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동백꽃 그리고 내 병고
[정용우칼럼] 동백꽃 그리고 내 병고
  •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 승인 2022.02.2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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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설 연휴 때 부모님 산소를 찾았다.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야트막한 야산 언덕바지에 두 분의 무덤이 자리 잡고 있다. 야트막하지만 산은 산이다. 산이 둘러쳐 있어 겨울 추운 바람을 막아주고 남쪽을 보고 앉아 있으니 따뜻해서 그런지 무덤 앞에 심어져 있는 키 큰 동백나무의 꽃봉오리들이 발그레이 부풀고 있었다. 지금쯤은 따뜻한 햇살에 간지럼을 느껴 터져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우리 집 마당에 심어져 있는 2그루의 동백나무는 아직 꽃을 피우려면 며칠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요 며칠간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막바지 한파가 절정을 이루는 사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던 꽃봉오리들이 추위에 못 이겨 움츠러들어 버린 것 같다. 다시 날씨가 풀어지고 있으니 곧 꽃을 피워 내리라. 다른 꽃들은 꽃봉오리도 만들기 전에 붉은색으로 단아하게 피어오르는 동백꽃.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게 될 터이니 벌써 가슴이 설렌다.

우리 집 동백나무는 내가 병이 들어 고향에서 요양할 때 심었다. 2그루를 심었는데 지금껏 잘 자라 꽃도 많이 피운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 그 당시를 되돌아본다. 동백나무가 눈 속에서 꽃을 피우듯 인간은 깨지고 부서져도 삶의 불꽃을 피워내는 존재. 병고로 시련을 겪고 있던 나에게 있어 동백꽃은 시리고 추운 마음을 달래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하늘에 별이 맑게 반짝이고 마당에 동백꽃 핀 밤이면 자신의 삶이 암울하고 비관적이어도 스며드는 빛줄기에 희망을 갖곤 했던 그 당시 기억이 새롭다.

동백(冬柏)을 글자 그대로 풀면 ‘겨울 잣나무’가 된다. 잣나무처럼 겨울내내 푸르면서 꽃까지 피워내니 잣나무보다 한 수 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겨울에도 짙푸른 잎을 달고 있는 상록의 동백나무. 추위 속에서도 이를 조롱이라도 하듯 진하고 아름답게 꽃을 피워내는 동백나무. 열정과 생명의 나무였다. 이런 동백나무를 누군들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옛사람들의 동백나무 사랑은 유별났다. 혼례식장에 대나무와 함께 동백나무를 항아리에 꽂아 놓는 것은 동백이 열매가 많이 열려 다자다남(多子多男)을 상징한 때문이다. 동백나무 가지로 여자의 볼기를 치면 아들을 낳는다거나 동백나무 망치를 갖고 다니면 역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신(俗信)도 있었다. 축귀(逐鬼) 의식에 복숭아 가지와 함께 동백 가지를 쓰기도 했고, 정초에 풍년과 장수를 기원하는 당산제(堂山祭)에는 동백나무 둘레에 금줄을 치고 오색천을 매달기도 했다. 우리 집에 이 나무를 처음 심을 때 나 역시 옛사람들과 같은 심정이었다.

지금도 동백나무에 대한 나의 사랑은 여전하다. 그런데 사랑하는 이유가 이 나무를 심을 때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요즘 특히 이런저런 병고에 시달리고 있어서 더욱 그런가 보다. 나이가 들면서 건강상태가 나빠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런 상태가 유독 나에게 일어날 때는 괴롭다. 오래된 지병으로 이런저런 병을 덕지덕지 붙여 달고 다니면 왜 내 삶은 이토록 모질까 하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죽음보다는 살아 있는 것이 축복이라는데... 그래서 병고를 견디어내면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한다는데... 그렇지만 어떨 때는 옛사람들 특히 노인들이 달고 산 말 ‘자는 잠에 가야 할 텐데...’ 이 말이 이렇게 실감나게 다가오는 때가 있으니, 이런 때에는 동백나무가 열정과 생명의 나무라기보다는 미련 없는 죽음의 상징으로서 나에게 다가온다. 미련 없는 죽음. 이 상징 때문에 제주도를 비롯한 일부 섬 지역에서는 동백나무를 집안에 두지 않는다고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동백꽃은 질 때는 목이 베어지듯 미련 없이 지고 처연하게 진다. 형태의 색깔이 모두 선명한데도 꽃송이가 송두리째 통으로 뚝 떨어진다. 우주의 무게로 뚝! 뚝! 떨어지는 꽃. 그 장렬한 낙화. 한창 그 아름다움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그 모습 그대로 떨어지는 걸 보면 어떤 말도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을 만큼 장엄하다. 그래서 장렬하게 떨어져 뜨겁게 가슴 울리는 동백나무 꽃을 한 번 만나면 영원히 마음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하여 가톨릭에서는 동백꽃을 순교자에 비유하여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기도 한다. 한 치의 미련 없이 그렇게 세상을 마감하는 모습을 그려본다면 왜 동백꽃을 순교자에 비유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러한 이유로 수녀님들에게 이 동백꽃 사진을 찍어 액자에 넣거나 하여 선물로 보내주면 아주 좋아한다고 누구가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오늘도 이런저런 병고에 시달리면서 마당 잔디밭을 걷고 있다. 동백나무에 가까워질 때마다 장렬하게 떨어져 사라져가는 동백꽃. 그 낙화 모습을 부러움 안고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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