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국10대구형왕1500년역사속으로]김수로 대왕 별궁을 모델로 건립

총 105명 참봉들이 이제껏 전·능 수호 도모 덕양전, 1928년 대홍수로 건물유실 후 재건 1987년 태풍피해 후 대대적인 성역화사업 현재 5000여평 부지에 10여채 전각 안배돼

2018-12-24     경남미디어

세 번째 이야기 ‘덕양전’ <2>

덕양전은

 

역대 구형왕릉과 덕양전 수호관리 내력을 살펴보면 1800년경부터 좌수 민경원이 옛 왕묘인 왕산사를 능소 아래로 이건하여 수정궁이라 편액하고 제사를 지내오다가 1893년부터 종유사와 도유사를 도임하여 종직을 두었다. 1955년경부터는 참봉직 임명(임기제)으로 변경하였다.

덕양전 수호관리 내력으로 200여년 동안 참봉직을 종직한 사람들은 명예참봉 1명, 양왕릉(구형왕) 참봉 53명, 덕양전 참봉 51명 등 총 105명의 참봉들이 전·능 수호를 도모하였으며, 정·재계 인사, 지역 각계기관과 사회단체장, 유림 등이 매년 헌관으로 배수되어 제례를 받들고 있어 마지막 가락국(금관가야) 왕실의 제례를 보존하고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외에도 국내·외 종친들과 수많은 탐방객들이 수시로 참배를 하고 있어 700만 가락 후손들과 지역민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한편 가락국양왕덕양전은 1983년 8월 11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로 지정되었다.

덕양전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허물어지기를 거듭하고 장소가 협소하여 제향을 받들기에 부족하였고, 1928년 대홍수로 인해 건물이 계곡으로 유실되었다. 그 해 가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30년 봄에 다시 새로운 건물이 낙성되었으나, 1987년 태풍 셀마의 피해로 훼철되어 왕릉의 보전마저 어렵게 되자 대대적인 성역화 사업이 이루어졌다. 이에 1988년 5월 공사를 시작해 1993년 10월 공사를 마침으로서 모습을 갖추게 됐다. 1988년과 1991년에는 추모재, 왕산숙, 관리사 등을 중수해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371번지 내 5000여평 부지에 10여채의 전각이 안배되어 있는 덕양전은 구형왕의 전각으로 역대 가락국 시조대왕(김수로)의 별궁인 태왕궁을 본떠 건립하였다고 한다. 구형왕이 살아생전 기거하였던 덕양전은 증손 김유신에 의해 왕산사가 중수되고 훗날 “덕양전”으로 편액하게 된 왕의 옛 침궁으로서 제향을 받드는 전각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덕양전은 구형왕과 계화왕후의 신위를 모신 본 전각인 덕양전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왕과 왕후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이 있고, 동쪽에는 제례에 쓰이는 향과 촉, 제기 등을 보관하는 곳인 안향각이 있다. 이 공간은 제향을 받드는 장소로 덕양전 입구 전면에 복도각을 좌우측에 익묘와 회묘를 두어 왕의 신위를 모신 전각으로 위엄과 엄숙함을 고루 갖추고 있다. 또한 신위를 맞이하는 연신문을 중심으로 동재와 화수정이 마주보고 있으며, 해산루와 만동문을 지나 덕양전 밖으로 삼문을 돌아 추모재, 왕산숙, 관리사 등이 안배되어 있다.

글쓴이 김태훈 가락국양왕덕양전 참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