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접시꽃
[정용우칼럼] 접시꽃
  •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 승인 2022.06.2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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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정용우 前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부 학부장

우리 동네에는 접시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우리 집에도 몇 무더기를 이루어 피어 있지만 이웃 성수형네 집 접시꽃단지처럼 크고 화려하지는 않다. 성수형네 접시꽃단지는 그 크기도, 꽃들의 아름다움도 우리 동네에서 단연 압권이다. 나는 이맘때가 되면 성수형네 집 대문 입구에 단지를 이룬 채 피어 있는 접시꽃들을 보러 간다. 그런데 이 접시꽃은 보러 갈 때마다 그 향하는 방향이 다르다. 언제나 태양을 향하여 피어 있다. 그것도 고개를 숙인 채. 그러한 특성 때문에 예로부터 임금님을 향한 일편단심을 나타내는 꽃으로 늘 칭찬을 받아왔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는 접시꽃과 관련하여 이런 글을 남겼다. “접시꽃이 해를 향해서 고개를 숙이는 것은 그 타고난 성품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내가 접시꽃을 화분에 심어 두고 관찰해 보았다. 매일 아침에는 동쪽으로 향하였다. 한낮에는 바르게 되고, 저녁에는 서쪽으로 기울었다. 태양의 방향과 똑 같았다. 접시꽃이 동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을 때, 내가 화분을 옮겨 서쪽으로 향하게 했더니 금새 축 늘어져서 죽고 말았다. 아! 내가 접시꽃으로 하여금 절개를 잃게 했더니, 접시꽃은 절개를 지켜 죽고 말았다.”

그런데 이 접시꽃은 꽃 모양이 우리나라의 상징 꽃인 무궁화꽃과 많이 닮았다. 그리하여 접시꽃을 이 무궁화꽃과 비견하여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접시꽃에 대해 이덕무가 칭찬한 바와는 또 다른 각도에서 본 것. 무궁화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만다. 하루만 피어 있다. 접시꽃처럼 여러 날 동안 피어 있지 아니하다. 그러한 이유로 무궁화꽃을 칭찬하는 사람들은 이 꽃을 충성스러움을 대변하는 꽃이라 여긴다. 고산 윤선도는 ‘무궁화’라는 작품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오늘 핀 꽃이 내일까지 빛나지 않는 것은 / 한 꽃으로 두 해님 보기가 부끄러워서이다 / 날마다 새 해님 향해 숙이는 접시꽃을 말한다면 / 세상의 옳고 그름을 그 누구가 따질 것인가.”

이 노래에서 고산 윤선도가 주장하고 싶은 바는, 접시꽃은 여러 날 피어 있으면서 매일 매일 떠오르는 다른 태양을 향해 고개를 숙이니 지조도 없고 아첨만 잘하는 소인배 같은 꽃이고, 이에 반해 무궁화꽃은 하루 만에 지고 말지만 매운 정신을 지닌 참으로 순수하고 충직한 마음을 지닌 충신과 같은 꽃이라는 것이다. 꽃 하나를 두고 이렇게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사람들은 그게 무엇이든 자기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해하기 때문에 이렇게 상호 다른 견해가 나온다. 꽃은 그저 아름다운 꽃일 뿐. 자신의 관점에 맞추어서 이렇다 저렇다 단정한 것일 뿐이지 꽃이 본래부터 그러한 것은 아니다. 내가 이런저런 방향으로 관심을 갖고 보니까 이런저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 뿐이다.

‘나’의 관점 때문에 편협한 사고가 난립하고 객관성을 잃은 판단이 난무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 간 차이는 있으나 차별은 하지 말아야 한다(有差無別)’고 장자(莊子)께서 가르치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모두가 자기의 관점만 중시하고 다른 사람의 관점은 무시한다. 그 자리에 가보지도 않고 자기 자리에 서서 그 말이 맞네 틀리네 자기주장만 한다. 여기서 편견이 싹 틀뿐더러 갈등까지 유발한다. 사회 곳곳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타인을 미워하고 경멸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학교에서는 집단적으로 왕따를 시키고, 직장에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승진과 연봉 등에서 차별을 당하기도 한다. 사회에서는 학연을 챙기고 출신 지역을 따진다. 따돌림 증후군이다. 사실 왕따를 당한 이는 마음에 큰 상처가 돼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고 심하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불행하게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본인과 가족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이처럼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자기의 관점만을 중시한 채 타인의 생각과 가치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세상이 밝고 즐겁게 보이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밝고 즐겁기 때문이다. 시비분별에 익숙한 사람은 세상사를 온통 시비꺼리로 볼 것이며 사리분별이 있는 사람은 시끄러운 가운데서도 고요함을 볼 것이다. 내 중심의 관점에서 한발 물러나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을 포용력 있게 들어주려는 관용의 정신을 필요로 하는 이유다. 하여 바꾸어야 하는 건 나 자신이다. 내 위치를 바꾸고, 내 시선을 바꾸고,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그런 삶의 자세를 유지한 자만이 접시꽃은 접시꽃대로 무궁화꽃은 무궁화꽃대로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따라 접시꽃이 유난히 아름답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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