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웅교수의향토인문학이야기]주련(柱聯)의 내용 못지않은 필체에 절로 감탄
[강신웅교수의향토인문학이야기]주련(柱聯)의 내용 못지않은 필체에 절로 감탄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1.0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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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장대 주련 - 추사 서법 버금가는 하동주선생의 작품
호국사 주련 – 높고 깊은 불교와 부처님 가르침 담아

<9> 진주 촉석루 시문 현판 고찰 (7)

진주성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면서 남쪽의 촉석루 즉, 남장대 보다는 약 340년 늦은 1584년에 진주목사 신점(申點)이 지은 군사용 건물로, 당시로써는 진주성 전체를 지휘하기에 매우 적합한 최적의 군사지휘소였다.

이 북장대는 임진왜란 때에 격전이 치열했던 곳으로 광해군(光海君) 10년(1618년) 병사 남이흥(南以興)이 중건하기도 했다. 그 후 수차례 중수(重修)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북장대는 내성(內城) 북쪽 끝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여 가파른 절벽 아래의 성밖 뿐만아니라 내성과 외성에 포진했던 전체 병사들까지도 지휘할 수 있는 천혜(天惠)의 군사요충지였다. 그래서 편액(扁額)에는 진남루(鎭南樓)라고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하여 진주성 내에 있는 다른 장대(將臺)들 보다는 그 위세와 형세가 당당했다.

특히 북장대의 주련은 1900년대 동방의 명필로 이름을 떨친 경남 거제출신의 성파(成坡) 하동주(河東柱)선생의 필체로 쓰여진 것이다. 성파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필맥을 이어온 추사체의 대가로서 그의 독특한 필체와 글씨가 아직도 경남의 여러 지역에 남아 있음이 큰 다행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진주의 촉석루와 비봉루, 합천 해인사와 함벽루, 밀양 영남루와 아랑각, 통영 용화사, 진동 봉래정, 동래 범어사, 고성 박부자 고택 등에 현판과 주련에 선생의 글씨가 남아있다.

특히 북장대에 쓰여진 선생의 글씨는 추사의 분신이라 할 만큼 서법이 똑같을 뿐만아니라 그 필법 역시 어떠한 막힘도, 주저함이 없는 호방성과 역동성이 보이는 서체이며, 주련 내용 역시 다른 주련에서는 볼 수 없는 중국의 두 명인, 소동파(蘇東坡)의 호방성(豪放性)과 양호(羊祜)의 시대적 호걸의 기풍을 엿볼 수 있다.

현재 진주성 북장대의 문화재 지정번호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호로, 진주시 남강로 626(본성동) 진주성내에 위치하고 있다.

 

진주성 북장대.
진주성 북장대.

北將臺 柱聯 (북장대 주련)

晋陽名勝鎭南樓 (진양명승진남루) 진양에서도 유명한 이곳 진남루는

矗石迢遙兩對頭 (촉석초요양대두) 저 높은 촉석루, 멀리서 마주 하네.

細流陰陰晴幕曉 (세류음음청막효) 실버들 어두운 막 걷히고 아침햇살 밝아오니

高荷柄柄碧池秋 (고하병병벽지추) 키큰 연꽃 송이송이 푸른 못을 수놓네.

湖眉九日坡公舫 (호미구일파공방) 여기 오면 구구절에 소동파 배뛰워 놀던 호수인듯

峴山三年羊祜裘 (현산삼년양호구) 양호(羊祜)가 가죽옷 입고 삼년이나 있던 현산 같네.

有此江山眞可賞 (유차강산진가상) 여기 이 강산은 정말 구경할만한 곳이니,

康衢煙月詠唐虞 (강구연월영당우) 요(堯)임금 순(舜)임금의 태평성대를 노래하네.

◆註◆

① 파(坡) -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시인(詩人) 소식(蘇軾)(1036-1101)을 뜻한다. 호(號)가 동파(東坡)이기 때문에 호의 끝 글자를 따와서 시를 지었다. 자(字)는 자첨(子瞻)이고 시호(諡號)는 문충(文忠)이며 호는 동파(東坡)로서 소순(蘇洵)의 아들이자, 시인(時人) 소철(蘇轍)의 형이다.

② 현산(峴山) - 중국 호북성에 있는 산 이름이고, 진(晉)나라 장수 양호((羊祜)가 가죽옷을 입고 등윤보((鄧潤甫)와 함께 올랐던 유명한 산.

③ 양호(羊祜) - 중국 서진때 문무를 겸비한 장군으로 중국 역대에 뛰어난 전략가 50人 중의 한 사람.

④ 당우(唐虞) - 중국 전설시대의 태평성대를 실현한 요(堯)와 순(舜)의 임금을 지칭함.

다음은 진주성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호국사(護國寺)에 씌어있는 주련을 소개하기로 한다.

우선 호국사의 주련을 설명하기 전에 호국사의 설립과정과 그 역사성을 기술해보면, 본 호국사의 문화재지정번호는 전통사찰 제70호이며, 소재지는 진주시 남성동(진주성내)으로 되어있다.

고려시대(高麗時代)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호국사(護國寺)는 원래의 절 이름이 내성사(內城寺)였다고 한다.

고려 말기에 왜구(倭寇)를 막기 위해 진주성을 고쳐 쌓고, 승병(僧兵)을 양성하기 위해 창건된 것으로 생각되는 이 절은 임진왜란 때는 승군(僧軍)의 근거지가 되었다.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성과 함께 운명을 같이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이 호국사(護國寺)란 이름으로 재건하였다고 전한다.

최근에 진주성을 정화하면서 일주문(一柱門) 자리가 발견되어 새로 세웠으며, 사찰의 건물들은 모두 근년에 새로 이룩된 것이다.

진주성에 위치한 호국사 내 삼성각.
진주성에 위치한 호국사 내 삼성각.

護國寺 柱聯 (호국사 주련)

諸法從本來 (제법종본래) 모든 법(法)은 본래부터 있었기에

常自寂滅相 (상자적멸상) 언제나 고요한 열반의 모습 그대로이므로,

佛子行道已 (불자행도이) 불자가 이 도리를 닦게 된다면

來世得作佛 (내세득작불) 내세에는 우리모두 성불하리라.

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무여불) 천상천하 어느 곳에도 부처님같이 거룩하신 분 없나니

十方世界亦無比 (십방세계역무비) 온 세상에는 또한 부처님에 비길만한 이 없고.

世間所有我盡見 (세간소유아진견)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내가 다 살펴보았지만,

一切無有如佛者 (일절무유여불자) 온 세상 그 어디에도 부처님만큼 존귀하신 분 없더라.

전국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사찰의 주련은 그 내용들이 거의 비슷하며 대체로 불교교리나 부처님의 주요한 법언(法言)이 많고 또 사찰의 주련을 기록한 사람들도 사찰 밖의 일반 문인들은 전무하고 대부분이 불도인이거나 고승들임을 알 수 있다.

 

 

강신웅

본지 주필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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