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가족사랑
[정용우칼럼] 가족사랑
  •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 승인 2022.03.1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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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우리네 세상사 모든 일은 사랑에 관한 것이다. 사랑이 없는 우리의 삶은 생각해볼 수 없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고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로부터 사랑받거나 사랑받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다. 이로 말미암아 살아 있음을 느끼고, 삶을 위로해 줄 그 누군가, 그 무엇인가를 꿈꾸는 것이다. 하여 사랑은 우리네 삶을 추인하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이러한 사랑, 그 대상 중에서도 으뜸은 가족이다. 가족은 삶이 준 최대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나에게 그날 치 ‘조간신문 1면 모아보기’와 ‘아침 손바닥 뉴스’를 보내주는 친구가 있다. 이들을 보면 오늘의 헤드라인 뉴스와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한눈에 알 수 있기에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며칠 전 ‘조간신문 1면 모아보기’를 보다가 특별한 기사 하나를 접했다. 국민일보 1면에서 ‘우리도 부모입니다-장애인 25인의 양육 분투기’라는 제하의 특별기획 기사가 그것이다. 국민일보 이슈&탐사팀이 최근 한 달여간 아이를 키우는 장애인 부모 25명과 장애 부모를 둔 자녀 6명을 만나 심층인터뷰를 진행하여 제작한 기사였다. 이 기사를 통해 장애인 여성 출산이 연 1000건 이상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기사의 주인공 이하림(가명·29)씨는 시각과 청각 모두 장애를 가진 시청각 중복(데프블라인드·Deaf-Blind) 장애인-시력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청력은 보청기를 껴야 가까운 곳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이었지만 양가 부모 도움 없이 자녀를 세 명이나 키우고 있었다. 물론 장애인이기에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기는 한다. 활동지원사는 평일 오전 4시간가량 식사준비와 청소, 빨래 등 가사 일을 하고 아기도 조금 봐준단다. 하림씨는 중증장애여서 더 많은 활동지원 시간을 받을 수 있지만 그는 지원을 더 받을 생각이 없단다. 엄마이기 때문에 진짜 어려운 부분만 부탁하고 최대한 자기가 양육하고 싶다고 했다. 이들이 불편한 몸으로 사회의 별다른 도움 없이 자녀를 무난하게 키워내는 것은 생명에 대한 사랑과 자기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같은 날, 역시 중학교 동창 카톡방을 통해 또 하나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는 인터넷에서 유포되고 있는 ‘가시나무새 할머니’ 이야기였다.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실명한 아들에게 한쪽 눈을 나누어 주어 불편한 몸이지만 자식들에게 전혀 의지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손자와 손녀들이 찾아오면 학비를 보태주려고 행상에 나선 할머니의 이야기. 실화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인지는 모르나 참으로 감동스런 이야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자기 눈을 나누어 주어 아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큰 축복이라고 했으며, 불편한 몸으로 경기가 예전 같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남대문시장에서 여러 가지 생필품을 떠다 시골동네를 찾아다니며 한 푼 두 푼 벌어 손주들 학비에 보태어 주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할머니.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주었다. 모든 것을 내주었으니 내 것은 없다. 그럼에도 충만한 사랑의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니 불평할 일도 없다. 오히려 감사와 축복이 넘쳐흐른다. 이 역시 생명에 대한 사랑과 자기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두 사례 모두 지극한 가족사랑 이야기다. 가족 구성원을 더 먼저 생각하고 더 많이 위한다.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의 기쁨을 위해 나의 전부를 내놓고도 부족하여 늘 아쉬워하는 마음이다. 그냥 사랑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랑에 희생이 들어가 있기에 더 감동적이다. 자기희생이 없었다면 감동도 없다. 누군가를 위한 조건 없는 사랑이다. 조건이나 이기적인 바람이 섞여진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어서 감동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희생이 동반되지 않은 사랑은 아무리 진실하다 해도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희생이 없는 사랑 그것은 찬연히 아른거리는 오로라의 섬광일 뿐이다. 잠깐 찬연하게 아른거리다가는 곧 사라지고 만다. 이와는 달리 희생을 동반한 사랑은 변치 않고 지속된다. 희생함으로써 그 사람들 안에 깃든 신의 영혼과 하나로 맺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사랑은 자기희생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고 했을까. 이번 정치의 계절, 모 대통령 후보의 아들 처신이 세상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자녀는 부모가 하는 대로 보고 자란다. 부모의 자기희생이 동반되지 않은 사랑은 대상을 파멸로 몰아넣는 위험한 무기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희생이 사랑이며 또한 희망임을 다시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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