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민영 한국화가

100개의 산과 100개의 폭포를 그리는 게 인생의 목표

2019-11-08     경남미디어

주로 산을 소재로 하는 대작을 많이 그려
총 26회의 개인전, 평생 전통 수묵화 고집
조각 전공했으나 귀향한 후 한국화로 바꿔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역임
경남도청 등 경남의 주요기관들이 작품 소장

진주의

진주에 사는 정민영(58) 화백은 이 지역을 대표하는 한국화가이다. 정 화백은 평생 수묵을 기반으로 하여 산을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려왔다. 그가 산을 주요 소재로 해서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대학 때의 경험 때문이다. 정 화백은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강원도에 있는 강릉국립대학에 진학했다. 정 화백은 이때 “이왕 강원도에 온 것, 강원도의 산이나 섭렵을 하자.” 라는 생각으로 설악산을 비롯해 강원도의 명산들을 다 다녔다. 이때 산에 대한 강렬한 경험이 정 화백으로 하여금 평생 산을 화폭에 담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정 화백은 자신의 화풍에 대해 대작위주의 수묵을 활용한 웅장한 산수화라고 평했다. 정 화백은 100호 이상의 대작을 많이 그린다. 그 이유는 산을 그리다 보니 아무래도 크게 그려야 제대로 된 모습을 담을 수 있어서 그리 됐다고 말했다. 요즈음은 전통 산수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별로 없다고 말하는 정 화백은 그러나 자신은 죽고 난 후라도 평생 수묵화의 전통을 고집한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진주 주약동의 현 화실에서만 30년 동안 작품을 만들었다는 정 화백은 “희한하게 건물 주인이 6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지금까지 나가라고 하지 않아 편안하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며 행운에 감사했다. 남은 인생동안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100개의 산과 100개의 폭포를 그려서 후대에 남기는 게 꿈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6개의 산을 그린데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이 목표를 이룰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 화백은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이다. 또 경남미술대전 초대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경남도청과 진주시청, 진주법원, 진주경찰서 등 경남의 주요기관들이 정 화백의 웅장한 산수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정민영

▲지금 정 화백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고 들었다.

-11월 6일부터 11일 월요일까지 창원성산아트홀에서 부스개인전을 열고 있다.

▲부스 개인전이란 게 뭔가.

-여러 화가들이 각각의 부스를 만들어 개인전을 여는 것을 말한다.

▲몇 개의 작품이 출품됐나.

-5개의 작품을 전시했다. 주로 남해안의 한려해상 풍경을 몽환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이다.

▲몽환적으로 묘사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산수화를 그리는 기법에는 사실적으로 그리는 방법과 우연의 효과를 나타내는 방법이 있다. 우연의 효과를 활용해 남해의 한려해상 풍경을 그렸다는 의미이다.

▲우연의 효과를 활용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인가.

-아교와 물, 그리고 소금을 이용한다. 물과 아교는 서로 섞이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소금을 활용하면 소금이 물을 흡수하면서 예상하지 않은 모양들이 나온다. 예상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우연의 효과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연의 효과방식을 이용하는 이유가 무언가.

-사실적으로 그리면 보는 사람이 다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우연의 효과 기법을 활용할 경우 몽환적 분위기가 나타나기 때문에 보는 사람에 따라 그 느낌이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그런 기법을 활용한 거다.

▲산수화에 그런 기법을 사용하는 작가가 많나.

-그리 많지는 않다. 이 지역에서는 제가 주로 사용하고 있다. 3년 이상 그 기법을 개발해 왔다.

▲올해 개인전이 몇 번째인가.

-이번으로 세 번째이다. 사천에서 한번 했고 지난 7월 1일부터 8월 30일 까지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서 초대받아 개인전을 열었다.

▲지금까지 개인전은 총 몇 번을 개최했나.

-이번까지 26번이다. 산수화 작가로는 많은 편이다.

▲이렇게 다작을 하는 이유가 있나.

-다른 작가들로부터 너무 열심히 하고 너무 많이 한다는 핀잔이기도 하고 격려이기도 한 말을 자주 듣는다. 그냥 제가 주로 그리는 분야인 산이 좋아서 많이 그리는 편이다.

▲대작을 많이 그린다고 하는 데 대작이 무슨 뜻인가.

-저는 주로 100호 이상의 큰 그림을 그린다는 말이다. 130cm*160cm을 100호라고 한다. 크기로 치면 약 1평이 조금 못 되는 그런 크기이다.

▲이렇게 주로 큰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뭔가.

-제가 주로 표현하는 것이 산이다. 그런데 산은 화폭의 크기가 커야 그 느낌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 그래서 대작을 주로 그린다. 크기가 작으면 물체를 표현이 한정된다. 한정된 영역을 뛰어넘어 전체를 표현하기 위해 대작을 활용한다.

▲정 화백의 화풍은 어떻다고 평가되나.

-저는 한국화가로서 산을 주로 그린다. 산의 웅장함, 구름의 빈 여백에서 나타나는 시원함 이런 것들을 주로 표현한다.

▲산을 주로 그리는 이유가 있나.

-제가 대학을 강원도에 있는 강릉대학을 나왔다. 진주에서 강원도에 가서 공부를 하다 보니 대학 다닐 때 강원도에 있는 산들을 다 섭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설악산을 비롯해 강원도에 있는 산들을 다 다녔다. 그 경험이 내 화풍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계속 산을 그릴 것인가.

