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하 정숙자칼럼/차를 통한 중년 극복기] 내 삶에는 태풍이 함께 있다

“ 현실을 거부한다고 해서 상황이 변화될 것이 아니란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적응하고 버텨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

2021-02-09     정숙자 문학박사
정숙자

나에게는 태풍 같은 삶이 있었다. 언제나 거센 바람과 파도가 있었고 그 후 부서진 것들이나 사라진 것들은 모두 나의 몫이 되었다. 나의 탓으로 보낸 것에 나는 다른 사람을 의심하지 않았다. 내가 관여하지 않은 모든 일까지 언제나 내 잘못이라고 외치는 마음이 있었다. 그 외침을 잘못이라고 말할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지나친 말들이 나를 주눅 들게 했고 내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늘 거센 파도 속에 나를 맡겨두었다. 그런 사이 그 태풍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사람의 영역 밖의 일에도 내 탓으로 여기는 버릇이 생겼다. 사람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고 나는 전사이거나 동물적인 감각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고 그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오고 싶어졌다. 나를 보고 나를 향해서 스스로 웃는 온전한 나로 살고 싶어졌다. 태풍이 지난 자리는 햇살이 바람을 배웅하는 평온한 모습이듯 나의 일상들도 평온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콧잔등을 스치고 그 바람을 즐기기 위해 한 잔의 차를 마실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일상이기를 간절하게 열망한다.

우리는 예측하지 못한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다. 서로의 거리를 나라에서 관장하면서 우리는 생존을 담보로 충실하게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집을 벗어난 몇몇의 사람들은 내가 살고 있는 집으러 찾아온다. 차를 마시면서 꽁꽁 언 겨울을 피하고 코로나를 잠시 잊어버리기라도 하듯 창밖 너머의 자연의 풍경을 관망하고 있다. 그 광경에 잠시 젖어있던 사람들은 상상에서 벗어나 현실 속에 있는 나를 관찰하고 있다. 인적이 드문 이 적막한 곳에 혹은 다른 집의 불빛이 그리운 이 어두운 암흑이 외롭고 무섭지 않느냐고 묻는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어둠과 고독이 두렵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마음을 대신해 줄 사람이 없고 위로해 줄 이가 없어 그냥 견딜만 하다고 말할 뿐이다. 내가 처한 현실을 거부한다고 해서 나의 상황이 변화될 것이 없음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지금 적응하고 버텨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이 적막과 암흑을 뛰어넘는 나만의 공포와 두려움이 있기에 다른 무엇도 이겨내는 것이기도 하다.

신이 있다고 해도 나의 공포는 알지 못했으면 좋겠다. 혹 알았더라도 모른 척 해주기를 바랄뿐이다. 사람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여자로서의 자존감마저 바닥으로 치닫게 만드는 그 공포는 나 스스로도 잊어버리기 위해 안간힘을 내고 있는 나에게 사람들은 위로받기를 원하고 있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현실인가! 내가 가진 공포와 두려움으로 나의 외로움은 오히려 안도가 되고 이 적막함이 견딜 수 있다면 각자의 몫인 공포가 다른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혹 행운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에게만은 나를 독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아마 나는 나의 공포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내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함께 가지고 갈 것이다. 나 스스로를 위한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해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