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해바라기
[정용우칼럼] 해바라기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2.03.2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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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아내가 지난해 말 이곳 시골로 올 때 여러 가지 꽃씨를 갖고 왔다. 그 중 해바라기 꽃씨도 있었다. 예쁜 봉투에 싸여 있었다. 내가 우리 집에도 지난해 해바라기 씨앗을 따서 모아두었는데 왜 또 가져왔냐고 했더니 이건 우리 큰손주가 어디서 얻어온 것인데 날씨 따뜻해지면 직접 이곳 시골로 와서 땅에 심을 것이라고 했다. 꽃씨가 담겨 있는 봉투도 참 예뻤고 해바라기꽃 모양도 우리 집에서 꽃 피운 것과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현관 선반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 차츰 날씨가 따뜻해지고 있으니 곧 씨앗을 땅에 심어야 할 것이다. 손주와 함께 꽃씨 심고 키운다는 것이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닐 테니 기대가 크다.

해바라기는 4월부터 5월 사이에 꽃씨를 파종하면 7월부터는 꽃을 볼 수 있다. 꽃이 아주 오랫동안 피어 있을 뿐 아니라 예쁘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매년 우리 집 화단 중에 햇빛 잘 드는 여러 곳에 해바라기를 심어 놓고 즐긴다. 내가 해바라기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꽃이 시원스럽게 예쁠뿐더러 오래전에 본 영화 한 편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 제목은 ‘해바라기’. 소피아 로렌이 영화의 여주인공. 영화의 주 무대는 지금 한창 전쟁이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다. 영화 속에 나오는 우크라이나 해바라기 평원, 지평선이 안 보일 정도로 끊임없이 펼쳐지는 해바라기가 유명한 영화 ost ‘사랑의 상실(loss of love)’의 선율에 따라 흔들리는 장면은 정말 아름답고 인상적이어서 아주 오래전 본 영화인데도 그 장면 하나하나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영화는 두 남녀의 사랑, 이별, 재회, 헤어짐을 이탈리아와 러시아 우크라이나를 배경으로 그려낸다. 열차 차창으로 아름다운 해바라기 평원을 무심히 바라보는 조반나(소피아 로렌 분). 2차 대전 말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떠난 남편 안토니오가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질 않자 사진 한 장 들고 남편을 찾아 나선다. 절망과 희망이 오가는 속에서도 계속 찾아 헤매다 결국 남편을 찾지만 이미 어느 여인과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이 여인이 처참한 전장 퇴각 과정에서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가던 안토니오를 발견하고는 집으로 데려와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여 살려는 냈지만 그는 과거의 기억을 잃은 상태, 안토니오는 기차역에서 자신의 사진을 떨어뜨린 채 떠나버린 조반나의 표정에서 기억을 회복하고 마침내 이탈리아로 조반나를 찾아오지만 그녀는 이미 새 가정을 꾸리고 있었으니... 각자 가정이 있는 그들은 결국 가슴 아픈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남녀 간의 사랑을 소재로 했지만 전쟁의 비극, 전쟁의 상흔을 다룬 영화다.

전쟁의 고통과 아픔이 이토록 크기에 역사 이래 수많은 현인들은 평안하고 안전한 삶을 살아가는 유토피아 이상향을 그렸다. “나라는 작고 사람은 적어서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죽음을 무겁게 여겨 멀리 옮겨 다니지 않는다.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타고 갈 곳이 없고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진을 칠 곳이 없다. 사람들은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고 끈으로 매듭을 지어 사용할 뿐이다. 음식을 달게 먹고 편하게 살며 풍속을 즐긴다. 나라가 서로 마주 보고 닭과 개 울음소리가 들려도 늙어 죽을 때까지 굳이 왕래하지 않는다”(노자 도덕경)

그런데 이런 평안하고 안전한 상태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전쟁이 그만큼 많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원전 3500년부터 20세기까지 1만4500회의 전쟁이 발발했고 35억 명이 희생됐다고 한다. 평화의 시기는 고작 300년에 불과하단다. 과연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할 만하다. 전쟁이 이렇게 많이 일어난 만큼 전쟁을 하는 명분도 다양하다. 전쟁을 주도하는 소수 권력자들은 전쟁의 명분이 없으면 조작했고, 작다면 크게 만들었다. 전장에서의 죽음은 조국과 신의 대의명분을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포장됐다. 모두가 ‘정의로운 전쟁’뿐이다. 단언컨대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거짓말’일 뿐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소수 권력자들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 감내해야 할 고통과 슬픔은 일반 국민의 몫이었다는 것을. 정치인과 군인의 전쟁엔 승패가 있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전쟁엔 승자가 없다. 고통만 있을 뿐이다. 작금의 우크라이나 러시아 간 전쟁도 마찬가지. 며칠 있으면 대전에서 손주들이 이곳으로 온다. 그때 우리 모두 함께 해바라기 꽃씨를 심을 것이다. 이 야만과 폭력의 시대가 하루빨리 끝나기를. 그리하여 우크라이나 평원에서 경작하고 있는 해바라기꽃들이 더욱 환하게 피어오르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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