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양귀비꽃
[정용우칼럼] 양귀비꽃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2.05.1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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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우리 부부는 양귀비꽃을 우리 집 ‘올해의 꽃’으로 정했다. 얼마 전, 우리 집으로 처음 입양되었음에도 그 아름다움을 멋지게 선사해주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꼭 이때쯤 다른 부락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 친구 집에 식사초대 받아 갔다. 내가 꽃을 좋아하는 관계로 다른 집에 들어설 때마다 우선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화단에 피어 있는 꽃들이다. 이 집에 들어서는 순간 단번에 나의 눈을 사로잡은 꽃이 있었다. 무리를 이루어 피어 있는데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 친구에게 이 꽃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다. 양귀비꽃이라고 했다. 나도 예전에 우리 집 화단에 양귀비꽃을 구해서 심어 본 적이 있지만 이 꽃만큼 예쁘지도 않을뿐더러 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시들어버렸다. 그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이건 개량종이란다. 그래서 꽃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오랫동안 피어 있는 거란다.

나는 친구에게 부탁했다. 나중에 꽃씨 좀 거두어달라고. 친구는 약속을 지켰고 나는 그 씨를 받아 소중하게 간직한다고 종이봉투에 담아 어딘가에 넣어두었다. 올해 봄이 되어 이 꽃씨를 파종하려고 찾아보았으나 도무지 찾아낼 수가 없었다. 나이 들어 기억력이 희미해진 탓인가. 부득이 친구 집에 가서 몇 포기 얻어올 수밖에 없었다. 친구는 세 포기를 화분에 담아주었고 한 포기는 흙무더기 채 파서 자기 트럭으로 옮겨 우리 집 화단에 심어 주었다. 화분에 옮겨심기에는 철이 조금 지나 꽃도 피우지 못하고 죽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지금 우리 집에는 이렇게 옮겨온 양귀비 4 무더기가 모두 살아서 멋진 꽃을 피워주었다. 진한 붉은색 꽃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나는 화분 3개를 거실 앞에 갖다 두고는 시간 나는 대로 의자에 앉아 양귀비꽃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볼수록 아름답다. 당나라 현종의 황후이며 당대 최고의 미인이었던 양귀비에 비길 만큼 꽃이 아름답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니 과연 그럴만했다. 언젠가 중국 시안(西安)에 갔을 때 양귀비 동상을 보고 정말 저렇게 아름다웠을까 생각하며 상상 속의 여인으로 그려본 적이 있다. 그녀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한 현종은 참 복도 많은 사람이다. 동상처럼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알몸으로 서 있다면 어찌 사랑하지 않고 견디겠는가. 상상이 여기까지 와 닿으니 이 양귀비꽃을 세밀하게 관찰한 결과를 여기 적지 않을 수 없다.

양귀비꽃은 붉은색·자주색·흰색 등 여러 가지 빛깔로 피어나는데 나는 우리 집 화단에 피어난 것처럼 붉은색 꽃이 마음에 든다. 꽃은 줄기 끝에 1개씩 피어난다. 꽃잎은 4개이고 둥글며 길이가 5∼7cm이고 2개씩 타원형의 배 모양을 하여 마주 달린다. 그런데 내가 여기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꽃봉오리가 꽃으로 피어나는 과정이다. 참 신기하게도 꽃봉오리로 있을 때는 아래로 축 처져있다. 마치 우리 남자들 평소 때의 거시기처럼, 이렇게 제법 오랫동안 축 쳐져있던 꽃봉오리가 꽃을 피울 때가 되면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세운다. 당나라 현종도 그랬을 것이다. 절세미인 양귀비만 보면 축 쳐져 있던 거시기가 벌떡 일어섰을 테니. 어쨌거나 나의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꽃인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는 양귀비 하면 우선 아편을 떠올린다. 익지 않은 열매에 상처를 내어 받은 유즙을 60℃ 이하의 온도로 건조한 것이 아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편을 담배와 함께 피면 마취 상태에 빠져 몽롱함을 느끼고 습관성이 되면 중독 현상이 나타나며 심하면 죽음에 이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등과는 달리 법으로 재배가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개량종만이 재배가 가능하다. 개량종은 이 성분은 제거한 채 꽃의 아름다움에만 집중한 것이다. 꽃이 크고 오래가게끔 만든 것이다. 오래 가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꽃은 꽃일 뿐이니 반드시 지고야 만다.

양귀비꽃도 이 운명은 피할 수 없다. 꽃이 피어난 지 며칠이 지나면 꽃잎 4개가 차례차례 시간 간격을 두고 떨어져 흘러내린다. 절정을 지나 시들어가는 꽃잎이니 본연의 아름다움을 많이 잃었다. 하여 아침부터 화분 주변에 흩어져 있는 꽃들을 주워 내고 싶어진다. 그러나 잠시 참아야 하리. 중국의 사상가이자 문학자인 루쉰(魯迅)이 말한 한 구절,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朝花夕拾)(책 이름이기도 함)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다’는 이 구절은 어떤 상황에 즉각즉각 대응하지 않고 저녁까지 기다린 다음 매듭을 짓는 게 현명하다는 뜻. 세상만사, 어떤 생각 떠올랐다고 바로 덤벼들지 않기. 기다림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나이 들어갈수록 곱씹어 볼 생활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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