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겨울독서
[정용우칼럼] 겨울독서
  •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 승인 2021.12.15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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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지난 세월 돌이켜 보니 참 많은 책을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책을 읽었다기보다는 책 읽은 시간이 많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물론 고등학교나 대학시절에 책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본격적인 책읽기는 군대생활 할 때였다. 나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사병으로 3년을 근무했는데 그 당시 나의 보직이 인사처장 당번병이었다. 요즘처럼 개인전화기가 없던 시절인지라 당번병의 주요 임무는 처장님 부재중일 때 각처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빠짐없이 잘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장님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자리 뜨지 말라’ 였다. 자리 뜨지 않기 위한 한 방편으로 내가 착안해 낸 것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것이었다. 육사 도서관은 많은 책이 깨끗한 상태로 비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빌려보기에 참 좋았다. 그렇게 3년을 보낸 후부터는 책은 나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었다. 40대 후반에 병이 들어 3년간 경제활동을 하지 못할 때도 책들이 있어 그 어렵고 힘든 시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책 읽는 순간은 통증을 느끼지 못할 만큼 몰두했으니.

그 후 대학교수가 되어서는 아예 학교 근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출·퇴근 시간을 줄이는 대신 독서시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에 베란다에서 책을 읽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추억만으로도 행복하다. 대학교 교수직을 은퇴한 후에는 내가 애지중지 사랑했던 책들을 모두 이곳 시골로 운반해왔다. 이들 책을 읽고 또 읽고…. 나의 일상 삶의 한 모습이 되었다. 좋은 점이 있으면 반드시 나쁜 점이 따라오는 법. 책 읽기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너무’ 많아 좋아졌지만 주변이 어두우면 곧바로 눈의 피로를 느끼게 된 것이 문제다. 나이 탓이리라. 그런데 이 문제를 센스쟁이 내 딸이 해결해 주었다. 독서등(스탠드)을 아주 밝고 멋진 것으로 교체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구름이 잔뜩 낀 날이나 어두운 밤에도 아무런 문제없이 예전처럼 즐겨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책에 좀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문구, 어느 대형 서점이 입점해 있는 빌딩에 걸려있던 문구,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문구가 한때 참 새롭게 다가온 적이 있었다. 책을 읽으면 만 배의 이익이 있고(讀書萬倍利)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울림이 컸다. 사람이 되게 하고 세상을 값지게 살게 하는 길을 찾아내는 것, 그 길을 찾아내는 데는 독서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그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책을 읽었다. 특히 조명이나 난방시설이 열악한 전통시대 선인들의 책 사랑은 가히 눈물겹다. 가을은 계절의 특성상 하늘이 맑고 기온과 습도는 적당하며 들판의 곡식은 풍성하고 수확을 앞두고 있는 상태라 마음이 평온하여 다른 계절에 비해 독서에 더 쉽게 집중할 수 있었겠지만–그래서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 걸까–겨울 독서(특히 겨울밤 독서)는 여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처럼 주변을 밝게 비춰주는 독서등도 없는 시절이니 호롱불 촛불에 의지하여 책을 읽었을 테고, 제대로 된 난방시설도 없으니 겨울 혹한에 떨면서도 책 읽기에 열중했을 테니. 옛 선인들이 남겨놓은 독서기록을 읽어보노라면 그들의 책 사랑은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덕무가 ‘<논어> 한 질은 바람이 들어오는 곳에 쌓아 놓고 <한서>는 나란히 잇대어 이불로 덮고서 글을 읽었다’(‘이목구심서’)거나, 남산골 딸깍발이가 “요놈, 요 괘씸한 추위란 놈 같으니, 네가 지금은 이렇게 기승을 부리지마는, 어디 내년 봄에 두고 보자”(이희승, ‘딸깍발이’)고 별렀다는 이야기들은 지금처럼 편한 세상에서도 책읽기를 게을리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책을 구할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여건은 충족되어 있지만, 또 독서의 중요성은 여기저기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고 있지만 아직 우리는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1인당 독서량이 OECD 최저수준이라니. 책을 통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찾기는커녕 그 길이 오래 방치되어 온통 가시덤불로 막힌 길이 되어버렸다.

독서삼여(讀書三餘)라는 고사가 있다.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에 동우(董遇)라는 분이 한 말이다. 제자들이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투덜대자 동우가 나무랐다. “시간이 없다니 무슨 말이냐. 책을 읽는 데는 삼여(三餘)만 있으면 되지 않느냐. 밤과 겨울 그리고 비오는 날에만 읽어도 충분하다. 겨울은 한 해의 나머지이고, 밤은 하루의 나머지이며, 비오는 날은 때의 나머지이니라”라고 했다. 나는 여기에 ‘일여(一餘)’를 더 보탠다. 내 인생의 나머지인 ’노년‘이다. 그리하여 독서사여(讀書四餘)다.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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