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꽃도 너를 좋아하더냐?
[정용우칼럼] 꽃도 너를 좋아하더냐?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2.05.09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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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우리 집 거실 앞에는 의자 세 개가 놓여 있다. 하나는 짙은 황색 나무의자요. 하나는 푸른색 플라스틱 재질의 의자요. 또 다른 하나는 검은색 인조가죽으로 만들어진 의자 이렇게 셋이다. 이 세 의자는 각기 그 쓰임새가 다르다. 날씨가 엄청 더운 날은 나무의자에 앉는다. 약간 서늘한 날은 검은색 인조가죽의자에 앉고 그 중간일 때는 푸른색 플라스틱의자에 앉는다. 만약에 햇볕이 쨍하고 내리쬐는 더운 날에 검은색 인조가죽의자에 앉으면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겁다. 이럴 때는 나무의자나 플라스틱의자 다 무방하지만 그래도 나무의자가 좋다. 이런 식이다. 그런데 의자에 앉기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송홧가루를 먼저 털어내야 한다. 이곳 시골에는 지금쯤이면 송홧가루 천지여서 그냥 의자에 앉았을 때는 옷이 누렇게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자에 내려앉은 송홧가루는 털어내면 되지만 꽃에 앉은 송홧가루는 털어낼 수가 없다. 꽃 특히 흰색 꽃은 그 본연의 순수한 색깔을 잃어버린다. 그저 비가 내리기를 기다릴 뿐이다. 다행히도 어제 밤에 세찬 바람과 함께 비가 많이 내려 송홧가루가 씻겨나가 꽃들은 본연의 순수한 색깔을 되찾았다. 하여 오늘 같이 봄바람이 선들선들 부는 날이면 의자에 앉아 꽃들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이렇게 의자에 앉아 나른한 봄날 한때를 즐기고 있는데 한 사람이 우리 집으로 들어온다. 스님이다. 나도 의자에서 일어서 스님께 합장한다. 스님께서 화단의 꽃들이 참 예쁘다고 말을 건넨다. 화답하며 함께 우리는 이리저리 돌아본다. 불두화(佛頭花)도 두 그루나 심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불두화가 한창 탐스럽게 피어올라 대번에 알아본 것이다. 꽃의 모양이 부처님의 머리처럼 곱슬곱슬하고 부처님이 태어난 4월 초파일을 전후해 꽃이 만발하므로 불두화라고 부른다. 하여 절에서 정원수로 많이 심는다. 나도 어느 절에선가 이 꽃을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 우리 집 정원에도 심고 싶었다. 그런데 백방으로 노력하였지만 이 꽃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하여 조경학과 교수인 동생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다음 해 동생이 갖다준 불두화 두 그루가 우리 집 화단에서 20년을 넘게 자랐으니 나무 키도 클뿐더러 꽃도 엄청 많이 열린다. 달빛이 훤하게 내리는 날이면 장관을 연출한다. 내가 좋아하는 꽃이라고 이야기했더니 스님이 빙그레 웃는다.

나는 스님께 방문 목적을 묻는다.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졌다면서 시주 좀 하시란다. 방어산 관음사에서 나왔다고 하시면서. 나도 어릴 적 어머니 따라 이 절에 가 본 적이 있었다. 어머니 생각에 시주를 좀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우선 스님을 현관 안으로 드시게 했다. 시주 돈을 갖고 나와 스님께 건넸더니 들고 다니는 책 속에 끼워 넣는다. 만 원짜리 지폐가 여럿 있었다. 순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큰돈을 시주할 걸... 시주 많이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더니 이걸로 충분하다고 했다. 천주교 교회에 다니시는 분의 시주라 더 고맙다고 했다. 스님께서 현관에 걸려있는 작은 현판을 보셨던 모양이다. ‘여기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평화를’

스님과 헤어지고 나는 다시 의자에 앉는다. 다시 경쟁하듯이 피고 지는 꽃들을 감상한다. 스님의 방문을 받아서 그런지 유독 불두화가 눈에 들어온다. 꽃이 흰색이라 순수하다. 그러면서도 탐스럽고 풍성하다. 오늘따라 꽃 모양이 부처님 머리를 닮았다는 생각이 더 실감나게 느껴진다. 부처님 받들어 모시는 마음 더 커지는 것 같아 불두화 이 꽃이 더 좋아진다. 순간 어느 책에서 읽은 화두 하나가 생각났다. ‘너는 꽃을 좋아하는데 꽃도 너를 좋아하느냐?’ 그 화두에 나를 대입시켜 본다. 누군가가 묻는 것 같다. “용우야, 너는 꽃을 좋아하느냐?” 나는 흔쾌히 대답할 수 있었다. “네”라고. 그런데 다시 묻는다. “용우야, 꽃도 너를 좋아하더냐?” 이 물음에 대해 나는 쉽게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꽃의 순수하고 완벽한 아름다움을 흉내조차 낼 수 없다는 것을 나 자신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금강스님 취임 법회 서원문이다. “사물을 깊이 있게 관찰하면서 마음 모아 숨 쉬고 미소 짓기를 서원합니다. 자비와 연민을 기르고 기쁨과 평정의 수행을 하고 중생들의 고통 이해하기를 서원합니다. 아침에 한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저녁에 한 사람의 슬픔을 덜어주기를 서원합니다. 단순하고 맑은 정신으로 살면서 적은 소유로 만족하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기를 서원합니다. 가볍고 자유롭기 위하여 근심과 걱정을 놓아버리기를 서원합니다.” 이 서원대로 이루어져 경지를 이룬 사람만이 “네, 꽃도 저를 좋아하더이다.” 할 수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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