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공영방송 관련법은 소유주에 대한 의미규정만 있지, 공영방송의 덕목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시해놓고 있지 않다. 한국의 지상파 방송이 왜 공영방송이냐 하는 문제는 전파의 소유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그 소유권을 위탁받아 방송사에 방송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방송법에는 공영방송이 해야 할 덕목과 지켜야 할 윤리와 기여해야할 공헌에 대해 의미부여를 하고 있을 뿐이지 구체적으로 명문화된 규정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공영방송은 사실 진정한 의미의 공영방송이라고는 할 수 없다. 특히 공영방송사의 수장을 선발하는 과정 자체가 정치권에서 정권을 잡은 쪽이 자기 입맛대로 방송사의 사장을 뽑을 수 있다. 결국은 어느 정권이 들어서냐에 따라 한국의 공영방송은 정치적으로 갈지자 행보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친여 편향이 심한 ‘서울의 소리’라는 유튜브의 한 촬영기자가 야당 후보의 부인에게 개인적으로 접근해 당사자에게 녹음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52차례나 사적 대화를 나누면서 7시간 가까이 녹음한 뒤에 이를 지상파 방송사 그것도 민영도 아닌 공영방송을 자부하는 방송사에게 건네주어 그 내용을 공개하게 했다. 방송을 내보내기 전에 야당은 법원에 방송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 해당 방송사를 의원들이 찾아가 항의를 했다. 반면 여권과 여당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 셀럽들은 본방 사수를 자신들의 SNS에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나서는 등 양쪽 모두 국민들의 첨예한 관심을 유발했다. 정작 당일 방송을 본 시청자들의 반응은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후보 부인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야겠다는 호의적인 평가도 쏟아졌고, 여야를 넘나드는 지적과 비판에 일반인들은 속 시원해 했다. 다른 한편으로 방송을 안 하느니 못했다는 혹평까지 쏟아졌다. 여야 모두 의문의 1패를 당하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심지어는 기자가 후보 부인에게 낚였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여권은 당초 기대했던 한방의 폭로가 없어 실망한 쪽이다. 해당 방송사는 시청률 재미를 보았다.
여기서 문제는 공영방송의 역할이다. 정치편향성이 매우 강한 특정 유튜브가 또 다른 유튜브 채널과 합작해서 후보 부인에게 의도적 접근을 통해 비밀리에 녹취한 내용을 제공받은 공영방송이 자신들이 직접 취재하지도 않은 소재를 방송하면서, 자사가 추구해온 방송민주화라는 원칙과 정신에 기반을 둔 공공 공익성에 비추어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다만 정파적 목적만을 위해 과연 국민에게서 공익적 목적에 사용하도록 허락받은 전파를 이용해 방송해도 되는가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번 방송이 과연 얼마나 공익성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보도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공익성이 개인의 사생활보호 보다 크다면 공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선택적 공익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저널리즘 윤리기준으로 보아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의미에서 MBC는 내용의 정치적 후폭풍이나 대선판도에 끼칠 영향보다는 한국의 방송언론계에 공영방송이 취해야 할 기본적인 역할에 대해 논제를 던졌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이 비윤리적 방법으로 취재한 자료를 제공받아 공인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란 명분을 내세우면 공영방송사라도 과연 자의적으로 방송을 내보낼 수 있냐는 문제 제기다. MBC는 지상파 방송사로서의 품격은 그만두고라도, 사내 보도윤리강령뿐 아니라 한국 언론 기자 윤리강령에도 위배되는 처사이고 스스로 유튜브 수준의 방송사를 자처한 일탈을 저질렀다. 조국사태 때도 그랬고 대장동 사건 보도 때도 그랬지만, 공영방송사로서 공익성에 기반을 둔 뉴스를 제대로 내보냈다면 굳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았겠다. 평생을 몸담았던 회사라는 점에서 더더욱 허탈한 심정이다. 알 권리만 앞세운 MBC의 취재 관행과 방송태도가 공영방송사로서 지켜야 할 가치관을 반영한 취재윤리와 언론의 기능 등 본질적인 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다시 돌아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