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의 세상엿보기] 우리 이혼했어요
[김용희의 세상엿보기] 우리 이혼했어요
  • 김용희 시인·수필가
  • 승인 2022.04.1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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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시인·수필가
김용희 시인·수필가

# 일라이 지연수

임신 한 그 해, 여름밤의 내음이 가득한 날, 복숭아 먹고싶다 했더니 사와서 짤라주던 그 모습이 좋아서 사실은 별로 먹고싶지도 않았지만 자꾸만 사달랬었다고, 여름밤 티비 보며 복숭아 먹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그때가 가장 행복했었다고, 자꾸만 생각난다고.

이혼한 지 2년, 둘 모두 아이돌이었나보다. 같이 산 10년 후회하지 않는다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 지금처럼 이별이 예정되었대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았어도 상관없어. 내가 죽도록 사랑했었으니까” 이혼하던 날 법원에도 나타나지 않은 것은 살아온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져버린 게 아니냐고. 그리고 이혼 후 자기(남편)를 지우려 지우려 애써 지우고 나니 내가 남아 있어야 하는데 내가 없더라고. 온통 난 당신이었다고...

그 참~ 얘기가 모두 드라마 대사보다 더 절실하다. 드라마야 허구라고 보지만 이건 실제 상황이고 경험이니.

“내가 좀 더 참지 못해서, 좀 더 잘하지 못해서, 아니 내가 돈이 없어서 미안해...” 남편 아이돌 가수로 열심히 활동해도 연 1500만원. 그 돈으로는 살아낼 수가 없어서 미국 부모에게로 갔다. 근데 그 부모들의 마음에는 며늘이 설 자리가 없었단다. 참 애틋하다. 그리고 젊지만 성숙되었다. 절제된 대화들이 하나씩 모두 아직도 아물지 않은 삶이다. “다들 그러고 살아 정없이... 그러나 아이 때문에”

티비 조선. 이 프로는 기획 잘 한 듯하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경제적 문제 때문에 이별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 사회적 문제가 고발되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자녀에 대한 부정 모정이 가장 중요한 주제로 형상화된다. 참아왔던 눈물을 드디어 아들 앞에서 터트리는 부정.

이 프로가 의미있는 것은 리얼리티성이다. 이 사회가 쏟아내는 젊은이들에 대한 여유공간 부재 그리고 자본주의가 가져다 주는 피폐함, 이런 것들이 일상의 개인적 행복 어쩌면 그것이 행복의 전부인 그것들을 어떻게 단절시켜가는지를. 그러나 이런 것이 관객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들의 삶이어서 더욱 공감하게 한다. 일상의 행복과 자본 혹은 사회와의 상관성, 물론 고부갈등의 보편적 문제까지 함께...

이 시대 젊은이들의 삶은 고달프다.

# 나한일 김혜영

여기도 성숙하긴 마찬가지, 짧고도 긴 삶의 애환을 이제는 넘어선 사람들 마냥,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사람들 마냥 애틋하지만 담담하다. 자기 삶을 반추하지만 꼭 남들 얘기처럼 한다. 얽혀진 감정의 선은 이미 넘어서서 지난 시나리오 없던 연극처럼 반추하는 모습. 꼭 오래된 친구처럼 어쩌면 지금도 같이 사는 부부처럼 살뜰하다.

자신의 삶을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과 말투에서, 지나간 삶을 활동사진 보는 관객같은 모습들에서 깊은 연륜같은 것을 느낀다.

아내가 면사포도 못 써 봤다고 써보고 싶다고 하니 왠 생뚱맞은 얘기냐고. 이들은 다시 어찌 해보자고 온 건 아니다. 그저 지나간 삶을 되돌려 조명해 보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을, 혹은 미처 마무리 못한 얘기들을 나눠보고 싶은 것이다. “곱게 늙었는데 내가 잘해 줬으면 더 좋았을 껄” 했더니 곱게라는 말은 좋지만 늙었다는 말은 싫댄다. “근데 어쩔수 없지 뭐...”

나한일 죄수복을 입고 이혼법정에 선 날. 그래도 설마 했는데 두번째 이혼으로 또 냉정히 돌아서던 아내의 기억 떠올리며 “왜 그리 냉정했냐” 하니 “당신이 밥거리도 없는 가정 만들 때 나하고 상의 한 번 했으면 이리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한다. “내가 잘못했네”

희끗해진 머리칼 만큼이나 깊어진 주름만큼이나 어쩌면 편안해 보이는 이 이혼 커플, 그래도 남편의 아내에 대한 정만큼은, 못다준 사랑만큼은 깊은 눈길 속에 가득하다.

부부관계 그리고 가정 그리고 남자의 야망, 한 가정을 통하여 인간 삶 전체를, 인간이해에 대한 전체적 조망을 해내고 있는 듯하다. 물론 가정유지를 위한 부부간의 최소한의 배려와 요건같은 것도, 변화의 시대 밀레니엄을 넘어오던 시대적 사회상과 그것의 현실적 해석까지도 보여지는듯 하다.

이 커플들은 어쩌면 삶의 뒤안 길에 와 있는 듯한 성숙도가 더욱 보는 이들을 편하게 한다. 사랑, 야망, 시련, 반추, 후회, 미련... 한 삶의 궤적이 만들어 낸 족적들이 본질적으로 누구나의 삶 전체를 조명한다. 부부로서 한 남편으로 아내로서 어찌 살아내야 하는가. 젊은 세대들이 맞닥들인 사회문제. 중년부부가 보여주는 인간 삶의 보편적 불편성.

누구나의 삶은 유일하고 소중하다. 실험의 대상이 될 수도 없을 만큼. 산다는 건 한 편의 드라마를 찍는 일인가? 되돌려 놓으면 다시 같은 길을 갈 아니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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