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식물과의 교감
[정용우칼럼] 식물과의 교감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2.04.2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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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미국에는 ‘손주 공유 서비스’라는 게 있단다. ‘파파’라는 기업이 그 서비스의 주인공이다. 이 회사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플랫폼 공유경제를 추구하는 IT기업인데, 그들이 첨단기술로 개발한 것이 이 서비스란다. 필요할 때 차를 보내주는 우버의 차량 공유 서비스처럼 혼자 사는 노인이 파파 앱에서 ‘손주의 방문’을 신청하면 손주뻘 대학생이 집으로 찾아온다. 함께 수다를 떨고 산책을 하고 장을 보면서 노인은 1시간에 17달러를 지불하고 학생은 10달러를 받아간다. 서비스의 목적은 단 하나,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이며 파파는 그 수수료로 시간당 7달러를 받는다. 기발한 사업 아이템이다 싶다가도 그 이용고객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미어온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이 서비스를 이용할 생각을 했을까.

우리 시대의 외로움이란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는 데서 생겨나는 것일 게다. 특히 나처럼 도시에서 직장생활 하다 은퇴한 후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더욱 맞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옛날에는 우리 집은 동네 중앙에 자리 잡고 있어 항상 시끌벅적했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나이 들어 죽고 젊은 사람들은 일자리와 편리함을 찾아 도시로 떠나버려 적막하다. 몇몇 살아서 집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걷는 것마저도 힘들어하는 고령노인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길에서 지나치는 길에 눈인사라도 주고받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동네가 늙어 가는 것과 비례하여 외로움의 도수가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가족들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 가끔씩 찾아주고 멀리 사는 친구들이나 졸업한 학생들이 띄엄띄엄 방문해 주니 ‘손주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여서라도 외로움을 달래야 하는 노인들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스럽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 서서히 세상에서 잊혀져 가는 존재임에는 틀림없으니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특히 건강상태가 나빠진 상태에서 혼자 살아갈 경우에는 이 외로움의 감정은 훨씬 더 커진다.

외로움을 심하게 느낄 때는 세상사는 기분을 살려낼 수가 없다.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올곧은 의식들은 서서히 증발해 버리고 쓰레기 같은 잡생각들로만 가득 채워진다. 나의 존재 자체가 아예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이쯤 되면 온몸이 허물 벗은 매미 껍질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분이 우울해지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각종 병마가 덤벼든다. 여러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외로움은 담배를 하루 15개비씩 꾸준히 피우는 것만큼 해롭고, 비만보다 몸을 더 많이 손상시키며, 평균수명을 15년쯤 단축시킨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네 처지가 미국사람들처럼 ‘손주 공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설사 경제적 여유가 있다하여도 아직 우리나라에는 그런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하니 이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일은 내 스스로가 찾을 수밖에 없다. 나는 그 대상을 사람이 아닌 식물에서 찾고자 한다.

요근래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주치의가 내 스케줄에 간섭을 해 온다. 평소 같으면 책 읽고 글 쓰고 영화 감상하면서 나름 꽉 찬 스케줄로 하루를 보내니 외로움을 느낄 틈이 별로 없었는데 이제부터는 책 읽는 시간, 글 쓰는 시간을 줄이라고 한다. 쉬엄쉬엄 놀아가면서 하루를 보내라고 한다. 혹시 주치의 경고를 흘려들었다가 건강상태가 지금보다도 더 나빠질까 두려워 가능하면 따르려고 한다. 하여 내 나름대로 새로운 생활방식을 찾아 적응해나가야 하리. 그 한 방편으로 찾은 것이 정원과 친해지기다. 강둑길 산책을 조금 줄이고 그 대신 잔디밭을 뱅글뱅글 돌아다닌다. 책 읽고 글 쓰는 시간 대신에 잔디밭 및 화단에 솟아난 잡초를 제거하고, 뿌린 씨앗들이 솟아나면 이식하고, 메마른 날은 물주고, 심하게 불균형을 이룬 나뭇가지들을 잘라내고 다듬는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면서 식물과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말하자면 식물들이 내 교감의 상대가 된 셈이다.

평소엔 그냥 그렇게 즐겼지만, 관심을 갖고 보면 그 안에 오묘한 세계가 담겨 있음을 발견한다. 이 발견 덕분에 외롭지만 성숙한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나태주의 ‘풀꽃’)는 시구(詩句)처럼 천천히 그리고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그들과 대화를 해 본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무나 풀도 내가 하는 대로 반응한다고 했으니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순결한 자세로 나무 앞에 서보는 거다. 진정 식물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말했지. 내가 열면 나무도 열고 내가 닫으면 나무도 닫는다고. 홀로 사는 병든 노구. 외로움은 어쩔 수 없지만 식물들과의 교감을 통해 내 안에 새로운 질서, 새로운 균형을 형성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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