-제 목표가 100산 100폭을 그리는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인가.

-100개의 산과 100개의 폭포를 그리겠다는 말이다.

▲지금 몇 개나 그렸나.

-6개 정도 그렸다. 앞으로 그려야 할양이 많다.

▲어떤 산을 그릴 것인가에 대한 구상은 서 있나.

-그렇다. 한국의 명산 100선이란 책도 있고 제가 직접 다닌 산들도 많고 그래서 대강의 구상은 서 있다.

▲100개를 다 달리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다. 산은 다 다르다. 정상 부위만 해도 산들마다 다 차이가 있다. 그래서 100개의 산을 표현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지리산 근처에서 태어나 강원도 산들을 주로 다녔다는데. 설악산과 지리산의 차이는 뭔가.

-설악산은 그 앞에 서면 봉우리가 바로 보인다. 그래서 누구나 산이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지리산은 다르다. 천왕봉 표지석에서 인증사진 찍은 것은 많아도 천왕봉 자체의 사진은 별로 없다. 그만큼 지리산은 미적으로 그렇게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그럼, 지리산의 미적 중요성은 어디에 있나.

-지리산은 계곡에 있다. 지리산은 계곡이 깊고 또 그 수도 많다. 이 깊은 계곡이 지리산의 특색이다. 그래서 지리산은 산의 정상부를 표현하는 것보다 계곡을 표현하는 것이 미적으로 훨씬 낫다. 설악산은 산봉우리에서 참맛을 느낄 수 있다면 지리산은 계곡에서 참맛을 느낄 수 있다.

▲100폭은 가능한가. 우리나라에 그렇게 폭포가 많나.

-굳이 웅장하고 유명한 폭포가 아니라도 계곡에 있는 작은 폭포도 훌륭한 소재가 된다. 100개까지 그릴 소재는 충분하다.

▲자신을 어떤 화가로 평가하나.

-제 그림은 약간 전통에 가깝다. 수묵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요즘은 드물다. 지금은 전통산수화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수묵으로 하는 이유는 내가 죽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평생 수묵작업을 한 사람이 있었구나, 하는 그런 평가를 받고 싶다. 우리나라 전통 수묵의 전승을 잇고 싶어서 이 작업을 한다.

▲개인적인 얘기를 해 보자.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나.

-진주 천전초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공작실습을 했다. 찰흙으로 말이나 개 등 동물을 만드는 그런 실습이다. 그런데 그게 너무 좋았다. 그때부터 공작에 빠졌다.

▲그럼,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미술부를 했나.

-그랬다. 그런데 학교 다닐 때는 한국화를 한 게 아니고 조각을 했다. 대학도 조각을 전공했다.

▲대학은 왜 가까운 데를 놔두고 먼 강원도까지 갔나.

-그때 경상대학에 미대가 없었다. 그래서 국립대를 찾아간 거다. 집안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사립대 갈 형편은 되지 않고 국립대학을 가야 했다. 제가 79학번이다. 그때 강릉국립대학이 처음 생겼고 미대가 있었다. 그래서 강릉국립대학을 가게 된 거다.

▲대학 때까지 조각을 전공해 놓고 왜 한국화를 하게 됐나.

-대학을 마치고 진주로 귀향을 했다. 그리고는 화실을 열었다. 그런데 당시는 조각에 대한 수요가 없었다. 또 공간적으로도 조각을 하기가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전공이었던 한국화를 주로 하게 됐다.

▲수입은 어땠나.

-지금보다 옛날이 오히려 나았다. 제 기억으로는 2000년 초반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지금이 예술에 대한 관심은 더 적어진 것 같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옛날에는 전통가옥도 많았고 또 아파트도 현대적인 것 보다는 전통적인 작품들이 걸릴 공간이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그런 경향들이 사라진 것 같다. 또 경기도 지금이 더 나쁜 것 같다.

▲경제는 매년 성장하니 않나.

-수치로는 그럴지 모르지만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경제는 옛날이 좋았다. 그때는 좀 흥청망청 하는 기분이 있었다. 요즘은 그런데 없고 너무 빡빡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남의 주요 기관에 정 화백의 작품이 많이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다. 경남도청에도 100호 작품이 걸려있다. 또 진주시청, 진주법원, 진주경찰서 등 경남도내 주요기관에는 제 작품이 다 걸려있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주요기관에 작품이 걸려있는 이유가 있나.

-제가 다른 화가들보다 더 뛰어 나다기 보다는 제 그림은 대작이다. 큰 그림이다. 큰 그림이다 보니 보기에 시원한 그런 느낌을 준다. 그렇다 보니 기관에서 선호하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다. 작품의 예술성으로야 저보다 뛰어난 분들이 더 많지 않겠나.

▲진주에 한국화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한국화 초대작가는 진주에서 3명이 있다.

▲어떤 사람들인가.

-저를 포함해서 조원섭 화백, 최연현 화백 등이다.

▲그럼, 그 사람들이 한국화를 대표한다고 생각해도 되나.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초대작가가 되려면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이상의 수상경력이 있어야 하고 다른 자격들도 있어야 한다.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초대작가가 되는 것이니까 일종의 심사를 받았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정 화백은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을 언제 했나.

-2010년 선암사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특선을 했다.

대담 황인태 본지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