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아내의 생일을 맞아
[정용우칼럼] 아내의 생일을 맞아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2.06.1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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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우리 집 잔디밭과 그 주변에 설치되어 있는 화단을 쭉 둘러본다. 오늘은 잔디가 얼마나 더 자랐는지, 나무 가지들이 얼마나 더 새잎을 달았는지, 새로이 피어난 꽃들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매일 느끼는 일이지만 그 변화하는 모습이 하루하루가 다르다. 시간이라는 심판자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그 어느 것도 어제의 모습 그대로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이 심판자는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우리 사람도 이 변화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의 몸도 하루하루 변한다. 오늘의 몸은 어제의 몸이 아니다. 하여 엄밀히 말하면 매일매일이 생일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네 관습은 이런 ‘매일매일’의 생일은 기념하지 않고 ‘매년’의 생일을 기념한다. 해마다 생일이 되면 서양에서 넘어온 풍습대로 케이크를 사고 촛불을 켜고 주인공이 후, 날숨을 불어 촛불을 끈다. 물론 ‘생일을 축하한다’는 노래도 참여한 모든 사람이 함께 부르고... 우리 가족도 지난 토요일 이렇게 아내의 생일 - 생일도 그냥 생일이 아니라 진갑기념일 - 을 축하해주었다. 우리는 명품 하나 아내에게 선물하지 못했지만 하루 종일 행복했다. 남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슴으로 느껴야 진짜 행복임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나도 아내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손주들과 함께한 조촐한 파티에서 같이 노래 부른 것은 물론이고 내 나름대로 축하의 편지글을 써서 보내기도 하였고 생일 전날, 여생을 끈질기게 살아달라는 뜻에서 예쁜 야생화 무더기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기도 했다. 그것도 아쉬워 의령의 어느 식당에서 몇몇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과 별도의 식사모임을 갖기도 했다.

아내에 대한 생일 축하는 이 풍진 세상을 그런대로 잘 살아온 것에 따른 이해심 그리고 못나고 병약한 남편을 옆에 두고도 온화함과 여유를 잃지 아니한 채 잘 견뎌왔다는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처럼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일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조금씩 달라진다. 시간과 같이 흐르면서 절대로 늦은 적이 없는 몸시계 탓이리라. 시간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는 이야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금까진 내가 시간을 함부로 썼는데 이제 시간이 나를 함부로 대하네.”(셰익스피어의 ‘리처드 2세’에 나오는 대사)나 “삶의 길이에 대한 느낌은 살아온 세월과 반비례한다.”(19세기 프랑스 철학자 폴 자네)는 표현들과 맥락을 같이 한다. SCN 세포와 도파민 때문이란다. 나이를 먹어 SCN 세포와 도파민이 줄어들면 SCN 회로가 느리게 진동한단다. 그렇게 몸 안 시계가 느려지면 상대적으로 바깥세상이 빨리 돌아가는 것으로 인식한다. 거꾸로 도파민이 많으면 세상은 느리게 움직인다. 도파민은 즐겁고 행복할수록, 새롭고 자극적인 경험을 할수록 많이 분비된다. 어린 시절엔 모든 게 신기하고 신나는 일이다. 남은 기억도 촘촘하게 많아 세월이 길 수밖에 없다. 어쨌든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다는 자각을 갖게 된다. 이는 우리의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인식이다. 죽음이라는 실존의 문제를 추상적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또렷한 감각으로 생생하게 경험하게 하는 자각이다. 비로소 우리를 철들게 만드는 깨달음이고, 내 피부 경계 안쪽의 좁은 세계에만 머물러 있었던 인식을 자연과 우주와 인류 보편과 신의 세계로 확장시키는 인식의 결정적 전환이 되기도 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다시 깨닫는다. 나이를 먹으면 늙고 병들고 무기력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나이듦의 전부이지만, 나이 들어 더 좋아지는 것들을 발견하려 한다면 남은 인생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것,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이 아주 많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 나의 상태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찾는 능력이다. 세상 사는 맛은 청춘 시절이 제일 좋은 것처럼 보이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각별한 맛이 있다. 노년은 덤이 아니라 본령이다. 고락(苦樂)의 요철(凹凸)이 잘 다스려진 평온함, 지혜와 연륜을 품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근사하다. 세상을 살며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을 아름답게 조각해 나가는 것보다 더 큰 일은 없다. 자신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 우리가 늙어서도 아름답다면, 그것은 영혼이 조각해 낸 아름다움이다. 젊을 때의 아름다움은 우리가 만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늙어서도 여전히 아름답다면,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이다. 비록 머리카락은 희어지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늘어가지만 ‘거울 보고 늙음이 기뻐서(覽鏡喜老)’(중국 白居易의 시 제목)처럼 나이 들어가는 중에도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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