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근칼럼 東松餘談] 교지(巧遲)와 졸속(拙速)
[하동근칼럼 東松餘談] 교지(巧遲)와 졸속(拙速)
  •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승인 2022.03.31 08: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손자병법에 교지불여졸속(巧遲不如拙速)이란 말이 나온다. 병법의 작전(作戰)편에 나오는 4자성어로 용병술과 관련한 용어이다. ‘뛰어나지만 늦는 사람’보다, ‘미흡해도 빠른 사람’이 더 낫다는 의미다. 여기서 교지(巧遲)라는 말은 전쟁에서 교묘한 전략만 따지다가 때를 놓치는 것을 말하고, 졸속(拙速)은 전략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때를 놓치지 않고 속전속결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전쟁에서는 아무리 교묘한 전략이라고 하더라도 지체되는 것은 좀 부족하더라도 제때 공격하여 속전속결하는 것만 못하다 라는 뜻이다.

윤석열 차기 정부가 대통령실을 청와대에서 벗어나 용산의 국방부 청사로 옮기는 일을 두고 세간에 찬반의 소리가 높다. 우선 현 문재인 정부부터 반대다. 청와대를 떠나 다른 곳에 대통령실을 이전하는 일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민주당은 청와대보다 반대가 더 심하다. 반대를 하는 이유가 수십 가지가 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 졸속이다. 졸속이란 단어는 ‘서투르지만 빠르다’는 뜻이다. 지나치게 서둘러 결과나 성과가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를 말하는데 문제는 졸속이란 단어는 결과를 보고 말함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아직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졸속하다고 할 수는 없다. 성급하다는 표현은 가능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일 서투르고 빨랐지만 결과가 좋다면 과연 추후에 졸속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통령실의 이전은 윤석열 차기 정부의 가장 대표적인 정치 행위다. 기존의 청와대에서 벗어나 대통령실을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공약으로 내세운 역대 정권은 윤석열 정부뿐만 아니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김영삼 정부부터 시작해서 문재인 정부까지 대통령실 이전을 거론하지 않았던 정권은 없다. 문재인 정부 역시 선거 공약에서 호언과 장담을 했지만 정권초기에 이리저리 한참 재보다가 경호 문제 등을 이유로 결국 이전을 포기하고 청와대에 주저앉았다. 대통령 집무실을 비서동에 설치하는 수준에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차기 정부의 대통령실 이전은 역대 정권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요소다. 만일 공약대로 이전에 성공한다면 현 문재인 정부입장에서는 도저히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안이 되고 만다. 자존심이 걸린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 불발은 교지(巧遲)에 해당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절친인 승효상씨는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가다. 그런 그도 결국은 이전을 도울 수가 없었다. 따질 것 다 따지고 둘러볼 것 다 챙기고 하다보면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올라가듯 할 수도 있는 것도 없고 해볼 수도 있는 것도 없고, 차·포 떼고 나니 아무것도 없어서 결국 주저앉고 말았던 것이다. 만일 윤석열 차기 대통령의 공언대로 만일 대통령실 이전이 성공한다면 대한민국은 새로운 변곡점을 통과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역사를 쓰게 될 것이 분명하다. 현 여당이 기를 쓰고 대통령실의 이전을 반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여기에다 당장 6월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 프레임 전략이기도 하다. 자칫하면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있지만, 어떤 명분을 더해서라도 차기 정권에 상처를 내어 선거를 유리하게 만들겠다는 속셈도 작용하고 있다. 차기 정부 역시 같은 입장이다. 칼집에서 칼을 꺼내 회심의 작품을 만들려고 하는데 저항이나 반대에 부딪혀 칼집에 칼을 도로 넣어야 한다면 이 또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다. 결국은 대통령실 이전의 본질은 양측의 자존심 대결,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찬성과 반대에 동원되는 수많은 이유와 명분은 그저 부차적인 사안일 뿐이다. 개인적으론 졸속(拙速)이라도 좋으니까 대통령실이 청와대를 벗어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문제점은 차차 보완하면 된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려면 결국 교지(巧遲)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988, 4층 (칠암동)
  • 대표전화 : 055-743-8000
  • 팩스 : 055-748-14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선효
  • 법인명 : 주식회사 경남미디어
  • 제호 : 경남미디어
  • 등록번호 : 경남 아 02393
  • 등록일 : 2018-09-19
  • 발행일 : 2018-11-11
  • 발행인 : 황인태
  • 편집인 : 황인태
  • 경남미디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7481400@daum.net
ND소프트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이선효 055-743-8000 74380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