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 없이 살면
살아지지 않을까 싶은데
여전히 생각이란 것을
떠나보내지 못하니.......
”
한동안 걷는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걷기명상을 멈추고 있었다. 일정하게 나가서 일을 하는 곳이 생겼고 그로 인해 금전적인 이익을 얻었다. 분주하기도 했고 그곳에서의 일이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하려고 했다. 적어도 나로 인해 일이 늦춰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 일이 끝나고 나는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내가 살아있다는 신호이기도 하고 오늘을 버티고 견디는 유일한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호수는 여전히 하늘을 품고 있었다. 사실 호수가 하늘을 품은 것인지 하늘이 호수 속으로 들어간 것인지 모르겠다. 둘은 일체를 이루고 있었고, 그 사이에 유유히 움직이는 철새가 있다. 작년에 온 새인지 새로이 이곳을 찾아온 것인지 알 수 없으니, 나는 저 새가 작년에 왔던 새였으면 좋겠다. 그래야 지나간 이야기도 하고 보낸 세월만큼 시간을 공유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것 또한 나의 미련한 욕심이겠지 싶다.
나의 마음의 감기는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다. 약을 먹지 않고 버티고 있으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를 만큼 좋아졌는데, 이번에는 더이상 그러질 못하고 있다. 정말 약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숨겨지지 않는 마음의 감기는 몸으로 통하여 밖으로 나오려고 아우성이다. 아프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기에 걷는 것도 조심스럽다. 언제 무릎이 버티지 못하고 파업을 할지 모를 일이다. 뼈 마디마디에 들어있던 유연한 청춘은 자취를 감추고 푸석푸석한 나이만 들어앉았다.
아침에 떠오르는 햇살로 호수가 반짝이면 잠시 아름답다고 느끼다가, 나의 마음은 호수 바닥으로 들어간다. 차디찬 물이 마음속에 부딪치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내가 선 곳으로 빨리 자리를 옮긴다.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버티고 견뎌서 내일로 갈까 생각하니 두통이 생긴다.
찻잔에 차를 가득 채워서 차가운 바람이 있는 뜰로 나온다. 잔디도 누렇게 변했고 국화꽃도 이미 지고 없다. 냉랭한 정원에 서서 나도 함께 냉랭해진다. 그러면 찻잔을 다시 채워 차를 형식도 격식도 없이 그냥 마신다. 한 움큼 목을 통해서 몸의 바닥으로 차가 향하면 사는 것이 별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리 힘들고 지치는지 모르겠다. 돌아볼 것도 없고 앞으로 나아갈 것도 주춤거린다. 그냥 생각 없이 살면 살아지지 않을까 싶은데, 여전히 생각이란 것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