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근칼럼 東松餘談] ‘사쿠라’와 정치 소신
[하동근칼럼 東松餘談] ‘사쿠라’와 정치 소신
  •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승인 2022.03.03 11: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국내 정치에서 정치 환경이 바뀌거나, 다른 이유에 의해 기존의 자기 조직을 이탈해 상대방 정치조직으로 건너가거나 다른 정치 노선을 걷는 이들을 놓고 ‘사쿠라’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변절한 옛 동지를 비꼬는 풍토에서 비롯된 이 표현은 정적이나 ‘내통을 한 내부의 적’이란 의미도 있고 정치적 사기꾼 또는 정치철새, 야바위꾼, 한통속 등등의 의미도 내포한다. ‘사쿠라’의 어원 가운데 하나는 5·16이후 정계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본래는 일본어 ‘사쿠라니쿠(말고기)’에서 나온 말로 색깔이 벚꽃처럼 연분홍색인 말고기를 가리키는데, 쇠고기 인줄 알고 샀더니 먹어보니 말고기였다는 얘기에서 나왔다고 한다. 두 번째는 벚꽃이 피는 계절에 야외술집 등 꽃놀이 장소에서 장사꾼이 자신의 패거리를 손님인척하고 행세하게 해 손님을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하는 이를 ‘사쿠라’라고 불렀는데 이른바 ‘바람잡이(프락치)’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대통령 선거판이 막다른 길목으로 들어서면서, 생각하지도 않게 지지후보를 갈아타는 집단군이 등장하고 있다. 상대방 진영에게 포섭되거나, 설득을 당했든 아니면 자의에 의했든, 지지후보를 바꾸는 모습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최근 친문계 단체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을 하는가 하면, 국민의힘 당내 경선에서 홍준표 의원을 도왔던 일부 인사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찍겠다는 뜻을 밝혔다. 여기에다 안철수 후보를 도왔던 몇몇 인사들이 단일화에 실망했다며 국민의힘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역에서도 호남에서 윤석열 후보를, 대구에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그룹군이 나타났다. 양강 후보 모두 자질 논란에 휘말리면서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 되면서 선거 막바지에 진영 내부의 지지층 이탈이 양측에서 모두 일어나고 있다. 옛날식대로 하자면 이들은 ‘사쿠라’에 해당된다.

과거 한국 정치사에서 ‘사쿠라’라고 불린 정치인이 몇 분 있었다. 유신시절 중도통합론을 들고 나온 이철승 대표가 대표적인 사쿠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비슷한 연유로 유진산, 유치송, 이민우 대표 등도 사쿠라로 지목된 바 있다. 한일회담 과정에서 반대투쟁을 벌인 강경파가 온건파를 놓고 ‘사쿠라’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사쿠라’는 정치적 극단론이 부딪칠 때 그 꽃이 핀다. 중간의견이나 중도론, 개혁적 보수나 합리적 중도론은 ‘사쿠라’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양당제와 대통령 중심제의 한국정치제도에서는 ‘사쿠라’라는 존재가 비난받는 일은 피할 수 없는 풍토병 같은 속성을 갖는다. 내편이 아니면 무조건 적이고, 적의 진영으로 간다면 곧 변절자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선거막판에 지지후보를 갈아타는 이들 정치집단군을 ‘사쿠라’라고 부르면서 폄하해야 할지, 정치 소신에 의한 결단이라고 칭찬해야 할지는 판단이 금방 서질 않는다. 이를 바라보는 이의 지지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편에서 보면 변절이고 상대편에서 보면 귀순이다. 당연히 지지후보를 갈아탄 집단군에 대해 각각의 입장에서 서로 변절행위라고 비난할 수 있지만, 이해관계가 없는 입장이나 제3자적 입장에서 본다면 그게 왜 비난받아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이유와 합리적 근거는 없다. 정치 소신을 바꾸는 일이나 지지후보를 바꾸는 일도 개인의 자유의사이기 때문이다. 유권자가 투표를 하면서 순간적으로도 지지후보를 바꿀 수도 있는데 그 행위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래서 지지후보를 갈아타는 일이 ‘사쿠라’라고 비난받을 일은 아닌듯하다. 오히려 용기 있는 ‘정치 소신’이라고 불러야 할 듯하다. 다만 아무리 좋은 ‘정치적 소신’이라고 하더라도 ‘직업적 정치철새 증후군’과는 구분되어야 할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988, 4층 (칠암동)
  • 대표전화 : 055-743-8000
  • 팩스 : 055-748-14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선효
  • 법인명 : 주식회사 경남미디어
  • 제호 : 경남미디어
  • 등록번호 : 경남 아 02393
  • 등록일 : 2018-09-19
  • 발행일 : 2018-11-11
  • 발행인 : 황인태
  • 편집인 : 황인태
  • 경남미디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7481400@daum.net
ND소프트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이선효 055-743-8000 74380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