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적당한 가난
[정용우칼럼] 적당한 가난
  •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 승인 2022.02.0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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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코로나 때문인지 세상인심이 변해서 그런지 설날이 되었지만 거리는 조용하고 한산하다. 세배 다니는 사람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시골에는 나이 많은 노인들이 살고 있어 그들을 찾아오는 자녀들이 있긴 하겠지만 모두 자기 차로 와서는 부모들만 찾아보고 빠르게 도시로 돌아가 버린다. 반대로, 대전과 진주에 사는 내 딸 아들처럼 아이가 감기를 앓고 있거나 여타 이유로 부모를 찾지 못할 사정이 생겼을 때는 부모가 도시 사는 자녀들을 찾아가는 경우도 많다. 상황이 이러하니 명절에도 온 동네가 평소와 같이 썰렁하다. 설 풍경이 내 어릴 적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설날이 되면 이른 아침부터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기 위해 돌아다니느라 온 마을이 시끌벅적했다. 세배를 드리면 어른들은 덕담을 건네주시곤 했다. 그중에 ‘부자 되라’는 덕담이 많았는데 이 덕담을 건네주시면서 세뱃돈까지 주실 때는 그 기쁨이 극에 달했다. 내가 크면 반드시 부자가 되고 말 것 같은 기분. 부자는 우리의 우상이며 우리의 희망이었다. 부자가 되면 우리네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설날 한가함을 즐기는 중에 본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 1905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지방의 작은 마을 유대인 부락에서 우유가공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테비에’는 가난한 삶에도 불구하고 신앙심이 깊은 남자다. 그는 수다스런 아내 ‘골디’와 다섯 명의 딸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가난하였기에 부자가 되기를 바랐다. 그의 기대를 담아 가축우리에서 사료를 나누어주면서 노래 부른다.

“내가 부자였다면 종일토록 먹고 마시며 놀겠네. 내가 부유한 사람이라면 힘들게 일을 안 할 거야. 내가 번지르한 부자라면 의젓하고 여유 있는 모습일 거야. 우리 마누라 ‘골디’도 달라지겠지. 부잣집 마나님들처럼 제대로 생긴 이중턱을 가질 거야. 원하는 대로 요리하라 시키면 되지. 공작새처럼 우쭐대며 목에 힘을 줄 거야. 오! 얼마나 멋진 기분일까. 밤낮으로 하인들에게 호령하는 그 맛! 마을의 주요 인사들이 내게 와 아양을 떨고 나에게 자문을 부탁하겠지. 솔로몬의 지혜를 원하듯 “부탁합니다. 테비에 경“ ”용서하세요. 테비에 선생“ 랍비에게 물어볼 수준의 문제들을 가지고 오겠지. 그렇지만 내가 어떻게 대답을 해주든 전혀 관계가 없을 거야. 부자라면 뭐든 안다고 사람들은 믿으니까. 내가 부자였다면 난 시간적 여유가 많아질 거야. 성전으로 가 오랜 시간 기도도 하고 동쪽 벽 앞에 좌석을 마련하여 학자들과 하루 7시간씩 성서에 대해 토론을 하겠네. 그것보다 달콤한 삶이 또 어디 있으랴.”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우리도 부자가 된다면 이 영화 주인공이 상상하며 원했던 바대로 누리고 즐길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조물주 하느님은 당신의 거대한 계획에 의거하여 부자보다는 가난뱅이를 훨씬 더 많이 만드셨다. 당신의 그 뜻을 존중해서 그런지 인류 역사에서 가난은 언제나 현실이 되었다. 그 누구도, 어떤 권력도 그 차이를 좁힐 수는 있었어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

세상을 창조하신 당신께서 나의 운명도 그렇게 정해주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 정치인의 어린 시절처럼 한 방에 6명이 한꺼번에 기거하면서 뒹굴지 않아도 될 만큼 비참한 가난을 주시지 않은 것.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끝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런 궁핍한 처지를 겪지 않게 해주신 것.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부자들처럼 풍성하고 여유롭게 살지는 못하지만 내 방이 있어 그곳에서 책 읽고 글 쓰고 잠 잘 수 있다는 것. 많지는 않아도 내 입, 내 몸을 간수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이 있는 것. 몸이 아플 때 남의 손에 의지하지 않고도 병원 치료비를 댈 수 있는 것. 말하자면 우리네 삶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 비용을 조달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이면 만족하고 감사할 일이다.

나는 이를 ‘적당한 가난’이라고 이름 붙인다. 내 실제 경제적 수준도 그렇지만 내가 특히 이 ‘적당한 가난’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만약 내가 부자가 된다면 앞서 언급한 ‘테비에’가 노래한 것처럼 ‘공작새처럼 우쭐대며 목에 힘을 줄 것’만 같다. 젊어서 크던 희망이 줄어서 착실하게 작은 소망이 되는 것이 고이 늙는 법(김광섭 시인의 시 ‘소망’). 늙어가며 가지고 싶은 내 작은 소망. “누구를 만나든 나 자신을 가장 미천한 사람으로 여기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상대방을 이 세상 최고의 존재로 여기도록 하소서(달라이 라마)” 부자보다는 적당하게 가난한 자에게 어울리는 기도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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