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파티는 작아도 빛난다
[정용우칼럼] 파티는 작아도 빛난다
  •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 승인 2022.02.1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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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내 장조카는 항렬은 나보다 밑이지만 나이는 두 살 많다. 어릴 적에는 한 동네에서 같이 살았지만 지금은 부산에 산다. 토목사업을 영위하는 회사의 대표다. 열심히 사업에 매진하여 제법 돈도 많이 벌었다. 사업뿐만 아니라 뭐든지 적극적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사업에 바쁠 텐데 교회 장로로서 신앙생활도 열심이다. 개신교 교인이지만 조상 산소도 자주 찾는다. 산소에 들를 때마다 우리 집에도 찾아온다. 아재인 내가 보고 싶다면서.

이날도 산소에 들르고는 우리 집을 방문하였다. 공교롭게도 내가 강둑길 산책을 하는 중에 찾았으니 집에서 나를 만날 수 없었다. 틀림없이 강둑길 산책 중일 거라는 생각이 들더란다. 부부가 강둑길로 차를 몰고 왔다. 우리는 강둑길 진입로에서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조카가 나에게 이야기했다. “아제 집에 갔더니 누가 멜론을 한 박스 갖다 놨데요.” 내가 이야기한다. 참 고마운 분들이라고. 내가 농사를 짓지 않으니 이런저런 야채며 과일을 그렇게 갖다 놓는다고. 감사한 마음에 동네 어르신들 식사대접을 매년 한 두 차례 한다고. 그런데 요즈음은 코로나 때문에 못 한다고. 그랬더니 장조카가 이야기한다. “아재, 다음번 식사는 내가 한 번 대접할게요. 아재는 사람들 모아만 주이소. 모인다는 연락만 주면 만사 제치고 바로 달려올게요. 부산에서 한 시간이면 옵니더.” 비록 지금은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지만 어린 시절 같이 보낸 분들께 식사대접 한 번 하고 싶은 데 기회 한 번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다. 한 동네서 살면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도와주고 격려해 주면서 맺은 인연들, 그 인연을 잊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나와 장조카는 이 소중한 인연들을 추억하며 코로나 사태가 종식될 즈음, 동네 어르신들 몇 분을 모시고 조촐한 파티를 열기로 했다.

이 식사모임을 생각한 순간, 덴마크의 소설 하나가 떠올랐다. 두 차례나 노벨상 후보로 올랐던 이자크 디네센의 단편소설 ‘바베트의 만찬’이다. 이 이야기는 작가의 그리스도교적 영성과 예술가의 소명에 대한 원숙한 성찰 그리고 여성의 섬세함이 잘 조화된 작품으로서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기도 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바베트는 프랑스 혁명의 광풍 속에 노르웨이의 시골 마을로 몸을 피한 프랑스의 한 여인이다. 그녀는 착하게 살아가는 어느 두 자매의 하녀이자 요리사로 지낸다. 알 수 없는 베네트의 과거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충실함과 깊은 인품은 점점 바닷가 작은 마을 사람들의 신뢰와 사랑을 자아낸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 그녀가 프랑스에서 어마어마한 금액인 1만 프랑의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축하하면서도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가리라고 슬퍼한다. 바베트는 ‘열두 명’의 이웃을 위하여 ‘마지막 만찬’을 준비한다. 그날의 식탁은 사람들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황홀한 음식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사실 프랑스 제일의 식당 ‘카페 앙글레’의 일급 요리사였던 것이다. 혁명의 와중에 가족도, 친구도, 명예도 잃고 무명의 망명객이 된 바베트는 이제 자신을 환대한 이들에게 일생의 만찬을 대접한다. 참으로 행복했던 만찬이 끝나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며 그녀에게 이제 떠나는지 묻는다. 베네트는 자신의 소중한 것들은 프랑스에서 이미 다 사라졌을뿐더러 1만 프랑을 이번 만찬에 다 썼기에 그대로 남을 것이라고 답한다. 또한 그 큰돈을 어찌 다 쓸 수 있었는지 묻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카페 앙글레에서는 12인분 저녁 식사 재료비가 1만 프랑이에요.”

바베트가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 그날의 저녁 만찬은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아름다운 상징이라 할 만큼 특별하다. 그러나 이것은 소설 속의 이야기일 뿐,. 우리 보통사람들에게 복권 당첨이란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일뿐더러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그간 감사의 뜻을 표한다 하더라도 식사비용으로써 이렇게 많은 금액을 쓸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하여 나와 장조카가 구상하고 있는 식사 접대모임은 소설 속 바베트가 마련한 잔치처럼 특별하거나 거창할 수는 없다. 그저 시골사람들이 좋아하는 오리고기 구이랑 소주 한 잔 대접하는 것이 고작이겠지만 식사대접이 갖는 의미는 바베트의 만찬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마을 공동체 일원에 대한 깊은 감사의 뜻이 담겨있는 점에서 말이다. 누군가가 파티는 작아도 빛난다고 했다. 타인에 대한 관심 부족현상이 점차 심해지고 있는 오늘날, 파티가 우리의 삶을 행복하고 기운차게 해주며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우리와 이웃을 행복하게 하는 진정한 풍요로움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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