼 우뚝 솟은 부분)를 구별하지 않고 낮고 둥근 머리 모양으로 표현하고 있다.

불상 조성기에는 응석사가 화재로 폐허가 된 후 경천(敬天) 극수(克修) 일휘(日輝) 등의 유명 고승들이 발원하여 법당 승당 요사 등을 짓고 1643년(숭정 14년)에 삼존을 모셨다고 한다. 불상 조성에는 청헌(淸憲)과 법현(法玄) 원택(元澤) 등의 조각승이 참여했으며, 삼세불상 중 석가여래는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보다 약간 크게 제작하여 삼불의 주불로서 존재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불상의 얼굴은 지그시 뜬 두 눈에 콧등이 반듯한 코, 끝이 살짝 올라간 입술 등이 조화를 이루어 단정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어깨는 넓은 편이나 신체의 흐름이 팔로 좁게 연결되면서 상체가 왜소하게 보이며, 상체에 비해 앉은 자세는 무릎이 높고 넓어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게 보인다. 이처럼 세 불상은 기본적으로 상호와 신체 비례 등이 같으며 존사에 따라 수인과 옷주름에 세부적인 차이가 난다. 석가여래는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려뜨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결하고 있으며, 착의법은 왼쪽 어깨를 덮은 변형편단우견(變形偏袒右肩)에 드러낸 가슴 아래를 가로지르는 내의를 주름지게 표현했다. 사선과 직선으로 떨어지는 옷주름은 간략하면서도 두께감 없이 편평하며, 옷자락의 끝단은 형식적인 곡선으로 마무리했다.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는 한쪽 손을 가슴 부분까지 올리고 다른 손은 무릎 위에 오려 엄지와 중지를 둥글게 맞대었으며, 손의 위치는 서로 반대이다. 착의법은 이중의 대의를 걸쳐 입고 가슴 아래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내의는 석가여래와 다르게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불상 조성을 주도한 청헌은 17세기 전반에 활동한 화승으로, 1626년 충북 보은 법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塑造毘盧遮那三佛坐像 보물 제1360호), 1636년 전남 구례 화엄사 대웅전 삼신불좌상(보물 제1548호), 1639년 경남 하동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보물 제1378호), 전남 고흥 능가사 대웅전 목조석가불좌상, 1641년 전북 완주 송광사 대웅전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 제1274호) 등 조선 후기 중요 불상으로 손꼽히는 다수의 불상을 제작했다. 1643년에 제작된 응석사 목조삼세불상은 청헌의 말년에 조성된 상으로서 조형성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조각승 청헌의 불상 양식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불상으로 2010년 12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응석사

다음 응석사 뒤쪽에는 ‘진양 정평리 무환자(晉陽 定平里 無患子)나무’라는 이름으로 경상남도기념물 제96호로 지정된 나무가 있다. 무환자(無患子)나무는 글자 그대로 ‘자식에게 화를 끼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나무로 열매를 꿰어 염주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도선국사가 심었다는 전설이 있는 이 나무는 응석사의 오랜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수령은 250년 남짓하며, 높이는 15m, 둘레는 2.15m이다. 고대 중국의 어느 신통한 무당이 무환자나무로 몽둥이를 만들어 귀신을 때려눕히면서, 나무는 큰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통일신라 말(9세기경) 도선국사가 ‘무환자 열매를 먹으면 전염병을 예방하고, 늙지 않고 오래 살며 가정의 나쁜 일을 쫓아준다’하여 심었다고 한다. 도선국사의 이와 같은 비전(祕傳)이 퍼지면서 국내에 대거 수입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무환자나무에 정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전설도 전해오고 있다. 열매의 껍질을 까면 검은 콩같이 생긴 종자가 나오는데, 이것을 햇볕에 말린 뒤에 구멍을 내고 꿰어서 염주를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염주나무 또는 보리수라는 별칭도 갖게 되었다.

 

강신웅

본지 주필

전 경상대학교 인문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