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내 병고와 친구들의 방문
[정용우칼럼] 내 병고와 친구들의 방문
  •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 승인 2022.03.03 11: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예전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을 만났던 것 같다. 소소한 것에도 관심을 주고,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다니기도 했으며, 며칠간 술 약속이 없을 때면 외톨이가 된 허전함에 몸부림을 치기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던 내가 나이가 들어 대학교수직을 은퇴한 후에는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한적한 시골생활을 선택하였기에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아직은 사람이 그리울 때가 가끔 있다. 그럴 때는 진주시내로 나가 지인들과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처럼 병고가 깊을 땐 그것도 불가능하다. 병이 깊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그 외로움은 ‘고통받는 함정’(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이다. 오롯이 혼자서 이 외로움을 달래야만 한다.

사람들은 외로움을 고독으로 바꿔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외로움은 부정적 혼돈이고, 고독은 긍정적 몰입이기에 외로움을 일단 고독의 공간으로 옮겨내기를 권유한다. 외로움은 다른 사람과 관계가 끊어진 상태이지만, 고독은 내가 나와 관계를 맺은 상태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의 간섭에서 벗어나 내가 내 안의 우주, 무의식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상태라고 여기는 한 그 권유는 합당하다. 그러나 오랜 지병 때문에 덕지덕지 달고 있을 수밖에 없는 병들이 고통스럽게 발작을 일으킬 때는 그리고 그것이 나의 이야기가 될 때는 이 외로움을 고독으로 전환시켜 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차라리 이 병고가 조금이라도 완화되기를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삭여내는 것이 차라리 희망적이다. 하루가 여삼추!

마침내 고통스런 하루하루를 삭여내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친구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멀리 경기도 가평에 사는 대학동창 친구가 차를 몰아 서울서 다시 3명의 친구를 태우고서는 장시간 운전하여 이곳을 찾아왔다. 진주라 천리길을 단숨에 달려온 것이다. 이곳과 가까운 지역에 사는 친구들은 가끔씩 이곳을 방문하기는 하지만 경기도나 서울에 사는 친구가 이곳을 방문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고맙고 반가운 친구들의 방문!

여기서 우정을 생각한다. 우정은 마음의 울림이다. 이에 관한 고사는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고사 하나. 퇴계 이황이 47세에 월란암에 머물며 마음공부에 주력하던 때, 낭영대에 ‘아양(峨洋)’의 시구를 덧붙였다. ‘아양’이란 백아와 종자기 고사에서 유래한다. 백아는 거문고를 잘 연주했고, 종자기는 그의 음악을 잘 들었다. 백아가 거문고로 높은 산을 표현할 때, 종자기는 ‘아득하게 높은 것이 태산과 같다’고 응수했다. 백아가 거문고로 흐르는 물을 표현할 때, 종자기는 ‘의기양양 흐르는 것이 황하와 같다’고 대답했다. 백아는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의 줄을 끊어버렸다는 ‘백아절현’은 상호 교감이 우정에서 얼마나 소중한가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런 옛 선인들의 교감 같은 것은 흉내조차 내지 못한다. 조촐한 음식을 앞에 놓고 먹고 마시면서 나눈 대화들에는 무슨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다, 그저 그렇고 그런 이야기다. 그간의 안부 묻고 내 건강상태 이야기하고... 매번 만날 때마다 나누는 대화들의 반복이다. 듣고 또 듣고, 하고 또 한 이야기들이다. 몇 번이나 나눈 이야기들이지만 그래도 즐거운 것은 매번 똑같다. 병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도 망각해 버린다. 온통 기쁨과 설레는 마음뿐이다. 기분이 좋아 감정이 고조되면 마종기 시인의 ‘우하의 강’을 생각해 낸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중략)//큰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물결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 보아주고/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이제 나를 포함한 친구들 모두 노년이다. 노년의 인생을 생각해 본다. 세상사는 맛은 청춘 시절이 제일 좋은 것처럼 보이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각별한 맛이 있다. 이 각별한 맛을 계속 즐기기 위해서 벗어나야 할 것이 있다면 병고다. 늙어가면서 병고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래도 병고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친구들의 격려에 힘입어 이 희망도 실현되리라 믿는다. 먼 길 마다않고 방문해준 친구들에게 보답하는 의미에서 라틴어 명구 2개 -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 - 를 감사의 뜻을 담아 보내드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988, 4층 (칠암동)
  • 대표전화 : 055-743-8000
  • 팩스 : 055-748-14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선효
  • 법인명 : 주식회사 경남미디어
  • 제호 : 경남미디어
  • 등록번호 : 경남 아 02393
  • 등록일 : 2018-09-19
  • 발행일 : 2018-11-11
  • 발행인 : 황인태
  • 편집인 : 황인태
  • 경남미디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7481400@daum.net
ND소프트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이선효 055-743-8000 74380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